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과 겨울과 한국인 / 박대인(朴大仁 에드워드 W 포이트라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내가 보아온 한국 시골생활의 추억 중에 항상 기억되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그것은 잎이 다 떨어진 감나무에 무겁고 피곤하게 달려 있는 감이다. 한국엔 여러 가지 과일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오랫동안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것이 감이다. 내가 오래 있었던 시골은 감이 많은 곳이었다. 시골의 겨울은 감과 함께 오는 것 같다. 초가지붕 위로 빨갛게 매달린 감 사이로 느껴지는 찬 겨울의 감각을 잊을 수 없다. 그 시골 사람들은 겨울 준비의 하나로 곶감을 만들어 놓기도 하고, 커다란 독에다 짚을 깔고 홍시를 여러 층 쌓아놓았다가 흰 눈이 내리는 겨울날 수정과도 만들고 떡과 함께 먹기도 한다.
감이 익어가는 모양은 한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딴 과일과 달라서 요란한 꽃을 피우거나 인공적인 간섭을 받기 싫어한다.
봄이나 여름, 사람들이 관심하지 않는 사이에 조용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또 오래 기다려 다른 과일들이 모두 선 보여 진 다음에야 감은 익어간다. 그랬다가 감은 잎이 다 떨어지고 겨울이 오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것은 끈기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은 한국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나무가 있는 곳이 뒤뜰이나 장독담이라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미국에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감을 구경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러나 어느 날 식료품 가게에서 감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모두 사버렸다. 그날 저녁 아는 한국인 친구들을 불러놓고 맛있게 먹었다. 나는 그들이 감을 먹으면서 한국을, 한국의 시골을, 아름다운 고향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감명 깊게 보았다.
오늘도 나는 식료품 가게에 멋없이 쌓여 있는 많은 감을 본다. 그러나 이것은 부지런히 일해서 터진 시골 여인의 손과도 같은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감과는 틀리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복잡해가는 도시생활을 떠나 그 시골 사람들과 빨간 감 그리고 이와 함께 오는 겨울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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