겻불 / 곽흥렬
고단한 황혼의 생이었다. 백수白壽를 눈앞에 두고서 서리 맞은 풀처럼 가는 잠에 잦아졌다. 고향의 먼 친척 아저씨뻘 되는 어른은, 그렇게 해서 조용히 이승과 하직을 고했다. 두문불출한 지 거지만 십 년 만의 일이다.
그 어른의 타계 소식은, 나로 하여금 부모 자식 간에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의 고리를 새삼 곱씹어 보게 만들었다. 여느 죽음과는 남다르게 헤쳐 나오신 그분의 이력 때문이다.
그분이 본래부터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삶을 살았던 어른은 아니다. 누구보다 천성이 활동적이어서 팔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의 인생사전에는 '휴식'이라는 말은 없었다. 일 년 삼백예순날을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지런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이곳저곳의 소간사를 손수 챙기셨다. 힘든 농작에서부터 대소가의 일은 물론이고 마을의 길흉사에다 문중 출입에 이르기까지, 젊은 사람들 저리 가랄 만큼 팔을 걷어붙이고 척척 잘도 해내셨다. 노익장이라는 말이 이럴 때를 두고 소용이 닿겠구나 싶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백팔십도로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인가. 그처럼 정력적으로 사시던 분이, 어느날 갑자기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일절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말았다. 육순의 큰아들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는 참척의 아픔을 겪고 난 다음이었다. 자식을 앞세운 못난 늙은이가 무슨 낯으로 하늘의 해를 쳐다보며 싱둥싱둥 밖으로 쏘다닐 수 있느냐는 것이, 창살 없는 감옥에다 스스로를 가둔 이유라면 이유였다. 자식의 죽음이 아무리 가슴에다 묻는 일이라곤 하지만, 남들이 생각할 때는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야 있을까 싶은 회의감이 들어 보이는 이유로.
어쨌든 그런 까닭으로 해서 오로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낸 십 년 세월이었다. 그 하고많은 날들 동안 겨우 명줄만 이어갈 정도의 음식물로 몸을 추슬렀고, 머리카락을 자라지 않아 무릎께까지 치렁치렁 늘어졌었다. 입성을 허술히 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무에 즐겁고 재미나는 일이 있다고 맛난 음식을 입에 너혹, 머리를 손질하고, 값비싼 옷을 몸에다 걸치겠느냐며 완강히 고집을 세웠다.
"어른이 이러고 계시면 아랫사람들이 여간 힘이 쓰이지 않습니다. 아버님, 수하들을 봐서라도 제발 그런 마음을 거두세요."
며느리의 눈물겨운 만류에도, 차돌 같은 결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혹여 사람이 실성이라도 한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그렇게 결곡했다. 그것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던 그분의 애틋한 부정父情의 표출방식이었다.
아내로부터 그 사연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뜨거운 무언가가 목젖을 타고 넘어가며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러면서 친척 아저씨 대신 그 자리에 나를 불러 세워 보았다. 만일 나 같았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 봐도 도무지 그럴 자신이 서지를 않는다.
불현듯이 뒤통수를 치듯 방랑시인 김삿갓이 떠올랐다. 백이장에 나가 홍경래의 난에 투항한 선천부사 김익순金益淳을 경멸하고 가산군수 정시鄭蓍를 찬양하라는 시제로 한시를 지어 장원을 한 김삿갓, 훗날 그는 자신이 조롱했던 그 김익순이 바로 자기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게 된다. 효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던 그 시절, 그만 조상을 욕되게 만든 천하의 불효막심한 손자가 되고 말았으니 실로 청천의 벽력이 아니었으랴. 그런 불초손이 어떻게 떳떳이 하늘을 보고 살 수 있겠느냐며 평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세상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다 끝내 타관 객지에서 비운의 생애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던가. 친척 아저씨의 삶이 그 김삿갓의 부절符節을 맞춘 것처럼 들어맞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 함께 또 한편으론, 김삿갓과 친척 아저씨를 같이 놓고 본다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삿갓으로서는 본의였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느라 그 길을 택하게 되었다지만, 친척 아저씨야 대관절 무슨 죄가 있었던가. 교통사고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건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지극히 우연적인 것이며. 게다가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일 뿐 자식의 삶이 그대로 부모의 삶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스스로 고립의 울타리를 둘러치고 마음의 빗장을 지른 걸 보면, 아들을 앞세운 그 가슴이 얼마나 숯덩이가 되었을까를 넉넉히 헤아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호미도 날히언마라난
낟같이 들리도 업스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마라난
위 덩더둥셩
어마님같이 괴시리 없세라
아소 님하
어마님같이 괴시리 업세라
<사모곡> 전문
언제 누구에 의해 불리어졌는지 알 수 없는 고려가요, 지난달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에 까마득히 미치지 못함을 호미와 낫의 관계로 대비해 놓은 이 옛 노리 한 수가 지르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었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라고, 나는 일말의 의아심도 없이 입때껏 그렇게 믿어 왔다.
뜨거운 부정을 감동적으로 그려 수백만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 소설 『가시고기』이야기를 읽고도, 그것이 그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사연이려니 생각했었다. '모정母情'의 대가 되는 '부정'이란 낱말이 우리말 사전에 아예 실려 있지 않은 걸 보아도, 이는 비단 나만이 가지는 생각은 아닌 성싶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만큼 부정의 가치는 모정에 비해 소홀히 여겨져 왔음의 방증이 될 수 있으리라.
우리는 항용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의 차이를 마치 틀에 박힌 공식처럼 말해 온다. 호미처럼 무딘 아버지의 사랑은 낫처럼 예리한 어머니의 사랑에 비길 바가 못 된다고, 자신은 굶어 죽어 가면서도 끝까지 품에서 새끼를 놓지 않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면, 강한 이세로 키운다며 천 길 낭떠러지에서 사정없이 떨어뜨려 버리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그 친척 아저씨의 애잔한 핏빛 부정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지금껏 내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아둔했었던가를 비로소 절절히 깨달았다. 아버지의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아니 어쩌면 오히려 웅숭깊을 수도 있음을 이럴 때 확인한다. 다만 표현 방법이 서툴러 못하게 여겨질 뿐이다.
아흔의 아버지가 나들이 가는 일흔의 아들에게 차조심 하라며 걱정한다는 이야기가 그냥 단순히 우스개로 꾸며낸 말이 아님을 생각한다. 모정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이라면 부정은 뭉근하게 피어나는 겻불이 아닐까.
만일 나에게 시가詩歌짓는 재주가 있다면 '사부곡思父曲' 한 수를 읊조려 보고 싶다. 세상의 아버지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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