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 김채영
우산에 대한 애착이 남 다른지 그럭저럭 사 모은 우산이 여러 개 된다. 박쥐처럼 생긴 분위기 있는 검정 우산, 딸 아이에게 어울리는 레이스로 장식된 노란 우산. 비오는 날 주위를 환하게 밝혀줄 것만 같은 꽃무늬 우산도 있다. 물방울 무늬가 찍힌 투명한 우산은 파란 비닐우산의 향수에 젖게 한다. '우산 있어요. 우산!' 비가 오는 날이면 기다렸다는 듯 도시의 골목길을 누비던 우산장수 아이들을 문득 거리에서 만나고 싶다.
여분의 우산들이 집안 구석구석에 널린 것을 발견한 남편은 기왕이면 비옷까지 구색을 맞춰서 장삿길로 나서라며 빈정거리기도 한다.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비를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겠지만, 내게는 흠뻑 젖은 아이들의 모습이 별스럽게 신경이 쓰인다. 우스운 얘기지만 예전에는 비오는 날 우산을 쓴 아이와 비 맞는 아이로 행복의 정도를 가늠한 적이 있었다. 후줄근하게 비를 맞고 다니는 아이들은, 저마다 슬픈 사연을 간직한 아이일 거라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비오는 날 식구들의 우산을 챙기는 일을 습관처럼 중요시 하게 되었다.
오늘은 딸애를 마중 하기 위해 우산을 찾다가 창고 속에서 생소한 우산 한 개를 발견했다. 아, 이런 우산도 있었지! 얼마 전 친정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우산이다. 평소 어머니가 아끼던 우산이라 한사코 사양했지만 새 것이 아니라 그러냐기에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우산.
알록달록한 격자 무늬가 새겨진 어머니의 우산은 손잡이 장식이 꼭 마음에 든다. 탄탄한 나무로 섬세하게 새겨진 목각인형이 품위를 더해 준다. 얼핏보면 새 우산같지만 우산을 받쳐주는 대의 관절이 누르므리하게 녹이 슬어있어 십 년이라는 세월을 말해 주는 듯하다. 빛깔마저 보기 좋을 만큼 바랜 것이 마치 곱게 늙어 품위있는 노인같은 모양새다. 말이 십년이지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셔서 거의 우산을 쓴 적이 없으니, 꽤나 정갈한 편에 속했다.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신 적적함 때문이었을까. 지난날 우리집은 문턱이 낮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시골의 먼 친척이나 이웃사촌까지 쌀말이나 들고 와 묵으면 반드시 내집이었다. 방이 여러개 있음에도 단촐한 식구들만의 시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싸구려 합숙소인냥 방마다 객 식구로 차고 넘쳤다. 예로부터 집안에 드나드는 손님의 발길은 안주인의 인심을 대변해준다며 남들에게 살갑게 대하던 어머니였다. 사람들이 들끓는 것을 평생 낙으로 삼으며 살아왔던 어머니와는 달리 나는 그런 혼잡스러움이 못견디게 싫었다.
비오는 날 아침이면 우리 집은 한바탕 우산 전쟁이 일어났다. 객 식구에 아이들이 넷이나 되었으니 구멍난 우산, 살 부러진 우산까지 서로 차지하려고 북새통을 떨었다. 그나마 고장난 우산도 손에 넣지 못하는 날이면 비를 맞고 학교에 가야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는 사람들의 우산 속에 뛰어들거나, 길갓집 처마밑으로 피해가는 요령까지 생기게 되었다. 학교가 파할 무렵 예고 없이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이면 더욱 난감한 일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교문밖과 운동장, 심지어는 복도까지 우산을 가져온 부모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단 한번도 내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는 친구들의 우산에 끼어서 왔지만, 가끔씩 어머니를 기다린다고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 남기도 했다.
사춘기였던 그무렵,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한 가지 생겨났다.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이스 크림을 사먹곤 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먹는 빙과류는 입주변을 얼어붙게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어머니를 향한 일종의 소리 없는 반발이 아니었을까. 돈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노동도 서슴치 않는 남자처럼 강한 나의 어머니. 나는 그런 억척스러운 어머니보다 비오는 날 우산을 챙겨 줄 따스한 어머니의 잔정이 그리웠다. 싸늘한 날씨에 비바람까지 거셌지만 내 가슴은 주체할 수 없이 뜨거웠다. 그 반항기 섞인 열기를 차가운 아이스 크림으로 조금씩조금씩 식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십 년 전의 일이다. 큰 올케가 한꺼번에 여러개의 우산을 사온 일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출가외인인 나와 동생을 불러 섭섭함을 호소하셨다. 어머니까지 친정식구들이 여섯인데 다섯 개의 우산만을 사왔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서 큰 올케를 탓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시기에 우산보다 지팡이가 필요했다. 성치 않은 걸음걸이에 지팡이를 짚고 우산까지 쓴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도 참, 별 바쁜 일도 없는 양반이 비오는 날은 그냥 집에 계시면 될 것을.
나는 속으로 그러고 말았는데, 동생은 사려깊게 다음날로 화려한 색상의 고급 우산을 사들고 와서 어머니를 기쁘게해 드렸다. 환한 우산을 나팔꽃처럼 폈다 접었다 하시던 어머니의 즐거운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는 젊은날 늘 비를 맞고 살아오셨기에, 우산 한 개쯤 당신 몫으로 챙기고 싶었던 것이리라. 어머니의 속내를 짐작 못했던 나는 얼마나 무심한 딸이었던가.
"우산이 있어도 내게는 무용지물이란다. 도대체 허리가 굽어서 우산을 쓸 수가 있어야지."
지난번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가 우산 한 개를 불쑥 내밀었다. 마침 그날 비가 왔더라면 우산 속에 숨겨둔 어머니의 깊은 뜻은 빗물로 흔적없이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햇살이 눈부신 날, 엉뚱하게 양산도 아닌 그 사연 많은 우산을 내어준다는 것은 왠지 심상치 않는 일이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딸에게 그 우산을 물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같다.
욕심일지는 몰라도 어머니로부터 우산을 받는 순간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사느라고 바빠서 우산 한 번 챙겨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 정도는. 어머니는 애초에 그런 애잔하거나 멋스런 표현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비오는 날 장삿길에서 돌아온 어머니와 생쥐꼴로 마주쳐도 에구! 내 새끼 하면 그만이었다. 그 한마디는 안스러움과 미안함을 대신하는 어머니만의 짧고 편리한 애정 표현법이었던 것이다.
그 날 어머니는 선뜻 딸에게 우산을 건네주기가 그다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처럼 우산이 귀할 것도 없는 세상에 그나마 낡은 우산이었으니. 그러나 내 기억으로 그것은 어머니가 내 몫으로 주신 유일한 우산이었다. 말씨가 보드라운 것도 아니고, 화술이 좋지도 못한 어머니로서 딸의 묵은 아픔을 달래기 어렵다는 것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할말을 모두 우산 속에 꼭꼭 숨겨둔 것은 아닌지. 새 우산은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도 모르니 헌 우산이나마 슬그머니 비맞은 딸의 기억을 감싸안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창밖에는 추억 속의 그 날처럼 소나기가 내리고, 학교 길은 온통 바쁜 걸음으로 아이들을 마중가는 우산 무리들이 꽃밭을 이룬다. 나는 우산 한 개를 옆에 끼고 어머니의 나팔꽃같은 우산을 활짝 핀다. 비가 그치면 우산도 한송이 낙화로 지고 말 것이다. 꽃피는 것이 짧은 순간이라 舜이라고 불린다는 나팔꽃처럼 하루살이로 단명하는 우산 .이제는 우산에 대한 아픈 추억들과 화해를 하고 싶다. 이 비가 그치기 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