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운부암 지팡이 / 김길영
운부암 지팡이 / 김길영
은해사 운부암 뒷등에는 속이 썩어 문드러진 느티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속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새까맣게 타버린 속을 거북 등 같은 껍질이 간신히 감싸 안고 있다. 이파리 떨어진 겨울철에는 살아있는 나무인지, 죽은 나무인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다.
팔공산에 화창한 봄이 오면 말라빠진 느티나무도 봄을 알린다. 거북 등처럼 생긴 껍데기를 뚫고나온 여리고 여린 이파리가 바람에 나풀나풀 거린다.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미치광이 산발한 머리처럼 듬성듬성한 가지마다 이파리를 매닮으로서 다시 한 해의 삶을 시작하노라고 온 천하에 천명하고 있다.
오직 한 자리를 지키며 천삼백 년의 연륜을 쌓아온 느티나무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그 생에게도 죽음의 그림자는 수없이 넘나들었을 것이다. 수천수만 번의 천둥번개에 놀라고, 팔다리가 싹둑 잘리는 아픔도 견뎠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질긴 생을 살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이 느티나무의 출생의 비밀은 의상대사가 운부암의 여러 건물을 짓던 천삼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상 대사가 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할 즈음 현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뒷등에 올라 짚었던 느티나무 가지였다. 땅에 꽂혔던 느티나무지팡이가 땅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천삼백 년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걷지를 못한다. 갓 난 아이는 때가 되면 뒤집기부터 시작한다. 뒤집기가 이루어지면 두 팔과 두 다리를 동원하여 엉금엉금 기게 되고, 빠르면 1년 내에 걸음마를 배운다. 걸음마가 익숙해지면 중심을 잡아가며 걷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중심을 잡고 걷는 연습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한 순간도 중심을 놓을 수가 없다. 두 발로 넘어지지 않고 걷는 다는 건 자기 스스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걷지 아니하고, 두 발로 돌아다니지 아니하고 무엇을 볼 수 있으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무쇠도 녹이 스는 법이다. 사람인들 무한의 생을 누릴 수는 없지 않는가. 노년이 되면 자기 몸의 기능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걷는 것조차 불편할 때가 오기 마련이다. 건강을 잘 지킨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두 발로 걸을 수 있겠으나 다리에 힘이 빠진 사람들은 지팡이에 의존해서 세 발로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운부암 뒷등에서 천삼백 년을 버티고 서 있는 저 느티나무는 그냥 느티나무가 아니다. 운부암에 들어와 화두 하나씩 붙잡고 몸부림치는 숱한 스님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저 느티나무처럼 속을 다 비우다 못해 새까맣게 태워버린 운부암 스님들은 오늘도 밤잠을 설쳐가며 화두를 풀고 있다.
저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로 만족하지 않는다. 운부암 스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천삼백 년을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때로는 운부암에 찾아든 수많은 스님들의 지팡이로 부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앞으로 또 천삼백 년은 너끈히 스님들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지팡이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