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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을 밝히다-머리말(3)
[좋은수필]타향만리 그 친구 / 정호경 타향만리 그 친구 / 정호경 내가 여기서 말하는 ‘타향만리他鄕萬里’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집에서나 술자리에서나 마음이 허전할 때 즐겨 부르던 고복수의 와는 다른 것으로 옛날 중학 시절 꼬박 6년 동안을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책상을 나란히 한, 내가 지어준 친구의 별명이다. 이 노래는 1930년대에 발표된 대중가요로 짐작되는데, 그 구슬픈 가락이나 가사의 내용을 보면, 모르기는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 피 말라 가슴 여위어가던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도 짐작이 되지만, 이는 물론 일제 때 우리가 가난에 찌들었던 시대는 같은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제의 탄압과는 관계없이 순수한, 우리의 인생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이 하..
수필을 밝히다-머리말(2)
[좋은수필]벌초 / 강여울 벌초 / 강여울 물이나 거름을 주는 것도 아닌데 풀들은 어디에서고 무럭무럭 잘도 자란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일수록 무성하게 자라서 여름이 지나면 온 산이 풀빛으로 우거진다. 해마다 음력 팔월이 되면 벌초 행렬이 줄을 잇는다. 그 행렬에 섞여 산에 가면 풀냄새 코를 찌르는 자리마다 까까머리 아이처럼 묘들이 말쑥하게 돋아 있다. 무성한 풀밭이라 여겼던 자리에 면도를 한 듯 앉은 묘가 기침소리를 내는 것 같아 깜짝 놀라기도 한다.아침마다 전기면도기로 아버님의 수염을 깎아 들린다. 어쩌다 바빠 하루 쉬었다 다음날 면도를 하게 되면 수염이 잘 깎이지 않아 애를 먹는다. 하는 수없이 비누 거품을 발라 일회용 면도기로 민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전기면도기보다 훨씬 매끈하게 깎인다. 어디에서고 뿌리내린 목숨이란 이렇..
[좋은수필]꼬마 뚝배기 / 왕린 꼬마 뚝배기 / 왕린 가을비 추적거리는 날,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재료를 꺼내다 그 애와 마주쳤어. 큐 사인을 기다리는 배우처럼 자신만만해 보이더라고. 톱톱한 찌개에 안성맞춤인 게 고놈인지라 나도 당연히 그 애를 찍었지.‘꼬마 뚝배기!’오래전에 집들이 선물로 들어온 거야. 아가리 지름이 채 한 뼘도 안 되지만, 얼마나 암팡져 보이던지. 어떤 센 불에도 끄떡없을 것 같았어. 불이 닿는 아랫부분은 유약이 묻지 않은 흙빛이고, 무늬가 새겨진 윗부분은 회갈색 유약을 살짝 발라 나름 멋을 냈더군.여느 집이 그렇듯 우리 집에도 냄비가 수두룩해. 스테인리스를 비롯해 법랑, 자기, 양은냄비까지. 냄비들을 놓고 비교하자면 뚝배기는 그리 세련됐다고 볼 수 없지. 투박하기 이를 데 없고 무겁기가 웬만해야지. 능청스러움을 짐..
수필을 밝히다-머리말(1)
[좋은수필]역전앞갈대 / 김창식 역전앞갈대 / 김창식 1980년대 초 서울역과 염창동 일대에서 낮 시간대를 주름잡던 시절 이야기다. 밤 시간을 책임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서울역 시계탑에서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한일빌딩에 근무하던 기획사(항공회사) 지점이 자리했다. 점심을 먹고 오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다 짚이는 바가 있어 부근의 '광택(구두세탁)주식회사' 간이 철제문을 밀고 들어섰다. 안면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사장에게 여차여차 상황을 설명하고 연통을 넣었다. 다음날 그가 내게 말했다."보자시는데요.""지금 보고 있잖아요.""아니, 저 말고요.""그럼 누가?""우리 큰형님이요!"'역전앞갈대'로 불리는 그와 서울역사 뒤쪽의 중국집 '외백外伯'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옆이 트인 붉은 비단 옷을 입은 '꾸냥..
[좋은수필]하늘과 물 / 김열규 하늘과 물 / 김열규 ‘우리 둘은 하늘과 땅 사이다.’이 말에는 두 사람은 앙앙거리는 원수끼리다. 도저히 서로 통할 수 없는 사이를 두고는 흔히들, ‘하늘과 땅 사이’라고들 한다. 일반 언어생활에서는 그런 게 하늘과 땅이 서로 그 지경이니 물이라고 하늘과 단짝일 수는 없다.한데 자연에서는 하늘과 땅이 상통하듯이 하늘과 물 또한 서로 소통하고 있다. 아니 단짝이기도 하다.하늘의 푸른빛은 절로 바다며 강 그리고 호수의 물살에 비쳐진다. 신새벽의 노을은 온 바다를 붉게 타오르게 한다. 야밤에 옹달샘에 어리는 달은 그리운 이의 얼굴을 닮는다. 달이 차고 기울고 함에 따라서 바닷물은 썰물이 되곤 한다. 하늘과 물, 물과 하늘은 그렇게 여간한 단짝이 아니다.그러기에 신화에서도 하늘과 물은 서로 달콤하게 궁합을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