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 김창균
현실이 갈증하면 꿈이 된다. 꿈이 막막해지면 현실이 된다. 장자의 나비가, 꿈인지 현실인지 하는 질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꿈과 현실은 같은 세계에 있다. 인간은 가상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향한다. 그래서 스스로 사이버 공간을 만들어 냈다. 전화기도 그런 방향성의 산물이다. 말을 전자 신호로 바꿔서 공간을 압축한다. 뜻의 전달이 빠르다. 그 편의성이 개인적 공간으로 침투한 발명품이 휴대폰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진화되어 인터넷까지 사용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었다.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 것이다.
현실과 이미지, 현상과 가상의 경계가 파괴되었다. 현실에선 바깥을 보기 위해 창을 연다. 앱이라 불리는 프로그램들이 진열되어 있다. 앱이란 사이버공간의 사회적 기능들이다. 칼과 전쟁, 스포츠와 교육…. 각종 인간계가 가상공간에 나타난다. 이제 개인은 세계와 직접 접촉한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된다. 사이버 상에서는 선택이 자유롭다. 영웅이 되든지 소시민이 되든지 간섭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데로 옮겨 다니면 된다. 그러다 그 공간에서 나오고 싶으면 창을 닫으라. 스마트폰에서 그대는 철저한 자유다.
현실에서 개인의 선택은 제한된다. 스티브 잡스는 하나이고 슈퍼맨은 존재하지 않는다. 막막한 한계를 인정할 때쯤 권태가 찾아온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친절한 관계가 아니다. 위로 받지 못하는 개인은 소외된다. 전철을 타보라. 손에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그들은 가상공간이 권태를 다루는 데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 곳에서도 말이 오고간다. 진실일 필요는 없다. 환상에서 참과 거짓을 가리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단지 소비할 뿐이다. 무료하지 않도록 자극하고 반응한다.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개인은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아바타를 만든다. 생성과 소멸이 자유롭다. 관심에 따라 선택하고 무관심에 따라 지우면 된다. 가상이므로 진지한 감정에 갈등할 필요가 없다.
사이버 세상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러면서 스마트폰은 개인에게 권력을 쥐어 주었다. 세계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힘,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권능. 키보드로 명령하고 문자로 소통한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술 한 병을 사들고 밤길을 걸을 일이 없다. 백열등이 켜진 전봇대 옆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휴대폰을 열면 된다. 대화방에 들어가 그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밤거리 사진 하나쯤 보내 올 수도 있다. 그들과 나는 같은 공간에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서로 주고받는 것은 전자 신호로 된 폐쇄 공간에서 주고받는 메시지다. 대화는 양 방향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일 방향성이다. 나도 보내고 너 역시 보낸다. 현실적 느낌의 모사이므로 치열성이 약하다. 각자 자신의 세계에 고립되어, 끊기고 이어지는 이미지만 그렸다가 삭제한다. 문득, 스마트폰을 닫아보라. 세계와 떨어져 나온 듯한 허무, 철저한 고립이 검은 화면 위에 있을 것이다. 다시 창을 연다. 암호입력. 네 글자가 나타난다.
우리는 각자 비밀을 가지고 있다. 휴대폰의 중요한 기능이 개인 비밀이다. 분명한 벽이 있다. 개인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벽 안에 있다. 개인적 공간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벽 안에 있다. 각자 혼자이다. 스마트폰의 정보는 믿을 수 있지만,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다. 검색 창에 띄워 확인되기 전에는 말은 불안한 믿음이다. 인간의 말에서 만들어진 매트릭스가 말을 부정한다. 비주얼과 미미지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제 언어는 더 이상 세계의 주인이 아니다.
휴대폰이 생기고 편지 쓸 일이 없다. 흰 편지지와 가슴 설레는 말들은 전화로 대체되었다. 생각과 전달이 즉시적이다. 기다림이 사라졌다. 기다림은 비어 있는 공간이다. 그 비어 있음이 바로 꿈이다. 스마트폰은 개인의 빈 공간과 시간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꿈에 이미지를 강제하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간섭되는 공간은 막막한 현실이다.
스마트폰을 사면서 자유를 생각했다. 사람 사이의 갈등, 시간에 대한 권태. 금지의 대한 결핍들에서 나를 구해 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가성은 불완전했다. 사람이 만든 세계에 사람이 사라졌다. 인간을 구원하려면 인간을 자유로이 놓아 주어야한다. 사이버에서 인간은 다시 구속되었다. 그래서 장자를 놓아 주어야겠다. 나비는 다시 꿈을 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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