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555) 썸네일형 리스트형 수필을 밝히다-머리말 [좋은수필]역전앞갈대 / 김창식 역전앞갈대 / 김창식 1980년대 초 서울역과 염창동 일대에서 낮 시간대를 주름잡던 시절 이야기다. 밤 시간을 책임진 사람은 따로 있었다. 서울역 시계탑에서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한일빌딩에 근무하던 기획사(항공회사) 지점이 자리했다. 점심을 먹고 오다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다 짚이는 바가 있어 부근의 '광택(구두세탁)주식회사' 간이 철제문을 밀고 들어섰다. 안면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사장에게 여차여차 상황을 설명하고 연통을 넣었다. 다음날 그가 내게 말했다."보자시는데요.""지금 보고 있잖아요.""아니, 저 말고요.""그럼 누가?""우리 큰형님이요!"'역전앞갈대'로 불리는 그와 서울역사 뒤쪽의 중국집 '외백外伯'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옆이 트인 붉은 비단 옷을 입은 '꾸냥.. [좋은수필]하늘과 물 / 김열규 하늘과 물 / 김열규 ‘우리 둘은 하늘과 땅 사이다.’이 말에는 두 사람은 앙앙거리는 원수끼리다. 도저히 서로 통할 수 없는 사이를 두고는 흔히들, ‘하늘과 땅 사이’라고들 한다. 일반 언어생활에서는 그런 게 하늘과 땅이 서로 그 지경이니 물이라고 하늘과 단짝일 수는 없다.한데 자연에서는 하늘과 땅이 상통하듯이 하늘과 물 또한 서로 소통하고 있다. 아니 단짝이기도 하다.하늘의 푸른빛은 절로 바다며 강 그리고 호수의 물살에 비쳐진다. 신새벽의 노을은 온 바다를 붉게 타오르게 한다. 야밤에 옹달샘에 어리는 달은 그리운 이의 얼굴을 닮는다. 달이 차고 기울고 함에 따라서 바닷물은 썰물이 되곤 한다. 하늘과 물, 물과 하늘은 그렇게 여간한 단짝이 아니다.그러기에 신화에서도 하늘과 물은 서로 달콤하게 궁합을 맞.. [좋은수필]선의의 대하여 / 성낙향 선의의 대하여 / 성낙향 제임스 브레이디는 우리 돈으로 백만 원을 주워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미국 뉴저지 거리에 사는 노숙자로 한 푼이 아쉬운 사람이었다. 굴러든 돈 백만 원을 도로 내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는 양심을 지켰다. 6개월 뒤, 브레이디는 신고한 전액을 돌려받았다. 6개월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레이디는 떳떳하게 백만 원을 가질 수 있어 기뻤을 것이지만, 얼마 뒤 그 일에 대한 생각지 못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종합의료 서비스 무료 혜택을 한 해 동안 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새로 생긴 수입 백만 원을 신고하지 않은 게 그 이유였다. 백만 원을 취득한 죄로, 아니 눈먼 돈을 그냥 삼키지 못한 죄로 보상금보다 훨씬 많은 병원비를 지불하게 된 브레이디. 그.. [좋은수필]공감하다 / 고경서(경숙) 공감하다 / 고경서(경숙) 밤바다와 마주 선다. 어둠 속이라 바다는 보이지 않고, 광포한 파도 소리만 고막을 때린다. 여전히 강풍에 장대비가 쏟아진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은 가마솥처럼 들끓는다. 제 어미를 먹어치운 자식들의 비통한 울음인지 모를 파도 소리에 꼼짝없이 갇혀있다. 갯바위를 치대며 밀회를 즐기던 하르방도 어디론가 몸을 숨겼다. 신들의 암투가 아니고서야 이런 야밤에 길길이 날뛰며 돌진해온 바다가 나를, 내 잠을 사정없이 집어삼킬 이유가 없다. 그리움의 바다가 악천후 속에서 제대로 울고 있다. 먹먹한 가슴으로 뛰어든 아우성이 낯설면서도 경이롭다. 이곳은 큰엉 해안이다. 밤늦어서야 찾아든 숙소다.새벽녘에 갑자기 폭풍경보가 발효되었다. 조천 해안 도로를 타고 김녕 서포구, 산양.. [좋은수필]달빛, 꽃물에 들다 / 김새록 달빛, 꽃물에 들다 / 김새록 쭉쭉 뻗은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은 먹이를 찾아 달리는 짐승 같다. 논두렁 밭두렁 골목길에서 볼 수 있는 한적한 곡선의 흐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달빛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교통망은 속도를 다투는 도시에 걸림돌일 뿐이다. 새털구름, 조각구름, 그리고 뭉게구름처럼 모양새가 각기 다르게 흘러가는 구름이나 높낮이가 물결 같은 능선, 선의 방향에 구애받지 않고 들쑥날쑥 뻗어가는 나뭇가지. 크고 작은 돌멩이들의 자연스런 곡선은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쉼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회지의 땡볕 같은 속도의 흐름 속에 말랑말랑한 정서를 생각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사람도 처음 달빛이었다가 자랄수록 뙤약볕 같은 성격으로 변질되는 인성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천진난만한 신생아.. [좋은수필]길두아재 / 박금아 길두아재 / 박금아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낯익은 마당 한가운데에 어린 내가 서 있다. 곁에는 길두 아재가 닭에게 모이를 던지다 말고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닭들의 부산한 날갯짓 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어린 시절을 외가와 친가를 번갈아 가며 보냈다. 두메산골 외딴 집, 외가에는 이모들과 외삼촌이 모두 객지로 떠나고 할머니와 길두 아재만 살았다. 외할머니의 친가붙이였던 아재는 나의 아버지와 나이가 같았지만 내가 열 살이 다 되도록 장가를 들지 않고 외가에서 막서리로 지냈다. 길쭉한 얼굴에 숯덩이 같던 눈썹, 도탑던 목소리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아재는 사람 좋은 물신선이었다. 특히 내게는 넨다했다.* 그런 아재가 물썽해보였던지 나는 나쎄가 먹도록 떼꾸러기 노릇을.. [좋은수필]여행 상수 / 방민 여행 상수 / 방민 걷는다, 배낭을 등에 매단 채. 발은 앞으로 향하고 눈은 주위를 살핀다. 코로 들이쉬는 공기에는 해초 냄새가 은근하다. 바닷가 모래밭이라 발이 쑥쑥 빠진다. 속도가 느릿하다. 해파랑 길을 걷는 중이다.길을 안내하는 리본이 마을을 지나서 차도로 향한다. 차도와 나란히 이어진다. 가로등 기둥에도 리본이 달려 있다. 얼마쯤 걷다가 산길이나 마을길로 이어질 것이다. 찻길도 바닷길과 산길이 막힐 때 돌아간다. 차와 나란히 걷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불편하고 바로 옆을 스치는 차량도 불안하다. 다른 길이 없으니 잠시 따라 걷는다.차가 앞에서 왔다 사라지고, 뒤에서 나타나 달아난다. 차창으로 누군가 힐끗 보는 것 같다. 배낭을 짊어지고 스틱을 휘저으며 걸어가는 우리를 .. 이전 1 2 3 4 ··· 8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