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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애별리고 / 박경대

애별리고 / 박경대 

 

 

 

새아기가 출산을 하였다. 기쁜 소식에 모든 일정을 접어두고 세 시간여를 달려 여수의 병원으로 향했다. 아들 내외가 신생아실에 있다기에 찾아갔으나 면회 시간이 막 끝난 뒤였다.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 시간까지 산모의 입원실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힘들었던 분만과정의 무용담과 육아에 관한 아내의 수다를 한참 들었지만, 손자와의 면회시각은 아직 멀찌감치 남아 있었다. 고부간의 생소한 대화에 나는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멀뚱히 TV로 시선을 돌려보니 화면에는 손을 맞잡은 두 여인의 흐느끼는 모습이 비친다. 러시아에서 시집온 여인이 칠 년 만에 친정을 방문하는 프로가 방송 중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보고 싶고 궁금했을까. 한국인 남편도 모녀의 상봉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시골총각을 장가보내기 위한 외국 처녀와의 결혼문화가 이제는 보편화되었다. 어느 마을에는 서너 집 건너 다문화가정이라고 한다. 국적도 다양해져 베트남과 중국을 비롯하여 필리핀, 태국, 심지어 먼 남미에서 시집 온 여성도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다문화가정이 나올 정도로 많아지자 이런 프로가 생긴 것이다. 서럽게 울고 있는 노모와 딸의 모습에 나도 울적해진다. 피붙이와의 만남만큼 절실한 것이 어디 있을까.

오래 전,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하는 아들을 면회 갔을 때였다. 면회를 신청하던 아내는 그리 밝은 얼굴이더니 정작 아들이 멀리 보이자 그때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좋아하던 아내와 나는 붕대가 감겨있는 아들의 손가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침근무 중 손가락을 다쳤는데 면회가 취소될까 걱정되어 아프지 않다며 응급처치를 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가족의 정이 느껴졌다.

하룻밤을 함께한 아들을 부대 앞에 내려놓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울적한 마음을 가까스로 참고 운전하는 옆에서 아내는 아이를 두고 온다는 생각에 대구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나 역시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려 몰래 닦아내곤 하였다.

TV에는 러시아에서 꿈같은 일주일이 지나고 어느새 이별의 순간이 비쳤다. 모녀는 만날 때보다 더욱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노모를 두고 떠나는 딸의 심정과, 언제 다시 사랑스러운 딸을 볼 수 있을까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곧 다시 오겠다는 딸과 사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어머니는 이 헤어짐을 마지막 순간으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만남과 이별은 왜 저토록 슬픈 것일까. 미워하는 사람과는 이별의 아픔을 느낄 수 없듯, 이별이 슬픈 것은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남 또한 이별을 전제로 하기에 슬픔을 품고 있는 단어가 아닐까. 그래서 만남에도 눈물이 나는 것일까. 이별의 슬픔은 사랑이 만들기에 사랑과 슬픔이 가끔은 동의어처럼 느껴지는 것이리라.

복도에서 웅성거림이 느껴져 시계를 보니 면회시간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생아실로 향했다. 창 앞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잠시 후 커튼이 걷히고 아기를 요람에 태운 간호사가 다가왔다. 창 너머에는 강보에 싸인 손자가 살며시 눈을 뜨고 있었다. 눈을 맞추어 보려고 손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는 듯 반응이 없었다. 손자는 어떤 귀한 인연으로 나와 맺어졌을까, 누구를 닮았을까, 이리저리 살펴보고 사진을 찍었다. 티 없는 모습을 보며 그저 탈 없이 커 주기를 바라며 마음속 인사를 나누었다.

삶이 대개 그러하지만, 기다림에 비하여 만남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더구나 손자가 나에게 눈을 맞추려는 순간 핑크빛 커튼은 손자와 나를 매정하게 떼어 놓았다.

새아기는 퇴원을 하면 곧바로 산후 조리원을 갔다가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곤 아들의 직장이 있는 충청도로 간다니 언제나 저 아이를 안아볼 수 있을까.

지방의 기업들이 수도권 국가공단으로 떠나자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타향에서 청춘의 남녀가 만나다보니 친가, 처가, 직장이 모두 멀리 떨어져버린 것이다. 이렇게 손 한번 잡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만남도 이별도 집착하지 않으리라. 그저 기쁨도 슬픔도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라고 하리다. 새아기의 손을 잡으며 몸조리를 잘하라는 당부를 하고 차에 올랐다. 아들 내외의 밝은 모습에도 애별리고를 느꼈다.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려도 마음이 울적했다. 창을 열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데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아내가 흘깃 보는 것 같아 괜한 하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