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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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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사라진 액자 / 신미경 사라진 액자 / 신미경 버릇처럼 눈은 작은 창을 향한다. 그러다 이내 텔레비전으로 돌리고 만다. 더 이상 그 창을 그윽하게 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즈음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이 느낄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다. 난리법석 속에 아이들이 학교로 가고, 남편도 출근하고 설거..
[좋은수필]골동품 / 이정연 골동품 / 이정연 결혼하고 처음 남편과 크게 다툰 것은 함지박 때문이었다. 가로 팔십 센티, 세로 오십 센티쯤 되는 큰 것이다. 시골집에서 대를 물려 쓰던 재래식 다리미, 도자기 찻주전자, 바디, 베 맬 때 쓰는 커다란 솔, 호롱, 어머니의 비녀, 반지, 화롯불쏘시개, 놋국자 등의 물건을 이 ..
[좋은수필]신은 고달프겠다 / 최민자 신은 고달프겠다 / 최민자 친구 집에 갔다가 플라스틱 함지에 심은 상추모종을 받아왔다. 무엇이든 손에 들려 보내려고 두리번거리던 친구가 베란다에 놓인 두 개의 함지박 중 하나를 덥석 들고 나온 것이다. 쉼표만한 씨앗을 싹 틔워 이만큼 자라게 하기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세수 ..
[좋은수필]하필이면 하필오고 / 김상립 하필이면 하필오고 / 김상립 내 전자우편(E-mail) 주소를 만들어야 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내 이름의 영문 약자를 쓸까, 회사명이나 관련산업을 활용할까, 아니면 내게 의미 있는 숫자를 배열시킬까 하고 며칠을 두고 생각했었다. 드디어 찾은 이름이 바로 ‘hapilo’ 이다. 아이들이 어렸..
[좋은수필]장국영 별곡(別曲) / 김용옥 장국영 별곡(別曲) / 김용옥 울컥, 가만 조약돌 같은 슬픔이 솟구치더니 목울대에 걸린다. 눈시울에 물기가 고인다. 전깃줄에 촘촘히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포르르 포르르 전주천 시냇물가로 날아 내리는 순간, 느닷없이 그의 죽음이 함께 보였다. 죽음을 실현하는 그 순간, 그는 새처럼 ..
[좋은수필]세월 / 곽흥렬 세월 / 곽흥렬 이제 며칠만 있으면 다시 할아버지의 기일이다. 손을 꼽으며 어림셈을 해보니 이번으로 벌써 스무 해째가 넘는다.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건만, 당신께서 돌아가시던 때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여든 중반 어름에까지 이른 연세였으니, 당시의 평균수명으로 따져서..
[좋은수필]뒤란 / 우종률 뒤란 / 우종률 “얼레리 꼴레리 소문내야지, 누구누구는 뒷단에서 뭐뭐 했대요, 뭐뭐 했대요.” 하필이면 동네에서 제일 개구쟁이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아마도 녀석의 눈엔 특종 감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심심하기도 하고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는가 일부러 찾아다니던 아이들이 아니었..
[좋은수필]쉼표 / 고미영 쉼표 / 고미영 난 글을 쓸 때 쉼표를 거의 안 쓴다. 지루해지지 않는 문장을 낳으려고 노력하다보니 만들어진 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인정미가 없어 보인다. 기계처럼 글을 조작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밀고 당기는 탄력성이 있는 글이 되기를 원하는데 고집스럽게도 내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