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呪文) / 박영덕
친정엘 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린다.
팔순 노모의 얼굴이 선로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애잔하게 떠오른다. 칠 년 전부터 문밖 출입이 어렵게 된 어머니. 반대편을 지나는 전동차의 금속성이 잘못 밀린 어머니의 휠체어 소리 같다. 귀를 막으며 돌아서는데 작은 표지판에 적어 놓은 시구(詩句)가 눈에 들어온다. 한 종교단체에서 포교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목은 ‘주문’. 지은이는 ‘시인 장용철’ 내용은 무슨 말이든 만 번을 반복하면 진언(眞言)이 된단다. 어머닌 오늘도 한 주먹의 약을 삼키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오늘 저녁 잘 먹고 잠들었다가 내일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벌써 몇 번째던가. 딸 넷을 붙잡고 하신 그 고백. 하나 있는 아들 불효자 만들까 봐 남들에게는 못 하신 그 말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내가 대신 해 드리면 안 되는 건가. 그렇게 되시라 주문 걸어 드리면 이 밤은 단잠을 이루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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