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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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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생쥐 / 강호형 생쥐 / 강호형 날씨가 추워지면서 쥐들이 극성을 부렸다. 밤이면 다락과 천장에서 굿판을 벌이는 것이다. 소리로 가늠하건대 쥐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요, 크기로도 같은 또래가 아닌 것 같았다. 우르르 쾅쾅 호기 있게 내달리는 놈은 체격도 당당한 수놈일 터이고 같은 중량감이라도 조금 ..
[좋은수필]어느 벽화 이야기 / 김재희 어느 벽화 이야기 / 김재희 분명 잘못된 그림이었다. 어느 산사에서 절 안팎을 둘러보며 벽화를 감상하고 있는데 좀 잘못 그려진 부분이 있었다. 왜 저렇게 그렸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른 그림이었다. 『빈두설경(賓頭設經)』에 「우물 안의 나그네」라는 이..
[좋은수필]서리꽃 / 류영택 서리꽃 / 류영택 산위를 바라본다. 야트막한 산비탈엔 잡초가 우거져있고, 우거진 수풀사이로 붕긋 솟은 봉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 많은 무덤 중에 과연 어느 것이 장군의 묘일까. 망우당을 만나 뵈러 온 게 아니라 그의 문중선산을 둘러보러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참을 헤맨 끝에 ..
[좋은수필]눈 쌓인 벌판에 혼자서 서라 / 김용옥 눈 쌓인 벌판에 혼자서 서라 / 김용옥 눈 쌓인 벌판에, 백지와 대면하듯이 혼자서 서라. 막막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무 말도 못하다 보니 할말도 없는, 백지가 되라. 천지간에 어스름이 고양이 발걸음같이 깔리더니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적막하게 소복소복 쌓이는 것도 아니고 싸..
[좋은수필]밤길 / 김선화 밤길 / 김선화 당시, 우리 동네에는 같은 학년 중학생이 그 애들뿐이었다. ‘숙이’와 ‘식이’. 그들은 꼬박 3년 동안 5리길이나 되는 학교에 함께 다녔다. 초등학교시절부터 꼽으면 어언 9년간이다. 학교가 파해 집에 올 때면 가로등도 없는 길이 그들을 가다렸다. 냇물을 건너고 들길을 ..
[좋은수필]그 사람 / 노정숙 그 사람 / 노정숙 살짝 스친 프라이팬은 시침 뚝 떼고 있는데 내 왼팔 안쪽은 붉게 달아오르네.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도 진물이 질기게 흐르네. 더께 아래서 웅성대는 아우성. 의사는 너덜거리는 젖은 솜뭉치로 사정없이 밀어 붙이며 3도 화상이란다. 아, 오래전 깊이 벤 흉터 하나 근질..
[좋은수필]잃어버린 감색목도리 / 정호경 잃어버린 감색목도리 / 정호경 나는 혹한의 겨울에도 목도리를 안 합니다. 돌이켜보면 이는 중3때의 사건이었으니 아득한 옛날 일이네요. 어렸을 때 몰래 어머니의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동네 앞 논바닥에서 조그만 문패만한 판자에 철사를 대어 받친 외발 스케이트를 타는 동네 아이들 ..
[좋은수필]믿음의 세월 / 조명래 믿음의 세월 / 조명래 선생님! 전번 설날 세배 갔을 때 앉으시는 모습이 불편해 보여 걱정하는 저에게 '나이 들면 다 그렇지' 하며 웃으시던 얼굴이 영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퇴직 후 자주 가시던 등산도 뜸해졌다니 이를 어쩝니까. 선생님의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음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