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6566)
[좋은수필]월드 이발소 / 이재훈 월드 이발소 / 이재훈 우리 동네 입구에는 허름한 이발소가 하나 있다. 출입문 위에는 란 조그만 함석 간판이 삐딱하다. 처음 나도 그 ‘월드’란 단어가 거슬렸다. 한옥을 개조한 이발소의 규모나 외양에 비해 너무 과장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페인트는 언제 칠했는지 곳곳이 녹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고 문짝은 아귀가 안 맞아 쥐가 드나들 것 같다.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이발소 표시등만이 이발하러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부터 이곳에서 이발을 한다. 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난다. 문을 열자 나를 맞은 건 싸구려 향수 냄새와 비누냄새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지린내 같은 세월의 냄새가 그 밑에 숨어 있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희뿌연 거울 위에 걸려 있는 두 개..
수필을 밝히다-머리말(4)
[좋은수필]버리며 사는 나날 / 권남희 버리며 사는 나날 / 권남희 낙엽을 몰고 오는 바람은 역시 낙엽 빛깔이다. 그런 울적한 낙엽 빛의 바람이 내게로 스며들어 가슴을 헤집을 때면 나는 빈 들에 선 나무가 된다. 가지 끝에 매달린 갈잎의 떨림으로 몸을 가눌 수가 없어진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갇힌 일상의 반복과 가져도 가져도 성 차지 않는 욕망으로 마음이 뒤흔들리는 날은 으레 그렇다. 그럴 때면 나는 버릇처럼 손때 묻은 지난날 소지품들을 끌어내 놓곤 소중하게 매만지기도 하고 속절없이 버리기도 하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한참 동안을 그러노라면 흐트러진 마음이 채곡채곡 개켜지기도 하고 곰삭은 감정의 찌꺼기들이 걸러지기도 하니까.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취할 것은 다부지게 끌어안을 줄 아는 현명, 그게 현대인의 지혜라던가…….사람은 항상 마음..
[좋은수필]아버지 마당에 푸른 달빛이 / 유호영 아버지 마당에 푸른 달빛이 / 유호영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꼼꼼히네'라고 불렀다.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 모두 그렇게 불렀다. 바깥양반이 부지런하고 빈틈없어 우리 집 마당에선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한다고들 했다.아버지는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다. 짚단을 묶을 때만 해도 그랬다. 한 단 한 단 단단하게 묶어 그 밑동을 땅에 탁탁 내리치셨다. 그러면 짚 밑동이 밀가루 국수 다발처럼 가지런해졌다. 그렇게 묶은 짚단을 차곡차곡 마당에 쌓았다. 지붕 높이까지 네모반듯하게 쌓아 올린 후 아버지는 사다리를 타고 천천히 내려오셨다. 그러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낟가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마당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쓸어 모으셨다.나뭇단을 쌓을 때는 더 정교했다. 나무 밑동을 두 줄로 맞대어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고 가..
[좋은수필]하늘과 물 / 김열규 하늘과 물 / 김열규 ‘우리 둘은 하늘과 땅 사이다.’이 말에는 두 사람은 앙앙거리는 원수끼리다. 도저히 서로 통할 수 없는 사이를 두고는 흔히들, ‘하늘과 땅 사이’라고들 한다. 일반 언어생활에서는 그런 게 하늘과 땅이 서로 그 지경이니 물이라고 하늘과 단짝일 수는 없다.한데 자연에서는 하늘과 땅이 상통하듯이 하늘과 물 또한 서로 소통하고 있다. 아니 단짝이기도 하다.하늘의 푸른빛은 절로 바다며 강 그리고 호수의 물살에 비쳐진다. 첫새벽의 노을은 온 바다를 붉게 타오르게 한다. 야밤에 옹달샘에 어리는 달은 그리운 이의 얼굴을 닮는다. 달이 차고 기울고 함에 따라서 바닷물은 썰물이 되곤 한다. 하늘과 물, 물과 하늘은 그렇게 여간한 단짝이 아니다.그러기에 신화에서도 하늘과 물은 서로 달콤하게 궁합을 맞..
[좋은수필]고사목의 변(辯) / 이은희 고사목의 변(辯) / 이은희 고사목이 눈에 든다. 금방이라도 연둣빛 신록에 묻혀 나무줄기 여기저기에서 푸른 잎이 돋아날 것만 같다. 구병산 팔백여 미터 산길을 오르는 중에 만난 허옇게 말라버린 소나무. 꽃 빛바랜 화석 같다. 몸체가 굵고 하얘서 유난히 도드라진다. 시선은 나무의 줄기를 따라 하늘을 바라보지만, 신록에 가려 우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사목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군중 속의 고독'이란 낱말이 뇌리를 스친다. 혹여 이 나무가 바로 '고독의 실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고독도 깊으면 병이 되고, 관계 또한 과하면 탈이 나지 않던가. 저 많은 나무 중에 누구와도 소통이 어려워 지쳐버린 나무인가. 주변의 수종을 살펴보니 대부분 활엽수종이다. 참나무와 아기단풍, 산진달래 등속이..
수필을 밝히다-머리말(3)
[좋은수필]타향만리 그 친구 / 정호경 타향만리 그 친구 / 정호경 내가 여기서 말하는 ‘타향만리他鄕萬里’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집에서나 술자리에서나 마음이 허전할 때 즐겨 부르던 고복수의 와는 다른 것으로 옛날 중학 시절 꼬박 6년 동안을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책상을 나란히 한, 내가 지어준 친구의 별명이다. 이 노래는 1930년대에 발표된 대중가요로 짐작되는데, 그 구슬픈 가락이나 가사의 내용을 보면, 모르기는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 피 말라 가슴 여위어가던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도 짐작이 되지만, 이는 물론 일제 때 우리가 가난에 찌들었던 시대는 같은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제의 탄압과는 관계없이 순수한, 우리의 인생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