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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왜 마시는가 / 곽진순 왜 마시는가 / 곽진순 영화 에서 주인공 미키 루크는 무시로 술을 마신다. 길거리에서, 공원 벤치에서, 침대 위에서 쉼 없이 병나발을 불어대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다.그는 취해서 걸핏하면 사람들과 시비를 붙고 싸움질을 한다. 그는 별다른 직업도 없고 안락한 가정도 없다. 삼류 건달이 보낼 법한 일상을 날마다 되풀이하고 있다.술 마시는 것 못지않게 그가 즐겨하는 것이 하나 있다. 라디오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일이다. 술과 음악,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옛날 희랍인들은 바커스 축제 때 왕창 술을 마시고 북장단에 맞추어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엑스터시한 상태에서 신과 합일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술과 음악이란 접신하는 데 필요 불가결한 요소였다.미키 루크에게 있..
수필을 밝히다-1강 틀 / 정명숙 가두려고 하는 게 본질이다. 자신을 꼭 닮은 물건을 만들어 내야 직성이 풀린다. 사물이야 틀로 모양을 잡는다지만 발상도 행동도 자유로운 인간마저 집어넣으려 든다.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틀에 가두고 때로는 타자도 가두려 든다.친정 부모는 매년 수확한 흰콩으로 메주를 만들었다. 다섯 말의 콩을 쑤어 메주를 만드는 일은 연로하신 친정 부모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메주를 만들었지만 점점 양이 늘어나다 보니 아버지는 나무판을 다듬어 메주 틀을 만드셨다. 어찌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매끈하고 예쁘게 나오는 메주를 볼 때마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몇 년 전, 아버지가 떠나시던 해 심었던 흰콩을 수확하니 한 말 반 정도가 되었다. 작물도 주인의 손길이 끊기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보..
[좋은수필]가랑잎처럼 / 허세욱 가랑잎처럼 / 허세욱 모처럼 여가가 생겼다. 툇마루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죽물 상자 속에는 내 잡동사니가 수용되어 있다. 그 체적이 해마다 불어나건만 버릴 수도 고를 수도 없어 이날저날 미루어 오던 터였다. 그 속에는 해마다 세밑이면 날아오는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 거기다 국내외서 이따금 육필로 찾아오는 편지들이 쌓여 있다. 그것들을 한 장이라도 버릴 수 없어서였다. 임시로 그것들을 꾸리어 묶고 꾸러미마다 연도를 표시하는 쪽지를 달았다. 그 상자를 열고 뭉치들을 풀어 놓았다. 한 해의 분량이 자그마치 한 광주리였다. 나는 그것들을 한 장 한 장 다시 펼쳤다. 까맣게 잊었던 사람이 내 귓전으로 다가와서 멍울진 소릴 한다. 나는 실어증에 걸린 양 멍청했다. 그리고 아물거리는 눈까풀이 축축했다. 묵은..
수필을 밝히다-1강
[좋은수필]좋다 / 윤경화 좋다 / 윤경화 마을 사람들과 밤 산책을 나섰다. 달이 손에 잡힐 듯한 산기슭에 멈춰 서자 밤하늘이 통째로 가슴에 스며든다. "좋다."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꽃처럼 터진다. 말수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 심지어 글을 쓰는 사람도 함께 터뜨린다.말복을 지난 산마을의 달밤, 선선한 바람이 좋고, 운수납자도 홀린 구름이 좋고, 그 사이의 무애한 달이 좋아 환장할 것 같은 그 마음을 담은 한마디. "좋다." 늙수그레한 경상도 아지매들의 담백한 감탄사에 나는 반하고 말았다. 인간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내면에서 유로하는 순도 높은 감정의 확실한 표현이 아닌가. 무의식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는 그 무엇까지 긁어 올리려는 나의 서글픈 몸부림에 비하면 가슴이 뻥, 뚫리는 말이다..
[좋은수필]여행 상수 / 방민 여행 상수 / 방민 걷는다, 배낭을 등에 매단 채. 발은 앞으로 향하고 눈은 주위를 살핀다. 코로 들이쉬는 공기에는 해초 냄새가 은근하다. 바닷가 모래밭이라 발이 쑥쑥 빠진다. 속도가 느릿하다. 해파랑 길을 걷는 중이다.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마을을 지나서 차도로 향한다. 차도와 나란히 이어진다. 가로등 기둥에도 리본이 달려 있다. 얼마쯤 걷다가 산길이나 마을길로 이어질 것이다. 찻길도 바닷길과 산길이 막힐 때 돌아간다. 차와 나란히 걷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불편하고 바로 옆을 스치는 차량도 불안하다. 다른 길이 없으니 잠시 따라 걷는다.차가 앞에서 왔다 사라지고, 뒤에서 나타나 달아난다. 차창으로 누군가 힐끗 보는 것 같다.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을 휘저으며 걸어가는 우리를 ..
수필을 밝히다-글쓰기 본색
[좋은수필]어머니의 지팡이 / 박금아 어머니의 지팡이 / 박금아 “인자부터는 엄마 혼자서 다 하세욧!”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온 셋째의 말투가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는 늘 옳다’는 것은 우리 칠 남매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였다. 어머니 뜻을 따르자면 힘이 들어도 지나고 보면 다 잘한 일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떼꾸러기가 되었다.요즘 들어 어머니의 고집은 도를 넘을 정도였다. 완강하기가 신념처럼 굳건해서 최근에 판정받은 치매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자식들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 죽는 날까지 삼천포를 떠나지 않겠다, 지팡이는 짚지 않겠다, 등등이었다. 다른 것들이야 당장 탈 날 일이 아니지만, 지팡이가 문제였다.계단을 오르다가 다리를 헛디디는 사고가 났다. 치료가 끝나자 의사는 지팡이를 권했다. 의사 말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