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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고장난 전축 / 김잠복

고장난 전축 / 김잠복

 

 

 

전축이 갑자기 소리를 멈춘다. 플러그를 넣었다 뺐다, 이리저리 툭툭 쳐봐도 감감무소식이다. 한번 말이 터지면 청산유수였던 라디오도 입을 닫고 있다. 그만 버릴까 하다가도 그래도 어째 살살 달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할 때도 있어 버리자니 또 그렇다.

전축이 요 며칠 속을 썩였다. 클래식 시디를 넣으면 삐죽이 뱉어내고, 보이지는 않지만 나긋나긋 곱상한 아나운서의 입을 ‘찌지직’ 봉하기 일쑤였다 ‘비발디 사계’ 시디를 켜놓고 봄날의 평화로운 감흥에 젖을 만하면 음악이 풀쩍 풀쩍 뛰어 처량한 바이올린연주로 ‘겨울’ 을 흘리다가 금세 열정적인 ‘여름’ 을 풀어내고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냥 쓰자니 속이 터진다.

전축 나이가 십 년이 족히 되었다. 오래전 아들이 쓰던 물건이니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나이쯤 됐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중년은 툭하면 병치레고 고장이 날 때이니 그럴 만도 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무에 있으랴.

남편은 지난 연말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했다. 아직은 건강하지만 일을 계속할 수 없음에 몹시 우울해했다. 유행 지난 물건이 진열장에서 밀려나듯 회사를 떠나온 것을 못내 서운해 했다.

“건강이나 잘 챙기고 삽시다.” 라고 달래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한동안 말수가 줄어들었다. 종일 집안에서 지내며 거실과 방 안 공기만 무겁게 움켜쥐고 있었다. 간간이 가늘게 라디오를 통해 세상 소식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집안은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가 누르고 있었다. 사는 것이 갑갑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라도 기운을 내야 했다. 남편에게 힘을 보태고 새 직장이라도 얻어주고 싶었다. 속으로는 온 사방을 헤매고 다녔지만 남편에게 마땅한 일자리는 아무데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차에 괜찮은 일터가 떠올랐다. 거리상도 가깝고 근무조건이 편한 곳이라 무릎을 쳤다.

남편에게 새 일자리가 생겼다. 세상에서는 밀려났지만, 찾으니 일자리는 있었다. 갈망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평소 그의 한결같은 성실함을 인정하고, 남다른 정분으로 지내온 인연을 생각해서, 잘만하면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곳이었다. 다름 아닌 ‘우리 집’ 이란 회사에 동료직원으로 입사시켰다.

남편은 나의 동료직원이다. 다소 늙수그레하지만, 일을 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회사의 살림살이를 조목조목 안내하자 남편은 얼굴이 환해졌다. 서로 마음 맞춰 일하자며 파이팅도 외쳤다.

그는 집안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지라 무슨 일이든 척척 알아서 할 거라는 믿음이 간다. 연중 휴일이 없어도, 특별한 보수를 주지 않아도, 절대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원하는 일은 두발 벗고 나설 것이 분명하다. 거기다 내가 못하거나 모르는 일까지도 속속들이 회사 편에 서서 일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남편은 젊었을 적부터 성실했다. 해병대 출신답게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이라는 강한 심성에다 깔끔한 일처리로 주변으로부터 신임을 받았었다. 길을 가다가 불쌍한 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천성적으로 남을 미워할 줄 모르는 어진 심성 때문에 별명이 ‘부처님’ 이었다. 정말이지 화장실만 찾지 않는다면 부처님이라 해도 무방했다. 언뜻 보면 얼굴 생김새도 비슷하게 닮았다.

그도 한 때는 몸이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 무연히 인상이 돌아가는 ‘뇌경색’ 환자였다. 그로 인해 쉰의 나이에 건강과 직장을 한꺼번에 잃고만 남편은 고장 난 전축이었다. 적잖은 돈을 들이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 고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다 노랬다.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남편의 병을 고쳐야했다. 능력 있는 한방과 양방을 교대로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기름을 치고, 닦고 조여 가며 지극정성을 다했다. 플러그를 바꾸고 몸체를 조심스레 다루며 원래의 소리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남편은 기적처럼 달포 만에 예전의 건강을 되찾았다. 언제 고장이 났느냐는 듯 멀쩡하게 소리를 내는 전축이 되어 주었다. 정상이라는 전문가의 판정도 받았다. 더는 시디 판을 밀어내지도 않았고, 딱따구리 라디오 진행자의 말을 가로채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한 때였었다.

요즈음 들어 남편은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를 할 적에는 전축을 크게 튼다. 여성 진행자가 읽는 사연에다 귀를 세우고 히죽히죽 거리기도 하고, 옛 트로트 가요에는 비쩍 마른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신명나게 따라 부른다. 제법 일터에 마수를 붙인 모양이다.

고장이나 병치레 없이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도 사물도, 고장은 있기 마련이다. 헌것이 있어야 새것도 있다. 쉽게 새것으로 바꾸기보다 헌것을 고쳐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따금 옛것이 그리울 때가 있듯이, 다소 모양은 뒤떨어지지만 속정이 숨어있고 내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이 훨씬 정이 가지 않던가. 요즘 새것들은 웬 고장이 그리도 잘 나는지….

영원한 개것은 없다. 새것도 쓰다 보면 헌것이 되고 헌것도 고쳐 쓰면 새것이나 진배없거늘. 고쳐 쓰는 것이 새로 바꾸는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경제적이다. 고쳐 쓸 물건이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고칠 물건조차 없는 것이 탈이다.

남편은 벌써부터 전축을 들고 시내 수리점에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나간 김에 다정하게 지원회식이라도 하고 들어와야겠다.

“오늘은 제가 맛있는 밥 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