[좋은수필]벽 / 이종화
벽 / 이종화
뭘까. 저 안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까치발을 하고 폴짝 뛰어봤지만 어림없었다. 등을 밀쳐도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고함은 커져갔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덩치 큰 재우였다.
"뭐해?
"…."
"무슨 일 있어? 저기."
머뭇거리던 나는 저 너머를 가리켰다.
버려진 공터. 아이들이 뭔가를 첩첩이 에워싸고 큰소리를 내질렀다. 날선 욕이 뒤섞이면서 함성은 점점 거칠어졌다.
재우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그냥 가자."
"뭐지, 뭐지?"
통나무 같은 팔뚝이 나를 힘껏 끌었지만, 나는 정말 보고 싶었다. 재우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하는 수 없지. 그리고는 아이들을 밀쳐 고개만 넣을 틈을 겨우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친 벽. 그 안엔 피투성이가 된 개구리 한 마리가 떨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팔딱거려 보았지만 허공엔 발 디딜 곳 하나 없었다. 뒤뚱뒤뚱 기어가면 돌멩이 세례가 이어졌다. 죽을 목숨. 그냥 두어도 곧 죽을 개구리는 더 빨리 죽지 않아 혼이 나고 있었다.
그래도 도망칠 곳을 찾는지 개구리는 사방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험학하게 욕설을 퍼붓는 아이, 땅바닥을 이리저리 훑으며 날카로운 돌을 찾는 아이, 꽤 굵은 나뭇가지를 마구 휘두르며 가련한 숨통을 겨누는 아이, 옆에 서 있던 동무에게 돌멩이를 쥐어주며 부추기는 아이들까지…. 그들은 정말 개구리가 죽어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힘이 센 녀석들이 무서워 발만 동동동 굴리는 아이들 그 누구도 개구리를 위해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만 해. 불쌍하지도 않냐. 재우가 내뱉듯 말했다. 매서운 눈빛들이 재우를 향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에게 함부로 손찌검을 하진 못했다. 다행히 재우는 덩치가 큰 아이였다. 이것 봐. 이 개구리 새끼는 죽어야 해. 재수 없어. 맞아, 맞아. 누군가가 지껄였고 너도나도 끄덕였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세상. 그곳에 벽을 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는 것으로, 보여도 아니 보이는 걸로 만들어낼 수 있다. 경험한 것만 볼 수 있는 인간은 벽 안에서 경험 밖의 세계까지 보곤 했다. 종교는 벽을 쌓고 정치는 편을 갈랐다. 낡은 벽은 신앙처럼 굳어져 대代를 이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벽을 수없이 친 인간의 자취를, 우린 역사라 불렀다.
잠시 뒤, 개구리의 마른 살갗이 찢어지자 아이들은 비로소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의 허물을 감춘 견고한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어린 살기가 모여 할딱이는 생명의 마지막 숨을 싱겁게 지켜봤다. 이윽고 벽은 사라졌다. 그러자 공터는 천연덕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해질녘 그곳에 다시 갔다. 개구리는 배를 뒤집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