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557)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어머니의 밥상 / 이경은 어머니의 밥상 / 이경은 분탕국을 입안에 한 숟가락 넣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목으로 국물을 삼키고, 내 마음도 마구 삼킨다. 몸 어딘가에서 개키는 소리가 들리고, 내 콧방울은 결국 빨개진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비가 내리는 탓이다. 비가 많은 계절이니까, 몸이 피곤하니까, 음악이 구슬프니까.그냥 그것뿐, 별것 아니다. 한번 흐릿해진 머릿속은 쉽게 개지 않는다. 숟가락을 놓고 텔레비전을 틀었지만, 소리만 윙윙거리며 들어온다. 내 머릿속을 마비시키는 이런 감정들 앞에서 나는 아직도 변변치 못하게 당황하고 울렁댄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끈다. 이럴 땐 내 마음도 잠시 음소거를 작동할 수 있었으면….신경숙의 ≪어머니를 부탁해≫란 책을 사 놓고 2년이 넘게 들춰보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 [좋은수필]파비아의 새벽 / 김아인 파비아의 새벽 / 김아인 봉무공원 ‘구절송’에 올랐다. 금호강 줄기를 따라서 형성된 도심을 내려다보며 가쁜 숨을 고른다. 직립한 아파트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집이 어디쯤일까, 단지를 가늠하는 사이 마침 여객기 한 대가 이륙하는 중이다. 공항 근처로 이사 와서 자주 보는 광경인데도 새롭다. 비행기가 낮잠에 든 지붕을 깨우며 고도를 높인다.아이들로부터 욜로YOLO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You Only Live Once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다.‘인생은 한 번뿐’이란 의미를 지닌다. 비슷한 개념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 Carpe Diem도 있다. 현재를 즐겨라, 오늘을 붙잡아라, 등으로 풀이된다. 말하는 사이에도 우리를 시샘하는 세월은 서둘러서 간다지 않던가. 인생은 한 번뿐이니 현재를 즐기.. [좋은수필]섬 / 김윤선 섬 / 김윤선 식당을 널찍하고 천장이 높아서 쾌적했다. 게다가 흘러나오는 나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음률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시어머닌 휠체어에 앉은 채, 나는 그 곁에 자리를 잡았다.지독히도 조용했다. '수다 금지'라고 했는지 입을 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조용함이 지나쳐 묵직하고 음울하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나는 더욱 어색하고 긴장됐다. 처음엔 낯선 동양인을 관찰하느라 다들 조용한 줄 알았는데 식탁마다 음식이 놓여도 어느 한 사람 선뜻 수저를 드는 사람이 없었다. 퀭한 눈동자로 멀거니 딴전만 펴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와 표정 없는 얼굴들,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지만 설사 눈을 마주쳐도 반응이 없었다. 종이 인형들 같았다.어떤 맛이 당신 구미를 당긴 것일까, 넙죽넙죽 꽤나 잘 받.. [좋은수필]일회용 / 방민 일회용 / 방민 올레를 걷는다. 차도를 따라 걷다가 마을로 접어든다. 올 레는 마을로 난 길이 대부분인데 차도 옆에도 있어 가끔 자동차와 같이 쓰기도 한다. 길 옆에 시선을 붙잡는 게 있다. 다 가가 보니 플라스틱 생수병이 풀숲에서 고개를 내민다. 이곳에서 오래 누굴 기다렸는지 먼지 때가 끼었고 찌그러져 있다. 임에게 내쳐진 섬 색시마냥 애처로워 보인다. 고개를 얼른 돌리고 발길을 서두른다. 일회용이기에 저리 마구 버렸겠지 하는 생각이 배낭에 훌쩍 올라탄다. 잠시 무게를 느낀다. 가벼워질까 생각을 떼쳐 버리려 빨리 걸어 본다. 틈입한 상대는 쉽게 떠나려 하지 않는다. 달래서 보내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무녀의 춤사위 한 자락 펼치듯 생수병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어울려 한판 놀아볼거나 발짓마저 보태.. 수필을 밝히다(얼개 짜기) 『수필을 밝히다』저자 ; 신 현 식정가 ; 15.000할인가 ; 12.000원(배송)구입 문의 ; 신현식 010-3909-7939(문자 주시면 계좌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은수필]응시 / 박경철 응시 / 박경철 초가을 이맘때가 되면 봉정사를 찾는다. 안동에 사는 재미다. 주중에는 호젓한 저녁시간을 만들지 못해 아쉽지만, 토요일 오전이나 늦은 저녁 봉정사를 가면 사람 대신 바람이 마당을 쓴다.인적이 없는 산사는 적요하다. 은행잎을 훑어내린 바람이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스치고 지나가며 억겁의 세월을 일깨운다. 이른 아침이면 떨어진 낙엽에 제법 물기가 돌지만, 언제 태어났는지 모를 그 바람이 금세 습기를 말려버린다. 바람은 그들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이리저리 희롱하며 보이지 않는 범의 수레바퀴를 돌린다.매표소를 지나 천천히 산길을 걸으면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차를 타고 오르면 빽빽하게 하늘을 가린 소나무 숲에 눈길을 빼앗기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발로 몸.. [좋은수필]보리밥과 칼국수 / 최장순 보리밥과 칼국수 / 최장순 커피 향으로 우려낸 초저녁 입담이 옅어질 즈음 허기는 짙어졌다. 갑작스런 비는 어느새 눈으로 내리고 있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우리는 코트와 점퍼의 후드로 대충 몸을 감쌌다. 적당히 기분 좋은 눈을 맞으며 도심의 불빛을 훑었다. 부끄럼 많은 골목이 수줍게 내미는 ‘수제 칼국수’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따뜻한 바닥이 군불을 지핀 듯 정겹다. 앉은뱅이 식탁에 앉으며 서둘러 칼국수를 주문했다. 시장기부터 삭이라는 듯 먼저 식탁에 놓인 건 보리밥. 작은 공기의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이 곁들여진 사이드 메뉴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의 맛보기는 입맛을 돋우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예전 어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키면 약간의 쌀밥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짜장면을 먹고 남은.. [좋은수필]옥잠화 / 석민자 옥잠화 / 석민자 "이 쪽지 내 보이고 약 주거든 받아와" 가을이었다. 밤도 제법 이슥한 시각이었다."싫어, 무서워서 안가.""내가 바래다 주께.""그러면 언니가 갔다 오면 될 걸 뭐 하러 나더러 가래.""이 손목시계 갖고 싶다고 그랬지. 이것 주께. 갔다 와."시계를 받아들고 나는 두 말없이 집을 나섰다. 까짓 무서운 것이 대수겠는가. 그 시절 중학교 일학년짜리에게 손목시계라면 꿈에도 그리던 물건이 아니던가. 그러나 보건소에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심부름을 시킨 사람더러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전언과 함께."망할 뭐뭔들, 돈을 주겠다는데도 약을 안 팔겠다는 저의는 또 뭐야. 내일 당장 고발을 하고 말겠어."빈손으로 돌아왔으니 응당 시계는 돌려줘야겠거니 했었는데 나더러 가져도 좋다며 인심을 썼다.언니와는 .. 이전 1 2 3 4 ··· 8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