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리고 수필 / 신현식
어렸을 적, 겨울의 새벽녘이면 동생과 나는 깔고 자던 요 밑으로 기어들곤 했다.
어머니가 잔기침을 하시며 갈아 넣은 연탄불이 그 때쯤 온기를 내뿜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있으면 멀리에서 교회의 파이프 올겐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련한 소리는 천국으로 나를 스르르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동생과 나는 그 소리와 따뜻함에 취해 두 벌 잠에 빠져들곤 했다.
학창시절의 나는 뭐 하나 특출하게 잘 하는 게 없었다. 글짓기는 더욱 그랬다. 거침없이 써 나가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나는 첫 문장에 매달려 늘 끙끙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학기 초 새 책을 받아오던 날엔 국어책만큼은 밤을 새우더라도 다 읽었다. 그런 내가 책다운 책과 만난 것은 학교를 졸업한 백수시절이었다. 심심하여 읽기 시작한 ‘노벨문학상전집’에 나는 그만 빠져들고 말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영화에, 팝송에, 책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썰물은 이런 것들을 모두 휩쓸고 지나갔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살기에 바빠 영화나 책과는 너무나 먼 곳에 서 있었다. 그러던 내가 다 늦게 문학에 발을 디뎠다. 첫 문장에 매달려 끙끙대던 사람이 수필작가가 되었다.
수필은 체험에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게 쓰는 장르다. 수필은 생각과 느낌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어떤 깨달음을 캐내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수필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수필의 시대라 할 만큼 요즘 수필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 두 손 들어 환영할만한 일이다.
수필은 삶의 가치를, 생활 속에 피어나는 향기를, 인생을 바라보는 멋을, 자연이 펼치는 아름다움을, 가슴속의 애틋한 정을 글로 쓰는 작업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늦게 시작한 수필이, 문학회 활동이 나는 참 재미있다. 문학회는 작품 토론회와 강좌를 매달 연다. 열띤 토론과 강좌는 강의실을 뜨겁게 달군다. 이런 때문일까, 토론과 강좌가 있는 날이 설레고 기다려진다.
문우들과의 만남도 마냥 즐겁다. 수필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져서 그런지 정이 더 간다. 문우들은 향기롭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을 만나면 나는 항상 가족을 만나는 것 같다. 그들이 있는 곳은 마치 내 어릴 적, 교회의 올겐 소리와, 두꺼운 이불과, 따뜻한 아랫목이 있던 곳, 바로 그 집에 온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