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붕어빵 / 손금희
간식이 귀하던 시절에 아버지께서는 가끔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을 사 오셨다. 빵의 재료는 똑 같지만 빵들의 모양에 따라서 국화빵, 붕어빵이라고 하셨다. 간혹 나이 드신 분들은 밀가루 반죽이 익으면 풀 같다고 하여 풀빵이라고도 하였다. 어린 나의 손바닥보다 큰 빵이었다.
우리 삼남매는 아버지 앞에 나란히 앉아서 아버지께서 내미는 봉투를 열었다. 잘 익은 밀가루 반죽의 붕어빵은 종이봉투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서로가 엉겨 붙어서 떼어내려하면 단팥부터 내어 놓았다. 큰오빠는 똑같이 3등분으로 나누어 각자의 몫을 지어 주었다. 마음껏 먹고 싶었지만 삼남매는 아껴 먹느라고 누가 하나를 먹기 시작해야 같이 먹곤 하였다. 이튿날이면 식어서 뻣뻣한 빵이지만 동네에 들고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하였다. 그리고 그날 하루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였다. 붕어빵 몇 개가 가져다 준 세상은 행복했었다.
삼남매 중에서 그래도 딸인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오빠들을 제치고 항상 아버지의 무릎은 내 차지였다. 아주 어렸을 때 눈이 많이 오던 날 아버지를 따라 시골에 간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두루마기 안에 나를 안으시고는 눈보라가 나의 얼굴을 때릴까봐 가슴팍에 꼭 품어 주셨던 기억은 몹시 추운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상고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 내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동네 작은 내과병원에서 소화제를 타다 드셨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그나마 약값을 아끼려고 보건소를 찾았다가 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아는 권유를 받고서야 아버지의 병이 깊음을 알았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입원할 수 없어 아버지께서는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 계셨다. 처음 얼마간 철없는 딸에게 아버지는 환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 들면서 아버지의 병세는 깊어갔고 통증으로 인한 고통의 신음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 되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애를 태우다 생각한 것은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다 주셨던 단팥과 잘 어울린 부드러운 붕어빵이었다.
퇴근길에 붕어빵을 사다 드리면 아버지께서는 맛있게 드셨다. 언젠가 어머니께서는 “너거 아버지가 인제는 저녁에 니 들어오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니가 사다 주는 붕어빵만 먹을라칸다 아이가…” 그렇게 출근하는 딸에게 혼잣말처럼 얼버무리셨다.
그날 아침도 바빴다. 아침잠이 많아 늘 출근시간이면 온 집안을 정신없게 하였다. 낡은 화장대 앞에서 바쁘게 머리를 손질하다가 아버지의 눈과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유난히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으며 촉촉하여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뭔가 하시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싶었지만 마음처럼 입이 열리지 않는 듯 입술만 약간 움직일 뿐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걱정 말라는 듯 아버지께서는 턱을 들어 보였다. 급한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을 나섰지만 출근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출근하고 두어 시간 쯤 지났을까. 사무실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옆자리의 동료가 수화기를 건네는 순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받아들고는 겨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래, 야아야…! 놀라지 말고 어서 집으로 오너라.”
집안의 먼 친척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사무실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아 헛발질에 넘어졌다. 회사 앞 차도에서도 지나가던 차들의 운전기사가 창밖으로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질을 하였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겨우 택시에 몸을 싣고서야 눈물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개월 동안의 병고(病苦)로 뼈만 앙상한 아버지의 몸은 따뜻하였다.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는 평온하게 보였지만 보내기 싫은 가족은 그 평온함을 깨지 못하여 몸부림을 쳤다. 그때서야 비로소 천붕지괴(天崩地壞)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가시는 순간에 보지 못하고 간 딸이 안타까웠었는지 거의 매일 밤 꿈에 나타나 함께 가자며 손을 끌었다. 그런 아버지의 손을 한사코 마다며 뿌리치다가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면 정신을 차리기를 두어 달 정도 반복하였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아버지 산소를 네가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하였다.
아버지 가시던 날은 음력 정월달이라 얼음이 언 곳도 많았고 응달에 잔설들이 희끗희끗 있는 추운 날이었다. 그새 따뜻한 봄기운이 돌아 간간이 연두 빛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어느 날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아버지 산소는 자그마한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다소 가파른 산언덕의 양지 바른 곳이었다. 따뜻한 봄기운에 얕은 냇가의 버들강아지가 뽀얀 솜털을 드러내었지만 산 아래의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아직도 살얼음이 남아 있었다.
그날도 나의 손에는 붕어빵이 쥐어져 있었다. 아직 잔디 한 포기 제대로 자라나지 않은 아버지의 산소에 붕어빵과 음료수를 펼쳐놓고 절을 하는 딸의 뒤에서 어머니는 두 손을 모우고 빌었다.
그렇게 아버지 산소를 다녀오고 난 뒤 신기할 정도로 아버지는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서움증도 없어졌다.
몇 해 전, 봄부터 이상하리만큼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여 손을 꼽아 보이 결혼하고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는 10년이 넘도록 아버지의 산소를 찾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가을에 아버지 산소엘 갔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께 작은 상(床)을 차려 드렸다.
그리고 붕어빵 대신 사위와 딸을 붕어빵처럼 닮은 외손자와 외손녀가 엎드려 절을 하니 가을 햇살이 산소 위의 마르기 시작하는 잔디 끝에 반짝였다.
지금도 남편과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남편과 내가, 그 해 봄부터 그리도 아버지가 그리웠던 것은 자식이 보고팠던 ‘아버지의 부르심’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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