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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촉 / 윤명희

/ 윤명희

 


 절대 아니라고 한다. 사람 살아가는 일에 절대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데도 그 말을 거듭 하고 있다. 그는 평소에 차라리 부러졌으면 졌지 휘지는 않는다며 마치 자신의 성격을 자랑처럼 이야기 했다. 되돌릴 생각이 전혀 없는 그 말은 화살이 되어 내게 날아온다. 소통되지 않는 그의 힘에 밀려 먼저 한발 물러선다. 나는 마음의 손으로 그를 밀어내면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말문부터 닫는다. 차라리 입을 다무니 열을 내서 이어가는 말 속에서 그의 화살촉이 보인다. 바늘 끝 같이 보이던 것이 두루뭉술하게 방앗공이만큼 크게 보이자 그 속에 휘지 않으려 용쓰는 그가 있다. 

 화살촉의 끝을 보지 못해 서러웠던 기억이 아릿하게 일어난다. 아버지는  맏이인 내 앞에서는 더 촉을 세웠다. 나만 바르게 크면 동생들은 그저 따라 갈 거라는 생각에서였는지 그저 예사로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그 날 저녁 무렵도 오늘처럼 더웠던가보다. 종일 사무실에서 서류와 씨름하느라 지친 몸으로 대문에 들어서는 내게 아버지는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는데 그 기억은 전혀 없다는 듯 의심의 눈빛을 보냈다. 퇴근해서 바로 오는데 무슨 말씀이냐고 해도 어디 갔다가 왔느냐며 바른 말을 하라고만 재촉 했다. 사무실에서 출근하지 않았다는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입만 벙긋거리는데 동생이 들어왔다. 이야기의 앞뒤를 들은 동생이 웃으며 그 전화는 자기 것이라고 했다. 아침에 늑장을 부려 버스를 놓쳤다는 것이다. 옆자리 직원이 평소에는 전혀 늦지 않던 사람이 오지 않기에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며 자세한 설명을 했지만 아버지는 좀체 믿으려들지 않았다. 나는 몸도 그리 약한 편이 못되어 결근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동생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감싸주려 거짓말 한다며 호통을 쳤다.

 아침에 받은 전화의 주인공은 동생이 아니라 나로 각인되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콩을 콩이라 해도 믿어주지 않는 것이 억울했다. 아버지에게 비친 내가 그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서러웠다. 그러냐며, 당신이 잘못 알았다는 한 말씀만이면 끝이 날 텐데 활을 떠난 화살처럼 계속 한 곳으로만 고집했다. 아버지의 말씀이 법이었다. 그 법 앞에서 나는 출근한다고 하고선 어딘가로 가서 종일 놀다 온 사람이 되어 주어야했다. 억울한 생각에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가 내 말을 옳다고 인정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기에 더 이상 울 일도 아니었다. 그만 울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뿐만 아니라 울음소리도 그치지 않았다. 아무리 울지 않으려 애를 써도 입안에서는 계속 ‘으~으’ 하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더 울고 있으면 조금 숙져가는 아버지를 자극할 것 같아 대문을 나섰다. 어둠 속에서 동네를 두어 바퀴를 돌았지만 잔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정도(程道)를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억울한 마음이 울음까지 지배했다. 정도를 지나친 다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만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갈 데까지 간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전까지 강하게 밀어붙인 말을 끝내 굽히지 않고 어깃장까지 내 놓던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 또한 그 말을 거둬들일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잘못 생각했다는 말을 해야 할 순간을 놓친 아버지 또한 울음이 거둬지지 않는 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정도(程道)가 있다. 그것을 지나친다는 것은 처음 시작한 본질과는 멀어지는 일이다. 두 화살이 끝도 없이 날아간다면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은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의 정도를 알고 멈춘다면 상대가 보인다.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대를 바로 볼 수가 없다. 정도를 지나쳐 가는 상대를 가만히 보면 멈출 수 없는 그 무엇이 보인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앞만 보고 가서는 안 된다.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되돌아오는 것이 본질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 질수 있다.

  오늘도 그는 자신이 한 번 뱉어 놓은 말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정당화시키려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 내 생각 또한 다 옳다고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슬쩍 나의 화살촉부터 먼저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