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엄마의 무릎 / 허숙영
엄마의 무릎 / 허숙영
나는 구순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다. 골이 패인 대나무 뿌리같이 뼈마디가 불거진 엄마의 무릎에서는 오래된 황죽으로 만든 퉁소 소리가 날 듯하다. 그 소리는 서리서리 한을 풀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신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영양분 다 나누어주고 텅 빈 뼈마디에서만 날 수 있는 소리. 세상에서 가장 편한 안식처가 되어 자식들 잠재워 길러낸 무릎에서만 날 수 있는 소리리라. 엄마는 말없이 무릎을 내어주고 세월에 닳고 닳은 풀비 같은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 올리고 뺨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는다. 옹두리 선 관절이 아플 법도 하건만 물리치지 않는다. 요즘 들어 불면의 밤을 보내는 딸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무릎을 내어 준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다 내어 주겠다는 뜻이 아닐까. 언제든 베고 누워도 좋다는 암시이며 상처를 어루만져 줄 손이 가까이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무릎은 통증까지 가라앉히고 배고픔도 잊게 해 주는 묘한 마술 같은 믿음을 갖게 해 준다.
철모르던 시절, 횟배라도 앓는 날이면 무릎에 뉘어놓고 손바닥을 비벼 살살 문질러 주면 거짓말처럼 나아 소르르 잠이 들지 않던가. 그 뿐인가. 손수 일군 산비탈 거친 돌 밭일이 가년스러웠겠지만 밤이면 양 무릎에 자식들 누이고 끝없는 이야기를 펼쳐냈다. 모기라도 달려들까 봐 쉼 없이 손부채질을 해 가면서였다. 서로 밀고 당기며 얻은 엄마의 무릎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안락한 요람이었다. 우리 대나무평상에는 엄마의 맛깔나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러 동네 아이들이 자주 모여들었다. 춘향전이나 심청전, 외할아버지가 빗자루도깨비와 한판 씨름을 한 무용담, 한겨울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부모봉양한 동네 총각의 효심 등 지금 생각하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전생에 엄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전기수였던 것처럼 눈에 보이듯 몸소 겪은 듯 생생하게 풀어놓는 재주가 있었다. 긴 한숨을 씨로 날로 양념처럼 짜 넣는 것이 당신의 삶이었다는 것을 짐작도 못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이 내어준 탓일까. 엄마의 무릎은 일찌감치 탈이 났다. 쉰 중반의 나이에 빨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지랑대처럼 내려앉아 버린 것이다. 무릎을 펴지도 오므리지도 못하게 되어서야 내게 연락이 닿았다.
엄마는 그랬다. 숨이 넘어갈 정도가 아니면 자식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무조건 참아 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엄마가 무릎을 펼 수 없다는 것은 당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집 기둥이 맥없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산허리 고둥 껍질 같은 골목길을 한참 따라가야만 하던 나의 단칸 신혼집에 엄마를 모셔왔다. 동네사람들이 용하다고 적어 준 주소 한 줄이 적힌 쪽지를 들고 의사를 찾아 나섰다. 겨우 업고 나온 엄마를 길가 돌팍에 앉혀놓고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렸다. 아주 가끔씩 차가 왔지만 내가 엄마에게 등을 갖다 대는 사이 꽁무니를 빼 버렸다.
몇 시간 만에 겨우 찾아가니 그곳은 진료기구 하나 없는 가정집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거실에 비좁도록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 하나 겨우 낄만한 틈바구니에 앉아 저승길 문턱에서 부활한 듯한 경험담을 귀동냥하고 있으려니 왠지 마술처럼 엄마도 걸어 나갈 것만 같았다.
한나절을 다 보낸 후 엄마의 몇 마디 말을 들은 명의라는 사람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얼굴로 ‘골수암입니다’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여생이 며칠 되지 않는다고 했다. 더 볼 것도 없으니 그만 모시고 나가서 맛있는 거나 많이 해 드리라 한다. 지축이 무너지듯 이번에는 내가 주저앉았다.
엄마의 무릎에 깃든 바람은 산비탈 시뻘건 황토 흙을 일굴 때 살얼음처럼 파고들었으리라. 허리 한 번 펼 수 없었던 모를 낼 때 굳어 갔으리라. 장마 지면 물에 잠겨 썩어가던 우리논의 볏단처럼 짓물러 갔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무릎을 얼마나 꺾어야만 했을까. 절대로 굽히지 않을 자존심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릎을 굽혔을 터이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한 내가 가끔씩 까닭도 없이 혼절하는 날이면 한 밤중에도 둘러업고 십리도 더 되는 길을 달려 굳게 잠긴 의원의 문을 두드렸고, 무사하게 해 달라고 정화수 떠놓고 무릎 꿇고 비는 것도 엄마 몫이었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위해 무릎을 굽힐 때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걷다 밀고 들어간 성당의 컴컴한 기도실 한 구석에서 나는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간절함은 하늘까지 닿을 수 있다고 했던가. 온가족이 합심해서 약을 찾아 헤맸다. 어떤 약이, 누구의 기도가 닿았는지 탱탱하게 불어놓은 풍선처럼 터질 듯 아른거리던 얼굴의 부기도 조금씩 빠졌다. 무릎의 통증도 줄어 몇 년 만에 바깥바람을 쐴 수 있었다. 기적이란 그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로키산맥 해발 삼천 미터 높이에는 수목한계선 지대가 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 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 꿇고 있는 모습으로 평생을 난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이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이글을 읽으면서 나는 엄마의 무릎을 떠올리고 있었다. 십여 년을 노망에 중풍까지 든 시아버지가 세상을 뜨지 시삼촌까지 맡아 돌아가실 때까지 무릎걸음으로 대소변을 받아내었다는 하소연을 들어서도 아니다. 한국전쟁 중 피난길에 콩 튀듯 작열하는 총탄에 업고 걸린 자식들 잃고도 의연하게 살아내서만은 더더욱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공명이 잘되어 아름다운 음을 들려주리라 인내하며 남은 자식을 위해 고스란히 내어준 무릎 때문이 아닐까.
며칠 잠을 못자 뒤척이고 난 후 엄마의 무릎 위에 머리를 누이고 싶어져 먼 길을 달려갔다. 이순을 눈앞에 둔 내가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세상시름 다 잊고 순하디 순한 아이가 되어버린다. 싸하게 퍼지는 파스냄새를 밀어내고 엄마의 냄새를 찾아 무릎을 끌어안으며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떼를 써 본다. 엄마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마디 굵은 퉁소 소리로 민요 한 자락을 읊어 내린다.
“ 아가 아가 우리아가 … …”
스르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