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학 개론 / 이혜경
시계바늘이 물구나무를 서는 저녁 무렵이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이이들에게는 텔레비전 보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이미 손에는 리모컨을 쥐고 있다. 화면 가득 펼쳐진 초록 잔디를 배경으로 양 팀 선수들의 이름이 채워지고 드디어 야구 경기가 시작된다.
야구의 매력에 처음으로 눈을 뜬 것은 중학교 때였다. 내가 하는 지역의 연고팀이 오랜 부진을 털어내고 ‘이기는 야구’를 선보이며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날도 아버지가 틀어놓은 야구 경기를 보다가 신인 투수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큰 키에 금테 안경이 유난히 어울리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길쭉한 팔다리로 시원하게 공을 뿌리는 모습에 꼼짝없이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 번 빠지면 약도 없는 게 야구였다. 그 선수가 등판하는 날이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앞에 찰싹 붙어 지냈다. 경기 다음 날은 종류별로 스포츠 신문을 사서 기사를 스크랩하면서 내 시험 점수를 올리는 일보다 그 선수가 몇 승을 하느냐에 더 열을 올렸다. 야구장에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공 하나하나에 같이 긴장하면서 응원을 보냈다.
그 해 가을, 응원하던 팀이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자 야구 병이 한층 깊어졌다. 뉴스를 통해 승리 소식을 접할 때면 내가 승리를 따 낸 것 마냥 흥분했다. 한 번만 더 이기면 창단 이래 두 번째 우승을 확정짓게 되는 날,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와 첫 차를 탔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아 어둑어둑한 새벽에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일찌감치 야구장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표를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전날 밤부터 야구장 앞에서 텐트까지 치고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내 차례까지 표가 돌아오지 않았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경기장 주변을 서성이던 중 경기장 안쪽에 있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한 눈에 뵈도 술기운이 올라 낯빛이 얼룩덜룩한 그 아저씨는 은근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야구 표를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학생! 소주 한 팩만 사 오면 내가 표 줄게.”
나쁜 짓인 줄은 알지만 눈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머리는 망설이면서도 발을 이미 편의점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소주를 가방에 숨겨 와서 좁은 철망 너머로 건네준 끝에 가까스로 한국시리즈 표를 손에 넣었다.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지 않았다. 지금도 야구는 내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일상이다. 응원하는 팀이 지느냐 이기느냐에 따라 기분이 흐렸다 맑았다 한다. 응원 팀이 이긴 날에는 엔드로핀이 솟아서 웬만한 일은 웃어 넘기곤 한다. 반대로 승리를 낙관하고 있다가 실책이 빌미가 되어 다 잡은 경기를 놓치는 날이면 입 안에 든 밥알이 모래처럼 까끌까끌하다. 그런 날에는 애꿎은 식구들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밥 한 숟가락 보태주는 것도 없는데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깟 공놀이’에 웃고 우는 것은 그만한 매력이 있어서다. 야구공은 둥글어서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어제 이겼다고 오늘 이긴다는 보장이 없고 어제 못했다고 오늘까지 지란 법도 없다. 만년 꼴지 팀이 일들 팀의 코를 납작하게도 만들 수 있고, 구회 말 투아웃 후에도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 야구의 진정한 묘미다.
오랜 세월 야구를 보면서 요즘에는 그라운드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이 되곤 한다. 야구 경기는 인생살이를 몇 시간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한 편의 스포츠 영화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날마다 밥벌이 전선에 나서는 남편은 우리 집 선발 투수다. 경기를 끌어가야 하는 중압감을 느끼며 세상이라는 험난한 마운드에 선다. 나는 맞은 편에 앉아 남편과 호흡을 맞추는 포수이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승부구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 신중하게 의논한다. 이따금 사인이 맞지 않거나 제구력 난조로 예상을 벗어난 공이 들어오면 빠트리지 않기 위해 나는 몸을 날리기도 한다. 위기 상황에서 투수의 눈빛이 흔들릴 때 먼저 알아차리고 마운드로 걸어가 토닥이고 용기를 주는 것도 내 중요한 임무 중 하나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튼 실점 없이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다. 더러 안타는 맞았지만 큰 점수를 내 주지 않은 채 팽팽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중반 이후부터는 작은 실수 하나가 경기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남편의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작전이 노출 된 가능성도 많다. 자칫 홈런 한 방에 지금껏 힘들게 지켜온 것들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에 끝까지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을 때 힘을 합쳐 위기를 넘기고 나면 새로운 기회가 오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구든 인생이든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승리를 거둘 수는 없다는 점이다. 투수가 흔들릴 때 야수의 좋은 수비 하나가 고비를 넘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야수가 실수로 공을 놓쳐도 투수가 평정심을 가지고 좋은 공을 던지면 실수가 묻힌다. 한 지붕 아래서 살을 맞댁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똑같은 악재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서로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짐을 나누어 가지자는 마음을 가지면 크고 작은 위기를 넘을 수 있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린다는 것도 야구와 인생의 공통점이다.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주눅이 들어 볼넷을 주거나 승부를 피하려고 하면 경기는 복잡하게 꼬인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으로 밀어 붙여야 상대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 남편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힘들어 할 때면 긍정적인 말로 용기를 북돋우려고 애쓴다.
때로는 정면 승부를 피하고 돌아서 가야 할 경우도 있다. 앞 타석에서 홈럼을 때린 강타자라면 거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만한 융통성은 있어야 더 큰 점수를 내 주지 않고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무조건 고집대로만 밀어붙이다가는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고의사구를 주는 기분으로 조금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남편과 나는 이직까지 현역선수로 뛰고 있지만 예상보다 일찍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할 변수가 닥칠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언제라도 밀려날 수 있는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해 버티고 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뛰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백업 선수로 밀려나고 벤치에 앉는 날이 더 많아질 때가 올 것이다. 비록 선수로서의 생명이 다하더라도 그간의 경험을 밑천 삼아 뒤에서 작은 보템이라도 된다면 밀려나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경기가 마지막 기로에 서 있다. 아쉽게 역전 홈런을 허용해 마지막 코너에 몰려 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긴 상태에서 배트를 정확히 맞춘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내 입도 같이 벌이진다. 끝날 때까지 결코 끝을 알수 없는, 이것이 마로 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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