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눌목訥木 / 김길영

cabin1212 2022. 2. 13. 06:55

눌목訥木 / 김길영

 

 

 

팔공산 북지장사를 오르다 보면 아담한 솔숲을 만난다. 족히 반백년의 생은 넘어 보인다. 즐비한 소나무 사이사이에는 작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소나무 숲 주변을 둘러본다. 낯익은 나무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어떤 소나무는 활처럼 휘어 있고, 어떤 소나무는 등이 굽어 있다. 굽은 소나무는 바람에 꺾였던 것이 분명하다. 꺾이며 입은 상처들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안쓰럽기도 하다. 한편 바벨을 들고 서 있는 역도선수처럼 완강한 모습이 든든하기까지 하다.

솔숲 언덕배기에는 무덤이 여럿 자리 잡고 있다. 무덤의 풍화된 석물만큼 세월도 오래된 듯하다. 상석의 새김을 읽어보면 뼈대 있는 집안의 묘원임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도 후손들의 발걸음이 뜸해 보이는 것은 관심 있는 사람들의 직감이다.

묘원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은 자손들이 찾아오건 말건 자신들만이 묘지기인 양 버티고 있다. 못난 소나무가 선영을 지킨다는 말은 들었어도 실제로 그와 같은 감정을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나는 갑자기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 했다.

이십여 년 전, 7대조부터 모셔온 선산에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 낸 적이 있다. 소나무 그늘로 인해 생긴 푸른 이끼 때문에 잔디가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짧은 생각만을 했던 것이다. 묘원 주변의 소나무가 나를 대신해서 묘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해보지 않았다.

작은 문중의 장손인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서울에서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얻고서부터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그 세월이 육십 년을 훌쩍 넘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한 해에 한두 번도 선영을 뵙기가 힘들어졌다. 그런 때문인지 선산에서 베어낸 소나무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할아버지의 바람을 저버리고 고향에서 멀리 살고 있다. 장손으로 당연히 선산을 지켜야 하고 선영을 잘 모셨어야 했다. 이제는 마음만 간절할 뿐 행동으로 옮긴다는 게 쉽지가 않다. 매년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생각은 반복되고 있지만 마음 같지가 않다.

오늘 따라 꺾이고 옹이 지고 휜 저들 소나무가 부럽다는 생각에 미친다. 넘어질세라 서로 어깨를 껴안고 남의 선영을 지키는 소나무들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곧고 잘 생긴 소나무보다도 훨씬 늠름해 보이고 의젓해 보이는 까닭은 왜 일까?

어느 조각가는 투박하고 거칠고 어눌한 나무의 본성을 좋아한다고도 했다. 곧고 반듯한 나무도 쓰임새가 있지만 구부러지고 꺾인 나무의 자연스러운 쓰임새를 중요시한다고 했다. 생긴 대로 살아온 천성을 거스르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고 사는 못생긴 나무를 볼 때마다 정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