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창 / 이종준
지금 8만 명의 떼창을 듣고, 보고 있다.
합창이 아니다. 떼창이다. 사전에는 없는 단어지만 나누어 의미를 부여하면 말이 된다. ‘떼’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이나 행동을 같이 하는 무리를 뜻한다. ‘창’은 판소리나 잡가(雜歌) 따위를 가락에 맞추어 높은 소리로 부름, 또는 그런 노랫소리를 말한다. 즉 같은 목적을 가진 무리가 잡가 따위를 높은 소리로 부른다는 뜻이겠다. 합창이 악기나 주변 사람의 소리에 맞춰 노래를 듣기 좋게 맞춰 부르는 것이라면, 떼창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같은 노래를 동시에 부르거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대학 축제에서 사람들이 뛰면서 함께 부르는 모습,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팬들의 모습이 떼창을 하는 것이다. 즉 떼창은 ‘열린 광장의 행복한 집단의 큰 소리’다.
싸이의 ‘챔피언’이란 노래에 맞춰 뿜어내는 8만 명의 엄청난 에너지가 전파를 타고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장관이다. 이 곡은 춤의 동작과 음악의 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져 사람을 더 흥분시키는 마력이 있다.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 하!”로 시작되는 노래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음악을 즐기며 손뼉을 치고, 뛰어오르고, 좌우로 흔들며, 소리 질러 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경과 학생, 갈라져 있던 땅덩어리, 편 가르지 않기, 파벌 없이, 성별 없이 다 함께 즐겨보자는 꽤 깊은 의미도 지니고 있다. 싸이는 공연 중간중간에 마이크를 관객들에게 돌려 떼창을 유도하고 관중들은 엄청난 함성으로 호응한다. 공연자와 관람자가 한몸처럼 움직이고 반응한다. 저 무대는 용광로다. 가사처럼 우리가 구분하고 나누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녹인다. 함께 노래를 하고 즐기는 사람들과 내가 있을 뿐. 다른 타인은 없다. 싸이, 대단하다. 그리고 드디어 나왔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재미있다.
노래가 재미있고, 춤이 재미있고, 뮤직비디오는 더 재미있다. 영상과 음악이 시작되면 어린이 놀이터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싸이가 나온다. 입으로는 ‘오빤 강남스타일’이라고 외치지만 그가 있는 곳은 고급 관광지나 해변이 아니라 어린이 놀이터다. 그 옆에는 런닝셔츠, 추리닝을 입은 꼬마가 익살맞은 표정으로 춤을 춘다. 또 승마장에서 말을 타는 것이 아니고 놀이공원 회전목마를 탄다. 배설의 소비문화를 상징하듯, 화장실에서 싸이는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나는 뭘 좀 아는 놈’이라고 외친다. 배경으로 마장(馬場), 높은 건물, 고급 사우나, 관광버스, 장기를 두며 소일거리를 하는 노인, 지하철 등 우리의 다양한 일상이 그 배경이 된다. 마지막 장면은 청소부, 태권도 선수, 교통경찰, 비행기 승무원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함께 신나게 말춤을 추다 폼을 잡고 ‘강남 스타일’을 외치며 끝난다. ‘강남’을 추종하는 우리 새대를 대단히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잘 표현했다.
35살, 아이 둘의 아버지, 뚱뚱하고 편안하게 생긴 아저씨가 우스꽝스러운 춤과 비트 있는 리듬, 중독성 강한 후렴구로 몇 달 만에 한류(韓流)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강남 스타일’에서 모든 출연자들이 재미있고 아주 단순한 말춤을 춘다. 그러자 세계가 열광을 한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음악만 듣고 춤을 흉내 내며 웃고, 즐거워한다. 춤추는 사람의 얼굴, 행복한 표정은 국경이 없다. 얼굴색깔 구분도 없다. 날씬하고 예쁜 여자들뿐만 아니라 튼실하고 힘이 좋아 보이는 여자들도 맨 앞에 나와 자신 있게 춤을 추며 싸이처럼 자신만의 매력을 뽐낸다. 이런 게 좋다.
절도 있는 춤과 잘 생긴 외모로 인기를 끄는 아이돌 가수들도 아직 아시아 시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십 년간 우리나라 가수들은 그저 쳐다만 봐야 했던, 현재 가장 큰 음악 시장, 미국! ‘No Body’의 원더걸스가 현지에서 몇 년을 고생해서 성과가 미미했던 미국 무대를 싸이는 자신만의 B급 스타일로 단박에 문을 열었다. 운과 때가 우연히 잘 맞아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꾸며서 열심히 만든 질서보다 자연스럽게 웃고 즐기는 것에 미국 시장이 크게 반응한 것 같다.
2012년 10월 6일 기준으로 3억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영상을 봤고 숫자는 지금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공식 빌보드 차트 2주 연속 2위, 다음주 1위를 노려볼 수 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다. 싸이가 스스럼없이 밝혔듯이 음원 홍보용, 4분 13초짜리 짧은 영상물이 유튜브를 타고 제대로 터진 것이다. 싸이는 공연 때마다 여장(女裝)을 하며 약간 엽기적인 춤을 추는 가수다. 문제를 일으켜 군대를 두 번 갔다 왔고, 한때 방송정지를 당한 연예인이다. 뭔가 좀 이상하고 불안정한 이미지를 가졌던 싸이. 그런 싸이가 지금 서울시청 광장에서 8만 명을 한꺼번에 말춤을 추게 하고 떼창을 부르게 하고 있다. 자신도 즐기고, 저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저런 행복한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건 어떤 힘일까? 싸이, 정말 대단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저런 행복감을 준 적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몇 명쯤일까? 아니, 싸이처럼 내 스타일을 자유롭게, 부끄럼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본 적은 있을까? 적어도 사람들에게 ‘이게 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내 스타일이 있기나 한 것일까? 그냥 좋은 게 좋은……. 뭐든 정해 놓은 것을 잘 지키는……. 주변이 불편하지 않도록 알아서 말조심하고 튀는 행동은 하지 않던……. 그게 착하고 바른 길이라고 교육받은…….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무지 갑갑했던 나!
거대한 관념이나 이념. 줄서기 따위는 집어치우고, B급 싸이를 즐기는 떼창을 보며 나는 배운다. 나도 이제부터 내 스타일로 나를 드러내는 걸 즐겨야겠다. C급 정도로 급수가 좀 낮아도 용기를 내서 ‘이게 나야! 뭐 어때!’라고 활실히 이야기해야겠다. 그래야 저렇게 미친 듯이 뛸 수 있겠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좀 덜 받고 살겠다. 그래야 정말 열심히 살 수 있겠다. 그래야 구름처럼, 새처럼 자유로울 수 있겠다.
저 열광의 도가니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 행복해 보인다. 그들을 보는 나도 행복해 진다. 벌떡 일어나 TV앞에서 손을 흔들며 말춤을 추며, 함께 소리 지른다. 방안에서 떼창의 도가니에 나도 뛰어든다.
‘음 음 음 음 오빤 강남스타일! 짠!’
'수필세상 > 좋은수필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지금 이 순간 / 정목일 (0) | 2014.06.26 |
---|---|
[좋은수필]바보처럼 잘 웃는 여자 / 한승원 (0) | 2014.06.25 |
[좋은수필]갈림길 / 정태헌 (0) | 2014.06.22 |
[좋은수필]계절풍 / 김경 (0) | 2014.06.21 |
[좋은수필]휘파람 / 김근혜 (0) | 2014.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