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619) 썸네일형 리스트형 수필을 밝히다-1강(24p) [좋은수필]신발 한 켤레 / 고태현 신발 한 켤레 / 고태현 며칠 전 후배 L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안부를 묻던 중에 아프리카 오지로 떠난 후배의 사촌 누나인 수녀님의 소식을 물었더니, 구랍(舊臘)에 돌아가셨단다.몇 년 전 공항에서 무거운 배낭을 지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짐이 있는 걸 보니 어디 멀리 가시는가 봐요?”“멀리 가지, 임지(任地)인 아프리카 오지(奧地)로 가는 길이야.”연배로 치면 쉴 때가 가까운데 먼 길을 떠나신다는 말에 낯선 타국에서 병이라도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아니, 왜요? 젊은 수도자들도 많은 데 나이 드신 수녀님께서 그 멀고 힘든 곳으로 가야해요?”“그곳에도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이 그곳으로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쁘게 떠나고 있어. 나는 괜찮아,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 [좋은수필]아차산 / 박완서 아차산 / 박완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홀로 산길을 걷는데 문득 김현승의 중의 마지막 연이 내게로 왔다. 위로받을 수 없는 섬뜩한 느낌으로, 산의 나무들이 마른 나뭇가지를 준비하는 바스락 소리가 아무런 무게도 없이 어깨를 쳤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토록 찬란했던 잎의 영화를 어찌 저리 무심히 떨굴 수가 있을까. 내가 있는 힘을 다해 세파世波와 문득문득 이 세상에 때어나길 참 잘했다고 믿게 해준 향기로운 도취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받아들여야 할 나이는 종교도 위안이 되지 않을 만큼 초라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애면글면 이룩했다고 믿어온 약간의 소유와 알량한 명예를 마.. [좋은수필]역전앞갈대 / 김창식 역전앞갈대 / 김창식 1980년대 초 서울역과 염창동 일대에서 낮 시간대를 주름잡던 시절 이야기다. 밤 시간을 책임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서울역 시계탑에서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한일빌딩에 근무하던 기획사(항공회사) 지점이 자리했다. 점심을 먹고 오다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다 짚이는 바가 있어 부근의 '광택(구두세탁)주식회사' 간이 철제문을 밀고 들어섰다. 안면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사장에게 여차여차 상황을 설명하고 연통을 넣었다. 다음날 그가 내게 말했다."보자시는데요.""지금 보고 있잖아요.""아니, 저 말고요.""그럼 누가?""우리 큰형님이요!"'역전앞갈대'로 불리는 그와 서울역사 뒤쪽의 중국집 '외백外伯'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옆이 트인 붉은 비단 옷을 입은 '꾸냥'.. 수필을 밝히다-1강(23p) 『수필을 밝히다』저자 ; 신 현 식정가 ; 15.000할인가 ; 12.000원(배송)구입 문의 ; 신현식 010-3909-7939(문자 주시면 계좌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은수필]늦가을의 서정 / 김재희 늦가을의 서정 / 김재희 화려하던 단풍잎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나면 휑한 바람만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서 곤두박질친다. 그러나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바라보는 맛을 놓칠 수 없는 때다. 떠나기 위해 마지막 마무리하는 가을 뒷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에 산을 찾았다. 모악산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등산 코스지만 요즘처럼 계절이 어중간한 평일인 경우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드문드문 한 두 명씩 가는 사람들로 적당히 조용하고 한적한 산길이었다. 계곡물소리도 여느 때보다 여유롭게 다가왔다. 중간중간 작은 웅덩이에 차곡차곡 가라앉은 낙엽들. 곱디고운 빛깔은 흐르는 물에 몽땅 떠내려 버리고 희멀건 모습이다. 그래도 아직 원형 그대로의 잎 모양새가 눈길을 머물게 했다. 쫙 펴진 손바닥 같은 단풍잎엔 당당함이 들.. 수필을 밝히다-1강(22p) [좋은수필]억새 / 박종숙 억새 / 박종숙 가슴이 비어 있어 그리도 눈부신 꽃을 피우는 것일까. 욕심이 없어 은빛 너울 속에 손을 흔드는 것일까.바람이 불러오며 그 무리 속에서 수런수런 들리는 듯한 이야기가 있다. ‘모두가 떠나고 있어요.’ 멀리 논둑 한 자락에서, 또는 잎 진 풀숲 속에서 하얗게 손끝을 세우고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꽃! 그들은 언제나 빈 들녘에서 행인을 부른다. 누군가를 유혹하려는 듯 길 가던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순결한 모습의 춤사위를 펼치는 유희의 군락이다.억새는 가을의 늦 동산을 지키기 위해 피어난다. 먼 산에 단풍이 들고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기다리기라도 한 듯 멀쑥한 키를 앞세우고 조용한 축제를 벌이는 우아함이 억새의 참모습이다.11월의 제주는 하얀 융단으로 치장되어 있는 섬이.. 이전 1 2 3 4 ··· 8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