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 김 경
“대학병원에서도 못 찾았으니 어떻한다? 까짓것 현해탄 건너고, 그래도 안 되면 태평양 건너 가보는 거지 뭐.”
큰소리로 떠벌이는 남편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더욱 평수가 넓어 보인다. 나도 히죽 웃으며 답을 챙긴다.
“그냥 태평양 건너 하버드로 직행해요.”
나는 지난 열흘 동안 꼼짝없이 가시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녔다. 유난히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그날 점심으로 생선회를 먹었다. 회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남편은 회 몇 점을 먹고는 바로 매운탕을 주문했다. 불판 위에서 맛깔스럽게 끓어오르는 매운탕. 화관 모양의 고춧가루 거품을 걷어내면서 나는 서둘러 숟가락을 놀렸다. 탱탱한 회와 또 다른 맛의 향연. 그런데 느닷없이 한순간 목이 뜨끔했다. 그만 가시가 박힌 것이다. 아무리 캑캑거리며 용을 써 봐도, 씹지 않은 밥을 그대로 한 숟갈 삼켜도 가시는 요지부동이었다. 손님들의 뭇시선이 나를 행했다.
“안 되겠어, 병원으로 갑시다.”
일어서는 남편을 따라 나도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었다. 테이블에서는 여전히 매운탕이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었다. S 걔, 문제가 너무 많더라구요. 대학생 아이들을 지금도 학교에 차로 실어 나른대요. 중간고사 땐, 애들 곁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나? 리모컨이 따로 없다니깐. 매운탕을 떠먹으면서 재잘거린 게 불찰이었다.
“무슨 생선을 드셨죠?”
의사는 혀끝을 잡아당기며 설압저로 아픈 부위를 정확하게 눌렀다. 찔린 흔적은 있는데 가시는 없다는 진단이었다. 처방한 약을 이틀간 복용하고도 아프면 다시 오라고 했다. 반성하라구. 괜한 친구 흉이나 봐대니 벌 안 받고 배겨? 참, S씨가 기도의 귀재라면서? 겁도 없이, 기돗발 센 사람 건드리는 게 아냐. 남편은 자꾸 실실 웃어댔다. 아들 딸 두 아이 다 명문대학에 다니는 S를 나는 트집 잡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이틀 뒤, 나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마취약에 담근 약솜으로 인두를 문지르고선 첫날보다 더 깊숙이 들여다 보았다. 염증 때문이지. 가시는 분명 없습니다. 아니에요. 침을 삼킬 때마다 딱딱 맞혀요. 같은 약을 처방 받아 며칠 더 먹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급기야 목감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답답하더니 목이 쉬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른 병원으로 갔다. 가시가 찔렸던 바로 그 자리, 인두가 부어 있을 뿐입니다. 가시가 없다뇨? 분명 이물감이 느껴지고 몹시 아픈데요? 가시가 박혀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느낌일 겁니다. 나는 좀 망설이다가 소견서를 써달라고 했다. 가시가 없다고 보는데, 환자가 고통스럽다고 하니 자세히 봐주십시오. 소견서의 내용이었다.
대학병원은 예상한 대로 차원이 달라 보였다. 부착물이 많은 진료기구하며 조명등도 눈이 부실 만큼 밝고, 설압저 또한 더 세련된 모양이었다. 아, 흔적은 뚜fut한데 가시는 빠져나갔군요. 혹 모르니 다른 데도 촘촘히 살펴보죠. 친절하게 여기저기를 검사했으나 끝내 가시의 행방은 묘연했다. 나는 그대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반드시 가시를 뽑고 가야 했다. 아픈 것은 둘째치고 온 신경이 목에 집중이 되어 멍하니 허송세월을 보낸 게 벌써 며칠이던가. 내시경 검사요? 글쎄요, 간혹 환자가 통증 부위를 잘못 짚을 수도 있으나…. 정 원하신다면…. 의사는 마지못해 내 의견을 따라주었다. 나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마른침을 삼켜가며 내시경실에 들어섰다. 한눈에 들어오는 기구를 보는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심호흡을 하고서 이를 앙다물었다. 리도카인 현탁액을 한동안 머금다가 뱉고는 침대에 누웠다. 새까만 호스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눈을 감았다. 통상 가시가 박히는 길은 물론, 나머지 모든 것도 아주 깨끗합니다. 내친 김에 위도 봐 드릴께요. 위도 정말 깨끗한데요. 누가 위내시경을 원했나? 도대체 왜 내시경까지도 가시를 못 찾는 걸까. 나는 침과 눈물이 범벅인 얼굴로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한 번 더 가시를 찾아 봐주시면 안 될까요? 두 번의 내시경 검사에도 가시는 오리무중이었다.
가시는 없었다. 가시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꼴이었다. 찔린 자리에 생긴 염증을 부정한 채, 가상의 가시를 깊이 심어둔 것이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게 의식이요, 관념이다. 가시가 박혔다고 확신한 그 순간부터 내 목에는 형상을 숨긴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고, 가뭄 날의 풀잎처럼 목구멍까지 메말랐던 거였다. 불가사의한 내 관념의 조각들. 그것은 대학병원 문을 나서면서 또 한 차례 나타났다. 거짓말처럼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잘못된 관념,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아주 단단하게 뭉쳐 흔히 말하는 고정관념이 된다. 나아가 고정관념은 바로 아집과 통한다. 새삼스레 내 아집이 민망하다 못해 부끄럽기까지 하다. 문득 지나온 세월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내 아집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까. 가시는 뒤늦게나마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가시스승님, 며칠 동안 스승님을 분별없이 원망한 이 어리석고 철없는 제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괜한 시새움으로 친구 흉이나 보는 치기부터 곧바로 떨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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