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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다가오는 목소리 / 변해명

다가오는 목소리 / 변해명

 

 

새벽 1시. 빗소리가 머리맡으로 자꾸 다가선다. 잠을 청하려고 몇 번이고 몸을 뒤채다 달아난 잠을 잡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었다. 빗소리와 어우러져 누군가 내 집 문을 흔드는 것 같은 느낌으로 텅 빈 공간을 채워간다.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며 이명으로 남아 있는 그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한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 생소하기만 한 목소리가 빗소리처럼 반복되며 다가선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우연히 그곳에서 우리 잡지를 보다가 내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봤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툴러진 우리말, 20년이 지난 낯선 노년의 음성으로 다가오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실수를 거듭한 끝에 겨우 기억해낸 내게, 나도 기억 못하는, 내가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라며 내 기억에도 없는 글귀를 외우면서 나를 잊지 않고 있노라고 했다.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 말을 자동응답기의 테이프처럼 돌리다 전화를 끊었다. 나는 무엇에 흘린 사람처럼 말을 잃고 있다가 전화를 끊기고서야 새삼 부끄럽고 당혹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나를 아는 사람들을 그토록 빨리 잊어온 내 생활이 얼마나 매정하고 메말라 있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고향은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떠나는 곳이요. 타향은 떠남을 전제로 하여 머무는 곳이다.”

이 말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새삼스레 그 말을 되씹어 보았다.

그는 대학교 때 어느 모임에서 만난 종씨 후배였다. 나를 몹시 좋아하여 졸졸 따라다니던 활달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된 뒤에는 한두 번 편지가 오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가 한국을 떠날 때 내게 보낸 편지는 전보 같은 문구의 짧은 글이었다. 내일 몇 시 비행기로 이민 길에 오름. 그뿐이었다. 병아리 같은 남매를 앞세우고, “누님, 성공하고 도라올께요.”하는 인사를 남기며 떠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태어나 원폭피해자로 귀국했지만 한국에서조차 발을 붙이지 못했던 그는 결국 제3국인 미국으로 떠난 사람인데, 이십여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으니….

나는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혹시 책상 밑에 깊숙이 들어있는 편지상자에 그의 편지가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 그 상자를 끌어내어 편지들을 쏟아 놓고 30여 년 전부터 받은 빛바랜 편지들을 뒤적거렸다. 이 상자 속의 편지들은 몇 번인가 정리하여 태워버리고 남겨진 것들로, 그리운 사람들의 소중한 글들만 남겨 둔 것들이다.

편지의 주인공들은 가족을 제외하고 나와 오래 사귄 사이로 이성으로 우정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같은 분야에서 함께 일하며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인정을 나누기도 했던, 또는 내 삶의 한 여정에 각인된 사람들이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또는 알려고 노력한 사람들. 좋아한다고 좋아하자고 다가서던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가 차곡차곡 담겨 있는 편지들이다. 그 빛바랜 편지들이 일제히 오케스트라의 주자처럼 각기 다른 음색으로 그 시간으로 소급하여 환상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음악소리들은 모두 젊고 사랑과 고뇌와 열정을 담고 있었고 이별과 그리움의 아픔도 함께 담고 있었다.

이십대의 편지글 속에는 무엇이 그리 절실하고 간절했는지. 무엇이 그리 고통스럽고 고뇌하게 했는지 세상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염려하고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비판하고 세상은 모두 자신들의 것인 양 했던 마음들이 담겨 있었다. 삼십대의 글에는 만나고 헤어짐을 분명히 행동으로 드러내려는 분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삶의 자세들이 보였다. 가까워지면 안 되겠지? 사랑하면 안 되겠지? 두려워하면서, 주저하면서 자신을 달래면서 초연한 척 겉 다르고 속 다른 사십대의 모습들로 바뀌기까지 한 사람의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글이란, 만남은 이웃사람처럼 반기고 헤어짐은 악수만큼의 인사로, 그래서 만남에도 헤어짐에도 마음의 흔들림을 드러내지 않는 그저 평범한 편지글을 쓸 뿐인데 그 날의 젊음들은 보석처럼 빛나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토록 가슴 절절한 편지를 받고도 그 사람의 마음을 몰랐었을까? 내가 얼마나 둔하고 어리석었으면, 그때의 마음들을 이제야 가슴 설레며 헤아려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먼 어제들의 이야기들이다. 내가 그들에게 보냈던 편지들도 또한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서로가 글 속의 마음을 모두 잊고 살고 있다. 무슨 글들을 썼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안다고 해도 그때의 사람들이 아니다.

생을 달리한 사람들의 글도 있다. 수필가 H씨, 그의 부인, 그의 제자, 그리고 두 분의 은사님. 그분들의 목소리도 생시처럼 글 속에서 살아 나온다. 다시 만날 수 없음이 안타깝다.

편지들을 뒤적이며 젊은 날의 나를 본다. 글 속에 되비치는 내 모습이 파도 위의 모습처럼 흔들리며 낯설게 일렁거린다.

아무리 뒤져도 그의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이 편지들도 모두 태울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도 모두의 기억 밖으로 밀려난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 이 비 오는 깊은 밤에 문을 흔드는 것 같은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서, 편지조차 남겨지지 않은 사람의 이명 속에서 해묵은 편지들을 뒤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