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를 기다리며 / 허정림
아침에 까치가 날아왔다.
새해를 맞으러 부모 곁으로 돌아온 자식들이 한이틀 득실대다가 다정한 말 한 마디 나눌 새도 없이 물결이 휩쓸려 가듯 떠나가 버린 뒷날이다. 허둥허둥 못다한 마음이 빈 터로 남아 괜스레 귀가 밖으로만 쏠리던 참이었다.
“까악까악.”
단순한 두 음절로 부르는 듯 짖어 대는 소리에 반가운 손님이 오신 것 같아 얼른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한 오라기 입성도 남김없이 떨쳐 버린 기골 시린 맨살의 나무 가지를 타고 앉아 새해 문안을 하는 양 머리를 주억거린다. 몸체보다 긴 꼬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연신 쫑긋거린다. 적막한 내 집을 찾아 준 귀한 손님에게 반가운 웃음을 날려 보낸다. 그의 방문으로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아 소망을 엮은 마음이 햇살처럼 퍼지고 기대는 날개를 단다.
까치와 정을 나누게 된 것은 축각시 시절이었다. 그의 직장을 따라 이주했던 낯선 땅에서 외로이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을 때, 시골 집 넓은 마당 한 귀퉁이에 하늘을 찌를 듯이 키가 껑충한 고목에 까치가 날아와 울곤 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던 어릴 적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면 시름에 겨운 마음이 한결 위로받곤 했었다.
그렇게 내게로 날아와 마음을 다독여 주던 어느 날, 거짓말같이 오래도록 소식이 끊긴 친구에게서 뜬금없는 편지를 받았다. 여고 시절에 문학을 한답시고 손을 낮잡고 문예반을 드나들던 정다웠던 친구에게서 온 소식이었다. 나의 친정에 들러 주소를 알았다며, 그 사이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의 국어 선생이 되었다는 반가운 사연이었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 내고 기어이 뜻을 세운 벗이 대견스러우면서도, 가다 만 나의 길에 대해 마음 한 귀퉁이가 서늘하기도 했었다. 그 때 일이 내 의식 속에 깊이 인각되어선지, 수월찮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까치는 언제 어디서나 반가운 친구다.
시골을 떠나 도회지의 아파트로 옮겨 살게 되면서, 희미해지 가던 기다림이 산을 지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와 다시 도지게 되었나 보다. 뒷산에서 내려온 앙증맞은 다람쥐가 잔디 위로 겁 없이 뛰어다니고, 새들이 날아와 노래를 부른다. 애 생의 가장 한적한 시대를 살며 다시 까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몰고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빈 시간이면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귀를 세운다.
그 까치가 다녀간 다음 날 엑스레이를 찍게 되었다.
전날부터 약간의 통증을 느끼긴 했지만, 자다 얻은 병인 양 잠결에 갑자기 동아누울 수도 일어날 수도, 다리를 옮겨 놓기도 어려웠다. 발을 딛고 걷기는 더더욱 난감했다. 불안이 머릿속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그러고 보니 갑작스런 내 발병을 일깨우려 까치가 왔던 게 아닐까 싶어진다.
나이 들면 굳건한 지팡이의 관계가 되는 게 부부인가 보다. 그의 팔짱을 끼고 절뚝거리며 겨우 차에 오른다. 얼핏 옛 생각이 떠올라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난다. 한적한 소풍 길이었다. 내딴엔 자연스레 그의 팔짱을 끼게 되었는데, 남편 왈, “누가 본다.”며 슬며시 팔을 빼낸다. 그러던 그가 오늘 따라 엉겹결에 수줍음도 까먹었나 보다. 이런 기회에 짐짓 더 세게 엄살을 부려 볼까 보다. 가끔씩은 아파 볼 만도 하다 싶다.
행복이란 어렵고 힘든 순간과 순간 사이에 반짝이며 피어나는 안개꽃 이거니, 어둠살을 비집고 돋아나는 아스라한 별빛이란 생각이 든다. 고마운 짝지에게 만만한 눈 흘김이 뉘우쳐지는 날이다. 휠체어에 실려 진료실, 주사실, 물리 치료실을 왕래하길 몇 며칠, 지나치게 모셔 주는 더 없이 친절한 지팡이의 손을 놓고 천천히 걸어 병원에 들어선다. 남달리 빠른 회복이라며, 첫날에 비하면 날아오는 것 같다면서 까치처럼 날씬하게 생긴 간호사는 방글거리며 농을 건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 때마다 한 마디씩 조커를 던지곤 한다. 환자의 마음을 밝게 해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몸이 아프면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인 터에, 어줍잖은 한 마디 말에도 위로를 얻고 마음을 열기 십상이다. 어느새 미소로 엮은 한 마디 말이 친화감을 돋운다. 느슨해진 사이는 김장감을 이완시켜 기분이 고조된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감성 유대가 병을 치유하는 큰 효과 요법이란 생각이 든다.
“좋아 보입니다.”, “젊어 보이시는 데요.”라는 덕담은 반가운 까치소리처럼 건강한 피돌기를 부추기는 처방과 다름없을 성 싶다.
오늘따라 겨울 볕이 도탑다. 파란 하늘은 처음 본 듯 눈부시다. 많이 걸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씀이 귓결에 걸려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한 발짝씩 힘주어 내디디며 온 몸에 화사한 햇살을 입는다. 첫 걸음마을 시작한 아기였을 때도 세상은 이처럼 경이로웠을까. 내 그림자와 더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당을 돌다 벚나무 아래에 선다. 메마른 가지에 올록볼록 봄 소식이 실려 왔건만, 기다리는 까치는 소식이 뜸하다.
하늘 먼빛을 바라다본다. 반갑게 날아올 그는 천상에서 내려오는 우체부가 아닐까. 하얀 셔츠에 검은 예복을 산듯하게 차려입고, 날렵한 몸맵시로 구만리 장천을 날아와 위안과 기쁨을 선사하는 반가운 나의 영적 친구, 나도 까치처럼, 쓸쓸한 이에게 반가운 사람이 되고 싶다.
“까악까악.”
귀에 익은 순박한 소리로 희망의 빛을 뿌려 주는 그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나그네 인생길의 영원한 노스텔지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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