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상/좋은수필 3 (1000)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은수필]겻불 / 곽흥렬 겻불 / 곽흥렬 고단한 황혼의 생이었다. 백수白壽를 눈앞에 두고서 서리 맞은 풀처럼 가는 잠에 잦아졌다. 고향의 먼 친척 아저씨뻘 되는 어른은, 그렇게 해서 조용히 이승과 하직을 고했다. 두문불출한 지 거지만 십 년 만의 일이다. 그 어른의 타계 소식은, 나로 하여금 부모 자식 간에 .. [좋은수필]얼굴무늬 / 김미옥 얼굴무늬 / 김미옥 기와가 웃는다. 입 꼬리는 둥글려진 광대뼈 아랫부분과 맞닿아 있고 눈꺼풀은 자연스러운 반달 모양새다. 얼굴무늬수막새는 입술 양끝이 위를 향하는 넉넉한 미소로 나에게 웃음 짓고 있다.천 년의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다. 어느새 주름과 기미로.. [좋은수필]애별리고 / 박경대 애별리고 / 박경대 새아기가 출산을 하였다. 기쁜 소식에 모든 일정을 접어두고 세 시간여를 달려 여수의 병원으로 향했다. 아들 내외가 신생아실에 있다기에 찾아갔으나 면회 시간이 막 끝난 뒤였다.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시간까지 산모의 입원실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힘들었던 분.. [좋은수필]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손훈영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손훈영 오래 그래왔다. 우리 세 식구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금기가 있었다. 집안에서 절대로 그릇을 깨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유리그릇은 더 그랬다.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유리 파편들을 보면 피가 식고 온 몸이 굳어 오는 나의 고질병 때문이.. [좋은수필]고등어 / 우희정 고등어 / 우희정 '차르륵 탁탁.' 광고지를 끼우는 손이 기계처럼 움직인다. 작업이 끝난 신문은 네 귀퉁이를 반듯이 맞춰 일정 분량씩 지그재그로 차곡차곡 오토바이에 실린다. 새벽 세시, 막 보급된 신문은 잉크 냄새가 향긋하며 갓 지은 밥처럼 따끈따끈하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간, .. [좋은수필]늙은 밤나무 이야기 / 김성옥 늙은 밤나무 이야기 / 김성옥 나는 밤나무입니다. 이 땅에 뿌리내린 지 이천 년이 넘었고 시조는 참나무 할아버지입니다. 떡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와 사촌지간인 셈입니다. 외모가 엇비슷한 탓인지 어떤 이들은 저를 참나무라 부르더군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은근 자존심이 .. [좋은수필]돌매와 수쇠 / 류영택 돌매와 수쇠 / 류영택 콩콩 마늘을 찧는다. 아래층에 소리가 울릴까봐 사타구니에 백철절구를 끼고 마늘을 찧는다. 절굿공이에 빗맞았는지 메뚜기처럼 마늘한쪽이 절구를 타고 넘는다. 어디로 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손을 뻗는다. 겨우 손이 닿았지만 슬슬 짜증이 난다. 믹스기로 갈.. [좋은수필]산마르코 광장에서 / 권민정 산마르코 광장에서 / 권민정 햇살 좋은, 맑고 화창한 겨울 날씨다. 아침에 배를 타고 베니스로 들어올 때만 해도, 바닷바람이 꽤 차가웠다. 그러나 정오쯤 되자 봄날처럼 따뜻하다. 나는 산마르코 광장 노천카페에 앉아 맑고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막내.. 이전 1 2 3 4 5 ··· 12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