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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아기야 울지마라 / 김갑순

아기야 울지마라 / 김갑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트랩을 오르는데, 젊은 백인 부부가 동양계 남자아기를 안고 앞서 오르고 있었다. 입양아를 데리고 가는 모습인 듯하였다. 아기는 백인 엄마에게 안겨 뒤를 따르는 나를 보고 벙긋벙긋 웃었다. 나도 까꿍! 하며 아기와 맞장구를 쳐주면서 엄마와 눈웃음을 나누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아기가 보채기 시작했다. 아기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가며 비상구 쪽에서 아기를 안고 서 있었다. 화장실 가는 길에 내가 아기를 어르니 나에게 두 팔을 벌리며 안겨왔다. 아이고! 어쩌나 마음이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8개월 된 남자아기는 백인 엄마 아빠의 낯섦과 갑갑한 비행기 안의 혼란스러움과 불안을 통째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이 먹먹하였다.

연신 울어대는 울음소리가 짠하고 또 짠하여 스튜어디스에게 내가 잠시 봐줘도 되겠는지 조심스럽게 문의해 보라고 말해보았다. 잠시 후 돌아온 답은 ‘No’ 그분들도 아기와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일 텐데 나의 오지랖을 나무라며 눈을 감았다. 비행 13시간 동안 엄마 아빠는 아기를 안고 비행기 안을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차라리 모르는 척, 무덤덤하게 잠이나 자자고 담요를 덮어쓰며 아가야! 얼른 적응하여 멋쟁이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하게 자라거라.’하며 마음을 모아 보내는 수밖에. ‘아가야! 울지마라라는 나의 속엣말이 파르르 떨리는 목젖 사이로 새어나왔다.

언젠가 미국 동부 쪽 코닝 유리박물관으로 가족여행을 할 때 동양계 여자아이가 우리를 살피고 귀를 기울이며 자꾸만 곁을 서성거렸다. 박물관을 다 돌도록 주변을 맴돌아서 내가 아이를 향해 웃어주며 말을 붙여 보려는데 우리아이들이 나를 돌려 세웠다.

엄마 미국에서 낯선 아이에게 접근하면 유괴범으로 오해받을 수 있어, 엄마.”

그 아이는 약간 나이든 백인 부부의 부르는 소리에 돌아서 가면서도 연신 우리 쪽을 뒤돌아보며 가는 모습이 입양된 아이임을 직감케 했다. 자신의 생김새와 닮은 우리가 많이 궁금하여 우리를 살피고 말소리에 귀 기울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도 자꾸만 그 아이 쪽으로 마음이 가고 있었다. 유괴범으로 오해를 받더라도 우리는 코리안이라고 말이라도 걸어줄 걸.

미국으로 입양되어 성장하면서 부모와 친구들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에 빠져 아픔을 많이 겪는다는 입양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아이들, 우리가 거둬야할 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나 또한 선뜻 실천을 못하였다.

응응 울음소리가 내 신경을 온통 지배하는 동안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비행기는 고도가 낮아지고 겨우 잠든 아기를 안고 있던 부부가 먼저 내리는 나를 보고 고맙다고 인사하며 밝게 웃어 주었다.

, 그 아기와 함께 행복 가득 하시기를.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할게요.”

마음 모아 인사하고 내렸지만 아기의 울음소리는 내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주 다니던 뉴욕 공항이 낯설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야하지? 방향감각도 잃어버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시야에 각양각색 얼굴들이 어지럽게 다가오며 잠깐 귀머거리, 벙어리가 된 내가 보였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 복잡한 공항엔 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차갑게 내리는 겨울비의 스산함이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아가야! 검은 땅에 철퍼덕 누워있는 저 빗물도 굳은 땅에 깊이깊이 스며들 것이다. 그곳 마른 씨앗에 씨눈 적시며 오는 봄에 새싹을 틔우는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가야, 울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