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사막 너머엔 / 전용희

cabin1212 2021. 10. 22. 05:49

사막 너머엔 / 전용희

 

 

 

모래사막이 눈앞에 나타났다. 온 사방이 모래뿐이다. 백 개가 넘는 모래언덕이 있어 우주를 항해하다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이다. 지구의 탄생과 함께 사막의 첫 이름을 가지게 된 곳, 나미브 사막이다. 듬성듬성 보이는 나무들과 모래만이 있는 황량한 곳으로, 뜨거운 열기는 광활한 대지와 하늘 모두에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세월 속에서 무수한 바람과 어둠과 빛의 오래된 시간을 지나 만들어진 풍경이다.

고개를 들어 사막을 올려다본다. 사막 양면의 경계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보인다. 햇빛이 비치는 쪽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날리는 먼지와 강한 햇볕으로 눈만 제외하고 온 얼굴을 감싼다. 사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진다. 내리쬐는 태양 빛으로 사우나에 들어온 듯 땀이 솟아난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은 빠지고 속도는 나지 않는다.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덜 힘들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모래 언덕에 불어온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모래 언덕을 더 달구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의 태양을 원망할 수는 없다. 조금씩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 이르리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걸어야 덜 힘들다. 오르다 잠시 쉬어간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이 길게 보이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이란 시이다. 이 네 줄의 짧은 시에서처럼, 혼자 간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언덕 중턱에서 풍뎅이와 도마뱀을 만났다. 풍뎅이(거저리)는 자신의 몸보다 수천 수만 배 높은 모래언덕으로 올라와서 물구나무를 선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 모래에 달구어진 복사열은 등껍질에 닿아 이슬을 머금는다. 맺힌 물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입으로 흘러내려 오면 물을 얻고 살아간다. 도마뱀은 그 거저리를 잡아 먹고 물을 섭취한다. 물구나무서기를 마친 거저리는 도마뱀과의 생존을 위한 사투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거저리가 사막 언덕을 올라온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힘들다는 느낌이 쑥 사라졌다.

거대한 모래 언덕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착했다. 45의 정상에서 주위를 돌아본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마다 오랜 세월 동안 지나간 바람이 만들어 낸 모래언덕으로 가득했다. 모래언덕의 색은 조금씩 달라 보인다. 오래된 언덕일수록 그 색이 짙어 보였다. 모래 속에 철 성분이 들어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산화의 정도가 심화하여 그런 것인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숙성되어 가는 것일까. 바람의 세월을 따라 수많은 모래알이 쌓이고 흩어지면서 제각각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인간의 삶도 어쩌면 사막을 걷는 것과 닮았다. 고난의 연속이고 외롭다. 사막에서같이 정해져 있지 않은 길을 만들며 걸어가야 한다. 요즈음의 몇 달 동안은 특히 그러하다. 코로나19로 겪고 있는 고통은 뜨거운 태양 빛이 이글거리는 사막에서 모래언덕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 태양의 이글거림도 같은 이름의 코로나 때문이다. 우주 방호복처럼 생긴 의료장비를 입은 의료진이 비 오듯 땀을 흘리는 것도 코로나 때문이다. 태양의 코로나에도 철 성분이 있단다. 모래사막은 철 성분으로 더 아름답게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코로나19는 철든 사람에게 더 위험하니 어찌 된 것인가.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하여 사막의 거저리처럼 힘들게 살아왔는데, 어찌하여 도마뱀 같은 존재의 바이러스에 생명을 위협받아야 하는가.

모래는 시간을 품고 있고,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과거에 어떤 지질학적 격변이 있었는지 화산 폭발이 발생하였는지 빙하에 함께 떠 내려왔는지, 그 작은 몸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랜 시간 생명을 품고 기억을 새기며 스스로 견디어 온 것이 우리 인간을 닮았다. 모래 없이는 우리 생활이 없을 만큼 소중하다. 모래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반도체도 모래의 성분인 실리콘으로 만들어진다. 조개 안으로 들어온 모래는 조개가 아름다운 진주를 품게 만든다. 아픈 상처의 고통을 참아내고 우아함의 결정체로 탄생한 것이 아닌가. 고통을 이겨낸 만큼 행복의 크기도 커지는 법이다.

우리의 삶이 모래성이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일상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세찬 바람에 모래언덕에서 밀려난 모래알은 뒹굴다가 데드블레이 쪽으로 날아간다. 한때는 오아시스였던 이곳에 모래알들이 쌓이고 수분이 증발하면서 시나브로 말라갔을 것이다. 말라버린 나무들은 미라처럼 딱딱하게 굳은 모습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오고 있었다. 그 갈증의 고통을 누가 알아주었을까. 석탄처럼 바짝 말라버린 나뭇가지는 오랜 세월을 견뎌낸 만큼 더 단단해져 있었다. 코로나19로 모래성에서 흩어진 우리 인간도 모래알처럼 갑작스럽게 죽음의 언덕으로 날아간 것은 아닐까.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한 채 멀리 떠나보내야만 했던 마음은 바짝 말라버린 나무 보다 더 딱딱했으리라. 모래성의 한구석에라도 박혀서 바람에 흩날리지 않으리라는 피나는 노력이 애처롭기만 하다.

사막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사막 넘어 숲이 있다고 믿고 싶다. 오아시스도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미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지금은 모든 걸 빼앗긴 일상이지만 조금씩 찾아가리라. 이글거리는 태양도 잠시 있으면 저 언덕을 넘어가리라. 석양은 흩어지는 모래알에 빛이 반사되어 더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깜깜한 아프리카의 밤하늘이었기에 별들은 더욱 영롱하게 보였다. 사막에선 신기루를 보았다. 이제 언덕을 거의 다 내려온 기분이다. 저 멀리 숲과 물이 보이는 오아시스가 신기루가 아니길 바라며 오늘도 사막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