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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홍어에 대한 아련한 추억 / 서민용

cabin1212 2022. 8. 26. 05:57

홍어에 대한 아련한 추억 / 서민용

 

 

 

나에게는 홍어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그 특유의 톡 쏘는 맛이 기억 저 바닥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맛의 추억이랄까. 마치 첫사랑의 어설픈 키스처럼 덜 익은 사과를 베어 문 것과 같은 상큼하면서도 시큼털털한 맛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어릴 적, 여수 시내 선창가 뒤편에는 선술집들이 많았다. 그때는 여수 인근 바다에서도 홍어가 많이 잡혔는지, 그런 선술집에서도 막걸리 안주로 홍어가 나왔다. 아버지는 늘 그 선술집에 계셨다. 작은 유리창이 달린 삐걱거리는 미닫이문을 열면 좁은 실내에 둥근 탁자를 중심으로 등걸 없는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을 마시는 어른들 사이에 아버지는 늘 취해 계셨다.

고리한 막걸리 썩는 냄새와 분탕 칠을 한 작부들의 분내가 야릇한 흥분을 자극하는 가운데, 아버지를 찾으면 작부들 치마폭 사이에서 아버지가 고개를 내밀곤 했다. 옆에는 진하게 화장을 하고, 빨간 입술을 바른 작부가 한복저고리의 고름이 풀어진 채 한 손에는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나머지 한 손에는 젓가락을 쥐고 있었다.

어머니는 늘 나를 보냈다. 위로 누나들이 둘이나 있는데도 어머니는 늘 나를 불러 세워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그런데 아버지는 때때로 둥근 탁자 주변에 계시지 않았다. 좁은 실내를 지나가면 복도 양편으로 다닥다닥 붙은 좁은 방문들이 이어졌다. 그중에 한 방문이 열리고 역시 한복을 입은 작부가 나를 향해 손짓 한다.

문 앞에 선 나에게 그녀는 손에 무엇을 쥐고서 나의 입 앞으로 내민다. 먹으라는 시늉이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입에 넣는 순간, 코를 한 방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싸아’ 하는 느낌이 온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홍어의 처음 맛은 그랬다.

그래도 뱉어내지 않고 그 말랑한 것을 씹어 먹었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뱉어내지 못할 어떤 맛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뱉어내는 것이 지는 것이었고, 어린 마음에도 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의 입맛은 어느새 홍어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아니 점점 더 그 톡 쏘는 맛을 음미하고, 더 자극적인 홍어의 맛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 입이 유난히 컸던 여인네는 나에게 더 많이 삭힌 홍어를 주었던 것 같다. 내가 홍어를 받아먹고 찡그린 얼굴을 하면 꼭 나의 양 볼을 쥐고 그 큰 입술로 작은 나의 입술을 덮어 버리는 성추행을 했던 그 여인네.

그렇게 일찍 홍어의 맛에 길들인 덕을 본 적도 있다. 직장 동료가 상(喪)을 당해 전라도 지방으로 조문을 갔는데, 홍어가 나왔다. 같이 간 부장이 맛있다며 칭찬을 했는데, 그 동료는 부장이 홍어를 진짜 좋아하는 줄 알고 장례를 마치고 홍어를 잔뜩 들고 왔다. 회식 자리에 홍어를 내놓는데, 지금처럼 냉장 보관이 잘되지 않아서인지 너무 삭히어 그야말로 심한 암모니아 덩어리 냄새가 났다. 부서원 모두는 코를 쥐고 고개를 내두르는 가운데, 나는 그 홍어를 맛나게 안주 삼아 먹었다. 주위에서는 ‘대단하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며 비행기를 태운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가끔 홍어를 먹지만 옛날처럼 톡 쏘는 맛은 찾기 어렵다. 그만큼 길들여진 입맛일지도 모르겠고, 옛날처럼 홍어를 심하게 삭히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홍어는 역시 그 톡 쏘는 암모니아 냄새로 먹는 것이 맞을 것이다.

누구나 과거의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한다는 정신과 전문의들의 연구 결과와는 별도로 나의 홍어에 대한 추억은 한복 입은 여인네의 큰 입에서 풍기는 오래된 막걸리 냄새와 어울려져 시큼하면서도 야릇한 흥분을 일으키는 맛이다. 그래서 홍어는 막걸리와 함께 먹는 건가? 그럼 한복 입은 여인네는 어디에서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