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상쾌한 덫 / 정태헌

상쾌한 덫 / 정태헌
덫이다. 차 문을 여는 순간, 뜻밖에 운전석 창틀과 실내 거울 사이에 거미줄이 눈에 띈다. 주춤 뒤로 물러서며 숨을 들이쉰다. 한 뼘 정도의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기억 속의 여느 거미줄보다 촘촘하고 섬세한 그물網이다. 바쁜 아침 출근길인데 차 문을 열어놓은 채 무연히 바라보고 있다. 하필 이런 곳에 거미줄을 친 것일까. 다리에 털을 감은 거미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릴 적, 거미줄이 싫었다. 산딸기를 찾아 숲 속을 걷다가 거미줄에 얼굴이 휘감길 때는 스치는 뱀을 볼 때처럼 소름이 돋았다. 뒤란 음음한 대숲에서 잠자리를 잡다가 거미줄 한가운데서 이쪽을 노려보는 듯한 까만 거미를 보는 순간 잔뜩 긴장하곤 했다. 어둑한 뒷간에 들어가다가 몸에 감겨오는 거미줄에 놀라 질겁하기도 했다. 게다가 세월 따라 거미줄은 그에 못지않은 그악한 세상살이의 거미줄과 겹쳐져 늘 덫으로만 여겨졌다.
먹이가 파닥거리다 힘이 빠지면 독침을 놓는,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먹이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진액을 쪽쪽 빨아먹는, 먹잇감을 집요하게 기다리는, 정자집을 흔들어대며 상대에게 교태를 부리는, 먹잇감을 다리로 톡톡 건드리며 희롱하는, 먹이를 유인하기 위해 엉너리치는, 포획 후 상대의 턱을 물어뜯는, 먹이를 보쌈하듯 칭칭 동여매는, 잡은 먹잇감으로 짝의 마음을 후려내는, 죽은 먹잇감을 줄에 매달아 속임수를 쓰는, 간교하고 음흉하며 흉악한… 이러한 흉계가 어찌 거미뿐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방천지가 거미줄인데.-
한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거미줄이 덫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야릇한 기분이 돼 거미줄을 찬찬히 바라본다. 거미줄은 씨줄과 날줄로 짜여 있다. 거미는 오르락내리락 좌우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면서 본능에 각인된 설계도대로 포충망을 만들었을 거다. 공중에 쳐놓은 그물, 각진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간 씨줄 그물에 축대 역할을 하는 날줄을 양쪽에 매달아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섬세하고 정교하다. 그물을 살짝 건드려본다. 끈적끈적한 액이 씨줄엔 묻어 있지만 날줄엔 없다. 거미는 그런 날줄만 밟고 다니기 때문에 자신이 친 그물에 걸리지 않으리라.
하나 거미는 아무 데나 거미줄을 치진 않는다. 먹잇감들이 방심할 만한 곳에 그물을 쳐서 부주의를 노린다. 어둑하고 으슥한 곳이나 몸을 숨길만 한 데가 있어야 거미는 그물을 친다. 한데 그런 곳과는 무관한 승용차 안에 무얼 포획하려고 친 그물일까. 어디에 숨어 있는지 거미를 찾을 수가 없다.
어떻게 거미가 차 안으로까지 들어갈 수 있었을까. 외진 구석이나 으슥한 천장에 쳐진 거미줄은 가끔 볼 수 있었지만 차 안이라니 생각할수록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더구나 도회지 아파트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 거미가 들 리가 있겠는가. 혹시 나무 그늘 밑에 주차를 하곤 했는데 부주의로 창문을 내려놓고 내린 틈을 타 기어들었을까. 차 안을 다시 기웃거려 본다. 어디에 숨어 있을까. 한 발짝 물러서서 몸을 숙여 거울 뒤쪽과 천장 쪽을 바라본다. 기억에 거미는 그물 한가운데 죽은 듯이 있거나 날줄 끝에 숨어 있었으니까.
아침 햇살에 영롱한 거미줄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혼란이 온다. 한 마리일까. 아니면 암수 짝일까. 이맘때쯤이면 곤충들의 짝짓기 활동이 활발하기에 겨울을 앞두고 차 안으로 기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시 차 안임에도 그물을 쳐야 하는 생존 본능이 발동한 것일까. 거미의 생존 방식이 궁금해진다. 곤충 대부분은 머리 가슴 배가 있지만 거미는 머리와 배밖에 없어서 날 수조차 없다. 어둠 속에서 그네를 타듯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수를 놓으며 촉감만으로 그물을 치는 거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얼마나 진지하고 경쾌한 모습인가. 이제껏 지녔던 거미에 대한 인식에 혼란이 깊어진다. 숨어서 나를 먹잇감으로 노려보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미묘하게 휘둘린다. 섬세하고 영롱한 거미줄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찬란하고 함초롬하다. 이제껏 거미에 대한 기억은 피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는지 의구심까지 든다. 거미는 괴괴한 어둠 속에서 그물을 쳐놓고 아침을 맞이하였으리라. 미물이지만 그 생존 방식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처럼 선명하고 섬세하며 정교한 그물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어쩌면 거미는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서만 거미줄을 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문뜩 들기 시작한다. 거미가 정성 들여 그물을 치는 것은 치열한 삶의 자세인지도 모른다.
차츰 눈에 비친 거미줄이 진지하면서도 상쾌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건 유혹의 덫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의 아름다움이요 무언가 조용하고 낮은 울림이다. 어둠 속에서 밤새 내 그물을 쳤을 생존의 진지한 태도와 섬세한 그 내공이 과연 내게는 있었던가를 곱새겨 본다. 이미 그 치열함은 증발해 버렸고 섬세함은 냉랭하게 박제되어버린 지 오래지 않은가.
경계해야 할 것은 거미가 쳐놓은 거미줄이 아니라 스스로 내 마음속에 쳐놓은 삿된 그물이다. 정작 걷어내야 할 것은 저 거미줄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얼크러진 그물이다. 바쁜 출근길, 아침 햇살에 빛나는 거미줄 때문에 오늘은 지각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하루쯤 지각한들 무에 그리 대수이랴. 오늘 아침은 거미줄 덕분에 머릿속이 외려 맑고 서늘하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차 안 어딘가에 있을 거미와 당분간 동숙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