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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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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청바지와 나 / 윤재천 청바지와 나 / 윤재천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다크 블루, 모노톤 블루, 아이스 블루…. 20여 년 동안 색의 농도에 따라, 바지의 모양에 따라 많이도 모았다. 특별한 모임에도 눈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나는 청바지를 입는 것이 더 편하고 자신 있다. 요즘 들어 살아온 연륜이 낯설게 느껴..
[좋은수필]석복(惜福) / 조이섭 석복(惜福) / 조이섭 손자 아이를 잃었다. 지난해 세모에 생후 8개월 난 손자를 멀리 보냈다. 여덟 달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가다 급기야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로 버티었으나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생명 있는 것은 모름지기 한번은 아름답게 불타오른다던데, 여린 싹을 채 틔우기도 전에..
[좋은수필]빌뱅이 언덕아래 / 문은주 빌뱅이 언덕아래 / 문은주 늘 궁금했다. 그 마당은 지금쯤 이 계절의 어떤 모습을 담고 있는지, 가까이 두고 매일매일 둘러보고 싶다는 소망은 가끔 꿈속에 선하게 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며칠째 불어왔던 훈풍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이 오려면 아직 좀 기다려야 하는데 왜 그리 성..
[좋은수필]물 건너 숲 / 김은주 물 건너 숲 / 김은주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꼭 안개를 봐야 했기에 마음이 더욱 조급해 졌다. 조급증 탓인지 주산지 들머리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길은 여러 갈래였고 절 골로 오르는 갈림길에서 한 동안 시간을 지체 했다. 어두운데다 초행길이다 보니 길을 잃은 것이 당..
[좋은수필]영종(靈鐘) /김희자 영종(靈鐘) /김희자 구드레나루터에서 돛배를 탔다. 백마강 물길 따라 백제의 길을 더듬는다. 유월의 산야는 초록 전에 덮여 흙빛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니 강물 또한 짙푸르다. 말없이 흐르는 돛배가 시간을 거슬러 세월 저편으로 흘러간다. 백제의 슬픈 역사가 서린 ..
[좋은수필]폐선 / 강돈묵 폐선 / 강돈묵 당신은 혼자서 방파제 위에 덩그러니 앉아 궁상을 떨고 있네요. 당신이 있어야 할 장소는 분명 저 물 위인데, 엉뚱한 곳에 나와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있어요.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가로 놓인 그 모습이 보기에도 흉하기 그지없어요. 마치 빈 공원에서 겸..
[좋은수필]강바닥을 찾아서 / 정성화 강바닥을 찾아서 / 정성화 빨래거리는 강으로 가기 위한 핑계였다. 강으로 가는 길은 탱자나무 울타리로 이어져 있었다. 하얀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어린 탱자가 가시를 피해가며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싶은 게 더 큰 이유였다. 빨래 방망이를 헹구어 다 해 놓은 빨래위에 얹고 내 고무신을..
[좋은수필]시접 한 쪽 / 정은아 시접 한 쪽 / 정은아 잘렸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순간에 잘려 버린 그 자리를 어떻게 메워나갈 수 있을까. 나는 살아가면서 그 자리를 순간순간 느낀다. 미리 그려놓은 옷본을 원단에 대고, 박음질할 선을 그었다. 박음질 선에서 1cm 정도 더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