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인간관계 / 이진술
인간관계 / 이진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좋든 싫든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인간관계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어제는 합천군 가야면에 있는 어느 상가를 방문했다. 88고속도로로 갔으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잘못 생각하여 합천군청 소재지까지 가서 찾아가는데 꼬박 세 시간을 소비했다. 야로에서 여든 살이 가까이 뵈는 어느 촌로를 만나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는지 괭이를 어깨에 멘 손마디가 굵고 거칠어 일을 많이 한 흔적이 뚜렷했다. 바쁜 중에도 우리 일행을 상가 입구까지 안내를 해 주고는 편안히 다녀가라고 인사까지 했다. 각박한 세상에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농촌 인심을 접하고 보니 인간관계는 따뜻한 인사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 자기의 진정한 뜻을 전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여행 중 옆 좌석에 앉은 사람과 통성명을 하고 지내는 것도 여행을 즐겁게 하는 비결 중 하나다. 고향은 어디며, 성씨는 누구며,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공통점이 있는지, 서로 관련지어 보고, 한두 가지 유사점이 있으면 당장 얼굴빛이 달라지며 친근감을 느낀다. 특히 객지에서 고향이 같으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
초면에 타인을 만나 쉽게 대화를 하며 인사를 먼저하고 금방 친해지는 사람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봐야한다. 그분의 인품과 학식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객지 생활 50여 년 속에서도 정겹게 마주 앉아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를 찾아보기 힘드는 세상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옛 친구를 버리지 마라. 새로 사귄 친구는 옛 친구만 못하다. 새 친구는 새 술과 같은 법, 오래되어야 제맛이 난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 세상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처신을 하면 바보 취급을 당하고 손해를 본다는 것이 통념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인간관계는 대화로 시작해서 대화로 끝난다.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듣는 것이 절반이다.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남을 인정하며, 상대가 하는 일에 격려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직장 동료와 친해지는 비결은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인사를 잘하면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는다. 인사는 인간관계의 시작이라고 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최초 30초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본다. 처음 10초간은 겸손한 마음으로 다음 20초는 분위기에 맞는 대화를 찾아낸다.
인간관계가 좋으면 직장 내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더라도 그 일은 묻혀가고 동료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인간관계는 거래를 하듯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고 한다면 도리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신뢰가 쌓이고 진실한 대화로 인간적 유대관계가 깊어지면 저절로 참다운 동지애가 싹틀 수 있다.
미국 카네기 공대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1만 명을 대상으로 ‘성공의 비결’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종래의 성공 조건이라고 믿었던 두뇌, 기술,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은 불과 15%였으며, 나머지는 인간관계를 잘해서 성공하였다는 보고서가 있다. 실력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전부가 아니라고 흔히 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모 회사에 만년 계장으로 있는 K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만년 계장」이란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어있었지만 입사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고 입사동기 중 가장 빨리 계장으로 승진한 저력 있는 계장이었다고 한다. 이런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왜 만년 계장으로 전락하여 자료정리나 하는 한직으로 밀려났을까?
그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상사와 다투기를 잘하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같이 근무하는 부서의 책임자는 “자네가 뭘 안다고 그래! 건방지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주의도 자주 들었다. 안하무인이 되었으니 윗사람부터는 고립을 당했고, 동료 직원으로부터는 소외당했다. 그는 마침내 상사의 신임을 잃었고 결국 무시당하여 승진 기회를 잃었다. 재능은 있어도 인간관계가 좋지 못하여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여 끝내 실패의 그늘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이렇게 좋은 인간관계의 구축은 행복에의 첫걸음이다. 좋은 인간관계에서는 행복과 성공이 따르고, 나쁜 인간관계에서 불행과 실패가 따른다.
인간관계는 만사를 좌우한다. 인간관계에서 나이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을 잘 극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연세 높은 어른을 존경하는 경로우대의 시대이다. 어릴 때 배운 바 있는 동몽선습(童蒙先習)에서는 나이가 배(倍)이면 아버지뻘로 섬기고, 10살 많으면 형뻘로 섬기고, 5살이 많으면 어깨동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세월이 많이 변했지만 이에 적응하면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예의 없고, 신의 없는 인간, 말만 많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인간, 은혜를 모르는 비도덕적 인간으로 낙인찍히면 인생의 열렬한 응원자가 없으니 불행한 인생 종말을 맞게 된다. 인간관계는 사소한 말 한마디로 금이 가는 일이 많아 대인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운다. 나 자신 마음공부를 하고, 나의 부족한 점은 상대의 좋은 점을 배우면서 채워 나간다. 친구 간에 신의와 의리를 지키며,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서로 간 이해와 화합을 이루고, 적은 일에도 정성을 쏟는 자세로 일한다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그만큼 사회생활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