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무위사無爲寺 / 김길영
무위사無爲寺 / 김길영
걺은 시절 하계캠프장에서 누군가가 내 모자챙에다 무가평생無價平生이라고 써 준 적이 있었다. 모자챙에 쓰인 ‘무가평생’을 보는 동료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평생 가치 있는 삶을 살아라.’는 쪽과 ‘잘못된 문장’이라는 쪽으로 나뉘었다.
그 때 수학담당 鄭 선생이 답을 내어 놓았다. 없을 무無자에 대한 해석이었다. 無자는 없다는 뜻도 있지만, 너무 커서 헤아릴 수 없는 숫자가 없을 無자라고 짚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數 즉, 무량수無量數는 10의 68제곱이었다. 그와 같이 無자가 너무 커서 가늠하기 어려운 수량을 셈하는 단위로 쓰였다.
며칠 전, 벼르고 별러서 강진 무위사無爲寺를 다녀왔다. 사찰탐방 형식으로 갔기 때문에 사찰의 규모나 구조, 창건 연대, 창건자 등을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긴 하나 나는 사찰의 명칭이 먼저 궁금했다. 철학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창건자는 왜 이 절을 무위사라고 했을까. 절을 떠나와서도 나는 그 끈을 놓지 못했다.
국어사전에는 무위無爲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음’ 또는 ‘무엇을 이루지 못한 상태’라고 적혀 있다. 없을 無자를 ‘없다’라고 쓰임에는 유무를 가릴 때이며, 크고 많다고 할 때에는 ‘무량대수’ 또는 ‘무량수’라고 활용되기도 한다. 또 없을 無자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어로 쓰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無爲는 하지 말라는 뜻인데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도가道家들은 남과 다투거나 논쟁을 싫어한다. 그들은 법률과 권력이 인간의 본성을 억압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가장 통제가 없는 사회가 가장 잘 다스려진다고 생각한다. 법으로 올가미를 씌우지 말고 차라리 그대로 내버려 두는 편이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길이며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여겼다.
무위사극락보전 옆에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는 형미逈微 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탑의 기록을 보면 무위사는 원효국사가 창건주로 되어 있다. 905년 가지산문의 형미스님이 중수하면서 ‘무위갑사無爲岬寺’에 머물렀다고 쓰여 있다. 갑岬이라는 글자는 ’기슭‘이라는 뜻 이외에 무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글자였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제12권 제11경>에는 “탐욕의 소멸, 분노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 무위이며, 온갖 괴로운 의식작용이 소멸된 상태가 열반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무위는 온갖 분별과 차별과 망상이 끊긴 마음의 상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3독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이며, 유위有爲는 그 반대로 온갖 분별과 망상과 번뇌를 잇달아 일으키는 마음작용이라 하였다.
내 80평생을 더듬어보면, 유년시절과 보이스카우트 대원들과 함께 했던 십여 년, 그리고 일손을 놓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난 10년이 가장 행복 시기였다. 그 30년을 제외하면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시간들이었다.
유년시절은 손 귀한 집 맏손자로 태어나 할아버지, 할머니 품속에서 세상물정 모르고 살았던 시기다. 보이스카우트 활동 역시 아이들과 캠프를 차리고 여행을 다니면서 세상을 넓게 바라보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던 시기였다. 마지막 십년인 지난 십년은 나의 글을 쓰면서 나를 찾는 일에 골몰한 시기였다.
나머지 50년은 6.25전쟁 후유증을 앓으면서 홀로서기의 시발점이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궁핍하지 않는데도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밑도 끝도 없이 모으려고 애쓰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화투판에서 돈을 잃고 뒷자리에 물러나 앉아 술잔이나 기우리는 뒷모습을 보인적도 있었다. 때로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스스로 얽매일 때도 많았다. 삭이지 못한 분노는 내 몸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뼈를 갉아먹고 구멍을 숭숭 뚫어놓았다. 몸이 멀쩡한데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세상을 바른 눈으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나는 지금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풍족하진 않지만 자식들이 의식주를 챙겨주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라곤 글을 쓰는 일다. 시간을 쪼개어 나를 찾는 일에만도 하루해가 짧다. 무엇을 탐하는 일은 나와 거리가 멀어졌다. 가끔 예전에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가도 곧 오뚝이처럼 제자리로 돌아서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