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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역전앞갈대 / 김창식 역전앞갈대 / 김창식 1980년대 초 서울역과 염창동 일대에서 낮 시간대를 주름잡던 시절 이야기다. 밤 시간을 책임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서울역 시계탑에서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한일빌딩에 근무하던 기획사(항공회사) 지점이 자리했다. 점심을 먹고 오다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다 짚이는 바가 있어 부근의 '광택(구두세탁)주식회사' 간이 철제문을 밀고 들어섰다. 안면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사장에게 여차여차 상황을 설명하고 연통을 넣었다. 다음날 그가 내게 말했다."보자시는데요.""지금 보고 있잖아요.""아니, 저 말고요.""그럼 누가?""우리 큰형님이요!"'역전앞갈대'로 불리는 그와 서울역사 뒤쪽의 중국집 '외백外伯'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옆이 트인 붉은 비단 옷을 입은 '꾸냥'..
수필을 밝히다-1강(23p) 『수필을 밝히다』저자 ; 신 현 식정가 ; 15.000할인가 ; 12.000원(배송)구입 문의 ; 신현식 010-3909-7939(문자 주시면 계좌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은수필]늦가을의 서정 / 김재희 늦가을의 서정 / 김재희 화려하던 단풍잎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나면 휑한 바람만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서 곤두박질친다. 그러나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바라보는 맛을 놓칠 수 없는 때다. 떠나기 위해 마지막 마무리하는 가을 뒷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산을 찾았다. 모악산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등산 코스지만 요즘처럼 계절이 어중간한 평일인 경우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드문드문 한 두 명씩 가는 사람들로 적당히 조용하고 한적한 산길이었다. 계곡물소리도 여느 때보다 여유롭게 다가왔다. 중간중간 작은 웅덩이에 차곡차곡 가라앉은 낙엽들. 곱디고운 빛깔은 흐르는 물에 몽땅 떠내려 버리고 희멀건 모습이다. 그래도 아직 원형 그대로의 잎 모양새가 눈길을 머물게 했다. 쫙 펴진 손바닥 같은 단풍잎엔 당당함이 들..
수필을 밝히다-1강(22p)
[좋은수필]억새 / 박종숙 억새 / 박종숙 가슴이 비어 있어 그리도 눈부신 꽃을 피우는 것일까. 욕심이 없어 은빛 너울 속에 손을 흔드는 것일까.바람이 불러오며 그 무리 속에서 수런수런 들리는 듯한 이야기가 있다. ‘모두가 떠나고 있어요.’ 멀리 논둑 한 자락에서, 또는 잎 진 풀숲 속에서 하얗게 손끝을 세우고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꽃! 그들은 언제나 빈 들녘에서 행인을 부른다. 누군가를 유혹하려는 듯 길 가던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순결한 모습의 춤사위를 펼치는 유희의 군락이다.억새는 가을의 늦 동산을 지키기 위해 피어난다. 먼 산에 단풍이 들고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기다리기라도 한 듯 멀쑥한 키를 앞세우고 조용한 축제를 벌이는 우아함이 억새의 참모습이다.11월의 제주는 하얀 융단으로 치장되어 있는 섬이..
[좋은수필]늦가을 풍경 / 진웅기 늦가을 풍경 / 진웅기 바람이 부니 길가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일제히 잎새들이 쏟아져 날아오른다. 허공으로 흩뿌려져서 참새떼처럼 서로 맴돌고 춤추며 팔랑거린다. 그 짧은 한순간의 비상에 소리들을 지르고 기뻐한다.산길로 들어서니 나무 사이에 싸늘한 공기가 돈다. 새로 떨어진 아카시아의 샛노란 이파리들이 쫙 깔려 황금의 카펫을 이루고 있다. 그 위를 나의 발걸음은 엄숙한 느낌으로 걷는다.나무들은 잎이 반쯤 떨어져서 헤숭헤숭한 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숲은 여름 동안 꼭 닫고 지냈던 밀회의 무거운 커튼을 지금 조금씩 열고 있다.잎이 조금씩만 달린 저 가지들은 얼마나 보기가 좋으냐. 여름의 가지는 들어찬 녹음으로 숨이 답답하고 겨울의 나무는 춥다. 만추의 가지는 몇 개씩 헤일 수 있게 달린 잎새들이 동양화를..
수필을 밝히다-1강(21p)
[좋은수필]생의 무늬 / 정태헌 생의 무늬 / 정태헌 그날, 내소사來蘇寺로 들어서는 길목은 인적이 뜸했다. 일주문을 건너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사백여 미터의 전나무 숲길, 침엽수 맑은 향내가 코끝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수백 그루 들어선 조붓한 그 숲길에서 그 사람과 마주쳤다. 사십 중반의 승복 차림인 그는 전나무 숲을 올려다보며 맞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간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그의 얼굴을 스치곤 하였다.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있을까 싶다. 몸매는 여위었지만 얼굴은 청량했으며 눈매가 순하고 입가에 흐르는 미소가 그윽했다. 정갈하고 투명했다. 살아온 길이 그랬을까, 아니면 닦아놓은 결과였을까. 그동안 생의 여정은 어떠했으며 마음자리는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잘 생긴 것도 아닌 평범한 얼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