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도덕 / 가아디너(영국)
스트랜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갑자기 심한 소나기가 쏟아졌는데 나는 우산을 받지 않고 있었다. 사실은 우산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첫째, 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이고, 만일 들었다 해도 그것을 받을 생각이 안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폴스타프가 남루한 차림의 일단의 군대를 이끌고 커빈트리로 진군하는 것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런 엉터리 우산을 받은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면 그 우산은 결코 내 우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글을 읽어 주었으면 하고 내가 바라는 어떤 분의 우산이다. 그 사람은 내 본견(本絹) 우산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은 그가 대신으로 놓고 간 면제(綿製) 우산이다. 그가 내 우산을 받고서 스트랜드 거리를 뽐내고 걸으면서, 자기의 이 꼴사나운 우산을 들고 게다가 흠뻑 젖기가지 한 녀석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는 꼴이 상상된다. 아마 그 나쁜 친구는 이 꼴사나운 물건을 보면서 킬킬거리고 웃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신이 나서 “야, 자네 그래 감쪽같이 넘어갔지. 그것이 누구 것인지 안겠네. 별스럽게도 열맂 않을걸. 그리고 포재처럼 닫히거든. 그런데 이 우산은……”하고 혼자 지껄였겠지.
그러나 나는 그 친구에게 제멋대로 그 부정한 잔소리를 지껄이게 내 버려둔다. 그는 말하자면 소위 우산 양심이라는 것을 가진 부류의 한 사람이다. 여러분은 내가 어떤 부류의 인간을 말하는지 알 것이다. 그는 남의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수표를 위조하거나, 서럽의 돈을 훔치는 일은 결코 없다— 혹 그런 기회가 있어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우산을 바꾸거나, 책을 돌려주기를 잊거나, 철도회사를 곯려서 잔소리를 듣거나 한다. 사실 그는 자기의 정직의 의심스런 점은 선의로 해석하는 완전히 정직한 사람이다. 나마 그는 이발관 우산꽃이에서 손 닿는 대로 제군의 우산을 집을 것이다. 그는 자기 것보다 나쁜 것을 집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 것보다 나은 것을 집을 수는 있다. 그는 상당히 멀리 갈 때가지는 그 우산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리고는, “어, 남의 우산을 가져왔군. 아아, 이제 돌아간댔다 소용없겠지. 그 사람은 없을 거다. 나도 내 것을 놓고 온 바에야.”하고 놀란 태도를 지으면서 말한다. 그는 정말로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자신의 양심과 숨바꼭질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은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아주 티 한점 없는 사람, 보통의 경우 세상물에 때묻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우산 도덕에 고민한다. 주머니에 3등 차표를 넣고 1등 찻간에서 죽어 있던 그가 바로 유명한 설교사가 아니었던가.
책 얘기를 한다면, 대체 책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도덕심이 있는 사람이 있을가. 나는 수년 전 어떤 유명한 목사이고 문예비평가가 죽은 후 그의 장서(藏書)가 팔리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주로 17세기 작가에 관한 진귀한 서적을 모은 훌륭한 장서였다. 그는 그 방면의 저명한 권위자였던 것이다.
그 대다수의 책엔 전국 여러 도서관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것을 빌린 채 그는 돌려보낼 적당한 기회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 책들은 마치 법령에 판례가 따르듯이 그에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성스런 사람이었고, 훌륭한 설교를 했던 것을 나는 증언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 점에 대하여 나를 추궁한다면, 누구나 정든 책을 손에서 내놓는다는 것이 사실 어렵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책에 대한 유일의 안전한 규칙은 친구에게서 어떤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을 받은 한 사람이 취한 다음과 같은 규칙이다. 그는 “미안합니다만 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안 가지고 계신가요?” 하고 상대방은 말했다. “아니,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책은 일체 빌려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무도 빌린 책을 돌려주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것을 나는 내 경험으로 그렇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다 저를 따라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말하고 자기 서재로 그를 안내했다. “자, 4천 권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나 빌려온 것입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 결코 빌려줄 것이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선 가장 친한 친구도 믿을 수 없다. 나는 알고 있다. 그 질불라스는 어디 갔을까. 글쎄, 그리고 그 실비오 펠리코는 …… 그리고……그러나 이런 걸 주워섬길 필요가 어디 있나. ……그 친구가 알고 있다. 그 친구만이 알고 있다.
다음은 모자, 모자를 남과 바꾸는 치들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용서할 수 없다. 그것은 정직과 부정직을 혼동하는 그 희미한 양심의 경계선에서 벗어난다. 아부도 남의 모자를 쓰고 그 사실을 의식치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것이 행해진다.
내가 언젠가 실크햇을 하원 끽연실에 걸어두었다가 쓰려고 보니 없어졌다. 난 부득이 맨머리로 팰리스 야드와 화이트 홀을 걸어서 딴 모자를 사러 가야만 했다.
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따금 내 모자를 쓰고 제 것은 들고 간 그 신사가 누군가 하고 생각해 본다. 보수당원이었을까, 급진파 사람이었을까. 노동단원일 리는 없다. 노동단원이 깜빡 잊고서 실크햇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썼다간 이마가 그을릴 것이다. 윌 크룩스가 실크햇을 쓴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보다는 캔터베리 대승정이 산고모(山高帽)를 쓴 모습— 그런 생각은 불경한 것 같긴 하지만— 을 상상하는 편이 나으리라.
내 본견 우산을 가져간 신사가 정말로 본의아닌 실수를 했다는 것도 물론 있을 수 있다. 아마 그는 임자를 안다면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돌려줄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 나 자신도 여러 번 우산을 바꾼 일이 있다. 별생각 없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아주 확실한 말을 할 수는 없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본견 우산 자체도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는 득을 보고 때로는 손해 보아 가며 오랫동안 바꿈질을 계속하다가 얻은 것이다. 내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내가 몇 명의 정치가들과 만찬에 초대받았던 어느 부호집에서 바꾸었던 일이다. 그것은 여름철이고 우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후 며칠간 우산을 가지고 다닐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집 우산꽃이에서 금태에 금술이 달리고, 모 정치가의 이름이 세겨진 우산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집에 이런 고급 우산이 있은 일은 없었다. 그 찬란한 금빛 앞에서 우리집 사람들은 몸이 움츠러지는 동시에 아연했다. — 몸이 움츠러진 것은 그것이 하도 훌륭했기 때문이고, 아연한 것은 그것이 거기 있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마치 대영제국을 훔치려던 현행 중에 잡힌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급히 그 입자에게 편지를 쓰고, 내가 그의 정견은 존경하지만, 그의 우산을 훔칠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는 뜻을 적었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 그 우산과 편지를 가장 가까운 속달화물 취급소에 가지고 갔다.
그는 이에 대하여 아주 신사적이었고, 내가 우산을 돌려보낸 데 있어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편지에 “한 점잖게 보이는 신사가 내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고, 둘째번 점잖게 보이는 신사가 내게 코트를 넘겨 주고, 셋째번 점잖은 신사가 내 손에 우산을 쥐어 주고, 넷째번 점잖게 보이는 신사가 나를 차에 태워 주곤 하는 바람에 나는 무엇을 집어들었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나는 이런 모두 훌륭한 하인들 앞에서 당황했기 때문에 내게 어떤 것을 집어 주었던들 그것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주목할 것은 이 경우에 위기를 모면해준 것은 우산에 새겨 있던 이름이라는 것이다. 우산 양심을 가진 사람의 검은 마음을 닦는 방법은 이것이다. 그가 남몰래 기뻐하면서 바뀌어진 우산을 자꾸 들여다보는 모습이 눈에 어린다. 그가 주소 성명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자기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나머지 일을 처리하게 된다. 오늘에 경험이 있은 후, 나는 내 우산에 이름을 새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 구석에 세워놓은 저 포대 같은 것에는 하지 않겠다. 저런 것은 누가 가져가든 상관없다. 누구든지 희망하시는 분은 가져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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