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떠나 보내야 하는 계절 / 이정림

 

떠나 보내야 하는 계절 / 이정림

 

 

 

요즘 어머니의 일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침에 내게 전화를 거시는 일이다. 남보다 늦게 하루를 여는 딸에게 행여 방해라도 되실까 봐, 아침 일을 다 마치고도 전화기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신다. 그 기다림이 어떤 때는 지루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전화를 하시는 시간은 언제나 일정하다. 그래서 우리의 아침 문안은 자식이 어머니에게가 아니라, 어머니가 자식에게 하는 뒤바뀐 인사가 되고 말았다. 기다림이란, 어머니에게는 참으로 끈질긴 동반자다. 젊은 날에 아버지를 기다리는 여인의 위치에서도, 기다림은 불평 한 마디 내지 못하는 순종과 인내였다. 늘 어렵기만 했을 남편을 젊은 나이로 사별하고, 그 긴 세월을 흔들림 없이 살아오실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이라는 또 하나의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기다림은 곧 안타까움이요 즐거움이다. 때로는 행주치마에 묻어나는 눈물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가슴을 메우는 그리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언제나 어머니의 것으로만 존재한다. 한 서울에 살면서도 우리는 어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못한다. 마음이 끌리는 모임에는 빠질세라 참석을 하면서도, 어머니를 찾는 일에는 그만한 열성이 모자란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지방의 어느 가정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음식을 차려 놓고, 살아 계신 부모에게 모두 절을 올린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시고 나서 잊지 않고 기일(忌日)에 참례하느니보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는 편이 나으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기사를 대했을 당시에는 공감하는 바가 커서, 나도 그래 보리라 마음은 먹었지만, 한 번도 그 속뜻이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조차 자주 찾아 뵙지 못할 정도로 나는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내가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모든 것을 우선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일까.

우리는 너무 많은 구실을 자신에게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여기 있는 것에 구실을 대고, 내가 거기 있지 않음을 변명하며 산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에 이유를 달고, 내가 그렇게 말하지 못한 것에 합리화를 시키려 든다. 또한 내가 그렇게 처신한 것에 정당성을 주장하고, 내가 그렇게 처신하지 못한 것에 남에게로 먼저 책임을 돌리려 애쓴다. 이렇게 우리는 구실의 구실을 만들고, 변명의 변명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다. 정녕 이러지 않고서는 이 한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어머니는 만나지 못할 때보다 왔다가 돌아갈 때가 더욱 허전하시다고 한다. 그 허전함을 조금이라도 더 채우려는 듯이, 어머니는 떠나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계신다. 이제 어머니는 어쩌면 기다림에보다 떠나보내는 데 더 익숙해져 가고 있을지 모른다. 세월을 당신 앞에 묶어 두실 수가 없어서, 자식을 당신 품에서 떠나보내고, 손자들을 당신 무릎에서 떠나보낸다. 더 이상 우리를 기다릴 수 없는 그 날이 올 때를 대비하여, 어머니는 이제부터 조금씩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떠나보내는 마음, 그것은 기다림과는 다른 마음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일지라도 거기에는 한 가닥 희망이 있다. 그러나 떠나보내는 마음에는 누를 수 없는 애틋함이 그늘처럼 드리워지게 마련이다. 좀더 잡아 두고 싶은 마음은, 떠나가는 사람의 옷자락을 붙들고 어디까지나 함께 따라간다. 떠나보내는 사람은 떠나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 그 모습을 접어 마음에 넣는다. 사람은 가고 그리움만 남는 것이다.

지금 어머니가 우리를 떠나보내는 마음을, 우리도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하는 그때를 실제로 맞이해 보지 않고서는, 자식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바람이었는가를 알게 될 때에는, 회심(悔心)이 바람보다 더한 것으로 우리에게 몰아쳐 오게 되리라. 등 뒤로 어머니의 시선을 아프게 받으면서, 내게도 떠나보내야 하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동아줄 같은 천륜(天倫)도 세월에 점차 삭아지거늘, 하물며 인연으로 태어나지 않은 만남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어찌 감히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애착과 숙명을 혼동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허상들. 이제 그것의 실체를 거짓 없이 인지하고, 마침내 그 무연(無緣)의 줄을 손에서 놓아 버린다면, 나 또한 마음의 속박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될 것인가. 떠나보내고 놓여나야 하는 계절이 거부할 수 없는 새벽처럼 다가온다. 어머니는 멀어져 가는 내 모습에서 그것을 느끼실 터이고,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내가 결별해야 할 만남을 생각한다.

어머니가 내 모습에서 그만 눈길을 거둘 수 있도록, 짐짓 나무 뒤로 몸을 숨긴다.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날은 왜 언제나 하늘이 흐려 보이는 것일까. 가슴을 긋고 지나가는 아픔이 바람이 된 양, 이파리 하나가 땅으로 떨어져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