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ㄴㅜㄴ / 조이섭

cabin1212 2021. 10. 14. 05:50

ㄴㅜㄴ / 조이섭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sns를 치려는데 한/영 변환키 누르는 것을 깜박했더니 ‘눈’이 모니터에 뜬다. 아직도 독수리 타법을 고수하는지라 몇 번이나 같은 실수를 한다. 그러다 한글 자판의 ‘ㄴㅜㄴ’이 영문 자판으로는 ‘sns’ 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눈과 SNS는 역할과 기능이 쌍둥이처럼 닮은 점이 많다. 눈은 나와 다른 사람 또는 사물과 이어주는 역할을 가장 많이 감당하는 감각기관이다. 눈으로 미추(美醜)를 구별하고 호오(好惡)를 판단한다. 눈을 통해 인식된 세상의 모든 일과 사물을 뇌가 가공하고 다듬어 갈무리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때, 뇌는 눈부터 주목하고 눈, 입, 코 순으로 정보를 입력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눈을 통하여 타인, 나와 다른 독립적인 개체를 만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한다. 반대로 나에 대한 존재의 의미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객관적인 눈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눈’을 ‘SNS’를 치환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눈과 SNS는 둘 다, 마치 허파가 들숨 날숨을 쉬는 것처럼 양방향으로 열려 있다는 점도 같다.

눈을 흔히 마음의 창이라 한다. 본인의 마음과 생각을 눈을 통하여 보여 줄 수도 있고, 상대방도 나의 내면을 엿볼 수 있어서일 것이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눈은 시간과 공간적 제약 때문에 관계망을 넓히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SNS는 가시거리가 무한대인 눈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SNS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밝게 해주고, 세상 사람들과 통할 수 있는 길을 폭넓게 안내한다.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공감하고 때로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 가는 식당의 평판을 미리 알아보거나 길 안내 같은 사소한 일까지도 빠르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고독한 현대인은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가 곁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사정이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SNS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들여다 봐주고 인정하고, 칭찬하고,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SNS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SNS를 이용하는 사람은 접촉자(팔로워; follower)가 많은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진실함보다 얼마나 남의 관심을 끌 수 있나 혹은 끌었나 하는 숫자에 더 집착한다. 경제적인 이득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장하거나 거짓을 유포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성범죄나 사기 같은 범죄와 이어진다. 거짓 정보나 근거 없는 소문이 쉽게 전파된다는 단점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SNS의 익명성 때문에 도덕적인 면이 간과되는 점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SNS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윤리적 눈높이를 올려야 한다.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윤리적인 가치가 미래의 중요한 마인드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삶, 나아가 생명을 존중하고 도덕적 기준을 올리면 세상을 넓고 바르게 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말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의 창인 내 눈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된다. 욕심과 욕망, 편견과 오만으로 내 창이 더러워진 것을 모르고 세상과 다른 사람을 추하다 손가락질을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내 눈을 정화하는 일이 먼저이다. 안과 밖을 내다보고 들여다보는 유리창이 먼지와 묵은 때로 얼룩져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음의 창에 때가 끼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살필 일이다.

‘눈’과 ‘sns’ 둘 다 사물을 올바로 볼 줄 아는 눈, 참 눈이었으면 좋겠다.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이가 들면 적게 보고 들으라는 자연의 섭리인지 몰라도 나도 눈이 흐릿해지고 귀도 어두워진다. 동작도 굼뜨다. 그러면 살기가 어려워져야 할 텐데 꼭 그렇지는 않다. 덜 보고 듣는 대신 생각이 조금씩 깊어지는 탓이다.

마음의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기 시작하면 행동은 점점 진중해진다. 실수가 줄어드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노인들이 모두 다 그렇게 변하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혹 노욕에 찌든 분 한둘이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던가.

아이들의 파란 마음 같은 맑은 ‘눈’으로 따뜻하게 바라봐야겠다. 그렇게 본 세상을 ‘sns’를 통해 널리 퍼뜨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만이라도 먼저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할 텐데 세파에 찌들고 얼룩진 눈으로 먼 산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