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배운다 / 문혜란
겨우내 처박아둔 타이어의 바람을 확인하러 나섰다가 오지게 넘어졌다. 이번엔 옆구리와 허벅지를 부딪쳤다. 바닥에 닿는 충격으로 보아 한동안은 굴신하기 불편하겠다. 와중에도 한쪽에서 자동차를 닦는 남자가 신경 쓰인다. 비명을 질렀으나 분명 쳐다보았을 터인데 모른 척한다. 다행이다.
발과 페달이 엇박자로 헛발질이다. 간신히 앞으로 나간다 싶으면 비틀거리며 한쪽으로 쏠린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비틀어 보지만 번번이 팔꿈치는 땅에 닿고 정강이는 깨진다. 장애물을 피하려고 하면 정확하게 그곳에 가 부딪친다. 넘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어김없이 피를 흘린다. 자동적인 반사 행동이다. 기우는 쪽으로 비스듬히 몸을 맡기고 빠르게 발을 저으라는데 그게 어렵다.
늙어 무슨 자전거냐고, 관절이라도 부러뜨리면 어쩔 거냐고 주위에서 말렸다. 무엇을 새로 배우기엔 늦은 나이긴 하다. 어떤 이는 한나절만 연습하면 탈 수 있다 하고, 배운 적도 없지만 혼자서 타니까 되더라는 사람도 있다. 나는 쉬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조급해하지도 않는다. 평범함에도 못 미치는 내 계산법은 그렇다. 무엇을 배울 때는 다른 사람보다 갑절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열두 동물 이야기’의 소처럼 일찌감치 출발해서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가는 일이다. 운전을 배울 때도 그랬고 컴퓨터 사용법도 그렇게 익혔다.
똑바로 가는 일도, 제자리에 멈추는 일도 어렵다. 씽씽 내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기가 죽기도 하고, 포기할까도 여러 번이다. 철봉 기둥을 버팀목 삼아 다시 안장에 올라앉는다. 오르막을 오를 땐 허벅지 근육을 부풀려 죽을힘을 다해 밟아 보지만 중간에 멈추고 만다. 엉덩이는 불에 덴 듯 뜨겁다. 내리막은 더 무섭다. 무작정의 질주로 패대기쳐진 경험이 있어서다.
자전거를 배우는 일은 오랜 숙제였다. 아니 꿈이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면 앞 번호에 올랐을 게다. 자전거에 익숙해지면 펼쳐보고 싶은 풍경이 있다. 뉴똥 치마를 펼쳐놓은 듯 은빛 물살이 출렁이는 강둑을 달려보는 일이다. 가을이 절정이면 더욱 좋겠다. 낙엽 깔린 오솔길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또 하나의 풍경이 되어 달리는 일다.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나한테는 꿈이다.
앞으로 내달리는 사람들 옆에서 위태롭게 페달을 밟는다. 넘어졌다 일어나면 핸들이 반대 방향으로 꼬인 줄도 모르고 낑낑댄다. 가장 어려운 코스는 사람들 사이를 통과하는 일이다. 사람들 곁에 다다르기 전에 내가 먼저 넘어지기 일쑤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또 내가 상처를 입을까 미리 겁먹고 고른 속도를 내지 못하고 멈칫멈칫하는 탓이다.
학교 운동장을 열 바퀴쯤 돌았다. 지그재그로 얽힌 바퀴 자국과 넘어져 뭉개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보기에도 불안하다. 세상사에 턱없이 뒤뚱거린 내 인생의 발자국을 닮았다.
자전거에 올라앉으면 어두운 골목길에서 불량배와 맞닥뜨린 듯 두려웠다. 이제 그 고비는 넘긴 듯하다. 걷는 것도 아니고 뛰어가지도 않아도 되는, 사람보다 빠르고 차보다 느린 적당한 속도다. 오토바이처럼 시끄럽거나 위험하지도 않는다. 시선은 코밑이 아닌 저만치 앞을 보아야 한다. 가만히 서 있어도 넘어지고, 그렇다고 마구 내달리기만 해서도 위험하다. 속도를 맞추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내닫는 자전거는 쓰러지지 않는다. 에코레일을 타고 전국을 누비는 사람들의 대열에 섞여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텅 빈 운동장에서 체인이 끊어지도록 발전기를 돌린다. 스무 바퀴쯤 돌았다. 바퀴자국이 제법 가지런하다. 시퍼렇던 종아리 멍 자국도 희미해져 간다. 전진만 가능한 외바퀴에서 내려오고 싶은 뭇 날들을 견딘 다음이다. 무수히 자빠지며 찢긴 상처와 실패가 스승이다. 세상의 치열한 중심에서 멀어진 지금에야 자신이 조금씩 좋아지는 인생 운전도 이와 비슷하다.
뒤늦게 세상 사는 재미 하나 건졌으니 신발 뒤축 구멍이 나도록 자전거 타며 해찰이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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