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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시접 한 쪽 / 정은아

시접 한 쪽 / 정은아

 

 

 

잘렸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순간에 잘려 버린 그 자리를 어떻게 메워나갈 수 있을까. 나는 살아가면서 그 자리를 순간순간 느낀다.

미리 그려놓은 옷본을 원단에 대고, 박음질할 선을 그었다. 박음질 선에서 1cm 정도 더하여 둘레를 따라가며, 솔기를 이루게 될 시접 선도 그렸다. 가위가 시접 선을 따라 경쾌하게 움직였다. 바지의 앞판을 자르고, 이어 뒤판을 자르다가 그만, 싹둑. 시접이 잘려나갔다. 어이없이 한순간에 잃었다. 잘려나간 뒤판 시접 자리만 바라볼 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 만들던 것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잘려나간 부분에 시침핀을 꽂고, 신경 써서 재봉틀로 박았다.

아이의 쫄쫄이 바지 하나를 완성했다. 바느질이 삐뚤빼뚤하고 엉성해도, 내 손으로 만든 바지라 마음이 끌렸다. 갓 만들어진 바지를 자고 있는 아이에게 입혔다. 신통하게도 잘 맞았다. 원단에 그려져 있는 금빛의 작은 리본들이 아이의 다리 위에서 빛났다. 이 모습을 내 눈에만 담아두긴 아까워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잠에서 깬 아이는 쫄쫄이 바지를 보고 좋아했다. 바지를 입고 한참을 잘 놀던 아이가 바지의 허벅지 안쪽 부분이 터졌다며 터진 부분을 가리켰다. 시접이 잘라져버린, 그 곳이었다. 단단하게 박는다고 박아도 시접이 없으니, 아이의 움직임에 견디지 못하고 틈이 벌어졌다. 틈사이로 연약한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살결에 가냘프고 앙상한 다리를 가진 아이. 그 아이를 보고 있으니, 잘려나간 시접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둘째 아이의 가족운동회 날이었다. 첫째 때 이미 겪어본 일이지만, 또다시 망설여졌다. 가족운동회라면, 엄마와 아빠가 거의 참석한다. 이런 일이 닥치면 내 마음을 꿰매 둔 실밥들이 터지려 했다.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게 가는 거야.‘

다짐을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다시 용기를 냈다.

주차를 하고 가방을 둘러매고, 자동차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꺼내 어깨에 걸쳤다.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만국기가 휘날리는 운동장 쪽으로 걸어갔다. 앞서 걸어가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와 아이와 아빠가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평범한 가족의 뒷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가족의 표본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나도 거기에 속해 있었다. 이제 나는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모습이다. 모두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눈이 아려왔다. 나의 감정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지 않게 아이들의 손을 꽉 잡고 팔을 흔들면서, 보폭을 크게 걸어갔다. 괜히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저기 풍선 장식 봐봐. 우아, 운동장 멋지다.”

손을 잡아끌며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애썼다. 첫째 아이의 눈은 이미 부러움으로 일렁거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신이 나서 폴짝거렸다.

운동회가 시작되었고, 부모와 아이가 짝을 이뤄 줄을 섰다. 엄마는 왼쪽에, 아빠는 오른쪽에. 내 아이의 오른쪽은 휑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둘러보니 엄마 혼자 온 집도 드문드문 보였다. 토요일에 일하는 아빠들은 오지 못해서일 것이다. 못 오는 것과 오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만, 나에겐 조금 위안이 되었다. 우리만 다르게 보이진 않을 테니깐 말이다.

운동장 하늘에 떠 있는 풍선처럼 기분을 띄우려고 노력했다. 아이의 달리기를 응원했고, 1등으로 들어 온 아이를 꼭 안아줬다. 나도 엄마들 달리기에 나가서 1등 도장을 찍었고, 아이와 하는 게임에 최선을 다하려 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자꾸 큰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홀로 돗자리를 지키고 앉아 경기를 바라보는 눈동자와 마주치면 내 마음이 헛헛했다.

간식 시간 후에, 아빠와 엄마가 아이를 고무 대야에 태우고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임을 한다고 했다. 나는 주저했다. 옆에 있던, 아이의 친구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안 오셨나 봐요. 저희 남편이 도와 드릴게요.”

마음은 고마웠지만, 내 표정은 어색하게 굳어졌다. 마음 깊이 눌러놓은 서글픔이 빠져나오려고 했다.

나 혼자서는 안 되는구나.’

게임이 싫었다. 아빠가 안 온 사람도 있는데, 왜 힘쓰는 게임을 넣었을까 싶어 프로그램을 짠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웠다. 선생님이 난감해하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넌지시 말했다.

어머니, 저와 같이해요.”

아이는 선생님과 같이 게임을 하는, 특혜를 얻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운동회가 끝나고 나니 후련했다. 그 없이 홀로 또 하나의 작은 고개를 넘었다.

내 삶은 순간순간 터질 듯이 아슬아슬하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없어져 버린 그 자리가 보이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남편이 내 옆에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자리가 영원히 거기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의심조차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를 잃고 나서야 알았다. 다시는 그도, 그의 자리도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도안 그리듯이 반듯하게 그려놓은 우리 가족의 미래가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되어 날아가 버렸고, 남겨진 나는 내 앞에 닥친 현실을 자책하고 힘들어했다. 그가 없어졌는데도, 시간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흘러갔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나에게 맞는 새로운 도안을 다시 그리고, 그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럭저럭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상황들 앞에선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비어버린 자리 주변에서 아빠를 찾고 있을 때는, 나는 겉으로는 안간힘을 쓰며 담담한 척 해보지만, 속으로는 주체하지 못하고 울먹인다.

앞판과 뒤판의 시접이 만나 솔기가 된다. 솔기는 앞판 시접과 뒤판 시접이 같은 비중으로 존재해야만 튼튼하다. 어느 한 쪽 시접이 잘라져버리면 그 자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곳이 된다. 솔기는 가정을 감싸는 줄이다. 엄마와 아빠의 자리, 두 개를 맞대고 꿰매 가정의 테두리를 만든다. 우리 집의 솔기는 부실하다. 한 쪽이 잘려나가, 그 자리를 꿰매도 터질까봐 마음이 불안하다. 나는 남은 한 쪽 시접이다.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잘 지나가게 애써야 한다. 아이들과 내가 세상 속에서 터져, 맨살이 드러나 상처를 받기도 하겠지만, 흐릿하게 남은 시접의 흔적을 끌어당겨 다시 꿰매어 가며 살아야 한다. 그건 한 쪽 남은 시접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고, 의무다.

지난 5년간의 사진을 찬찬히 훑어봤다. 두 아이는 그새 6, 10살이 되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내줬다. 한 쪽 시접으로 버틴 5년이란 세월이 사진 곳곳에서 보였다. 아등바등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쏟아 부으려고 했었고, 잘린 시접 한 쪽이 표시나지 않게 하려고 애쓴 날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잘려나간 시접 한 쪽의 흔적은 계속 내 눈에 보이고,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가끔은 빈자리를 보며 멈칫하기도 할 것이고, 가끔은 그 자리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빈 곳을 메워나가려고 노력 할 것이다.

이제까지 그랬듯, 나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터진 쫄쫄이 바지를 재봉틀로 다시 박는다. 또다시 터지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