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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모여 있는 불빛 / 박영덕

모여 있는 불빛 / 박영덕 

 

 

 

나흘 간의 추석 연휴가 끝났다.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고 남은 사람은 남은 채 일상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늙은 부모들은 자손들로 채워졌던 집 안의 빈자리를 허전한 눈길로 보듬으며 손자들이 흘리고 간 장난감이나 양말짝에 가슴을 에이고,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고향집에서 챙겨 주었던 올망졸망한 보따리들을 풀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부쩍 늙고 쇠잔해진 부모와 나이 들수록 닮아 가는 형제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리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끈거린다. 아이들은 어떤가. 맑고 청명한 가을날 부모의 고향으로 가는 길의 정경과 조부모와 일가친척과 함께한 시간들을 아름다운 유년의 무늬로 깊이 새겼을 터이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애증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가장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의 원류이자 아프고 민감한 속살이며 연민과 정다움이다. 그리고 그리움이 온전하게 숨쉬는 곳이다

 

고향이란 마음 깊숙한 곳에 따뜻하고 은은하게 묻어 두고 있는 장소, 공간, 시간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운 것들을 이르는 호칭이기도 하질 않던가. 고향은 특정 지명의 물리적 공간이라기보다 마음의 공간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때문에 실제의 고향이 피폐하고 황폐하여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하여도 고향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정서는 결코 거칠거나 메마르지 않는다. 외양과 풍속과 인심이 어떻게 달라졌든 고향이란 상처의 위안과 치유가 함께 있는 곳이고 막다른 길에서도 돌아갈 힘을 얻는 곳이기도 하다.

 

긴 여행의 고달픔과 불편함을 감수하여 먼 고향 집을 찾는 사람들. 밤늦도록 음식을 만들거나 향을 깎고 밤을 친다. 그런 어른들 곁에서 그들이 알지 못하는 가족사나 조상 얘기를 전설처럼 들으며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아이들의 모습을, 어찌 전통과 풍습이라고만 할 수가 있으랴. 조상의 묘소 앞에 나란히 엎드린 형제들은 정이 깊으면 깊은 대로 소원하면 소원한 대로 한 덩어리를 이룬다. 한 뿌리 한 핏줄이라는 마음이 오붓이 모이고 내가 바로 나임을, 서로가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추석 차례를 지내기 위해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이는 자리는 해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행사지만 그 동안 새 식구가 들어와 가족이 되고 아이가 태어나고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나는가 하면, 늙은 사람은 세상을 떠나는 등, 어느 집이나 일어나는 변화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당연한 가족사의 흐름이 바로 자신이 주체로서 동참하는 역사가 아니던가.

 

옛 어른들은 좋을 때는 흩어지고 궂은일에는 모이는 법이라고, 몹시 외롭고 고달플 때면 집 생각이 나는 법이라고 한다. 가족이란 필연의 안식처고 최후의 보루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 작가는 가족을 일러 모여 있는 불빛이라고 말했다. 춥고 어두운 밤, 가족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는 집의 불빛은 얼마나 다습고 정답던가. 얼마나 멀리까지 비추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