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자유라지만 / 김상립
근년에 들어와서 나는 목 병을 자주 앓는 편이다. 조금만 무리를 해도 목이 따갑고 잠기는 증세를 보인다. 잠시 찬 바람을 맞아도 금새 목 안쪽이 부어 오르고 침을 삼키기조차 거북해진다. 회의를 오래 하거나 전화를 많이 해도 이내 목이 칼칼하고 거북해짐을 느낀다. 금년 겨울에는 유달리 이런 증세가 심하여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계속하고 있지만 3주일이 지나도록 좀처럼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리 저리 수소문한 끝에 목을 잘 본다는 어떤 병원을 소개 받아 찾아 갔었다.
‘누구의 소개로 오게 된 아무개’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의사는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두 팔을 들더니 밑으로 내리는 시늉을 반복하며 ‘낮추시오, 더 낮추시오’ 하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크다는 뜻이었다. 내 딴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서 그 간의 사정을 설명하는 도중에도 계속 ‘더 작게’를 연발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소리도 크다고 하면 어떡합니까’ 하자 ‘평소에 본인이 잘 몰라서 그렇지 보통 사람에 비해 목소리가 좀 크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큰 소리로 말을 계속하거나 목을 적당히 쉬게 하지 않으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어쩌면 치료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엄포까지 놓는 것이었다.
그 다음 날, 다시 병원에 갔을 때 보다 작은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의사는 대뜸 ‘목에 힘을 빼세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어요’ 한다. 치료를 끝낸 후 그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회사에 가서도 가급적 말을 적게 하고, 큰 소리로 전화를 하거나 화를 내어 고함치는 일을 대폭 줄이도록 하세요. 또 얘기를 할 때도 정답게 소곤 소곤 말하듯 방법을 바꾸어 보세요’ 라고. 원래 성대(聲帶)는 수많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근육들이 계속 피곤해 있으면 저항력을 잃게 되어 목아 자주 아프게 된다는 상식도 덤으로 얹어 주었다.
병원 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내 목소리가 큰 것인가, 내 말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일까.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하고.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늘 반장을 맡았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은 물론 대학에서도 종합대학 학생위원장을 지냈다. 그러고 보니 학창 생활은 항상 급우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그게 원인이 될 수 있었을까? 또 모르지, 어렸을 때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말이지. 그러나 나의 진로가 정치쪽으로 가려다가 잊지 못할 은사를 한 분 만나 인생 길을 바꾸게 되지 않았던가. 비록 변방으로 밀려나 있지만 생명을 지키는 농업만은 젊은 이들이 꼭 담당 해주어야 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간곡한 말씀 따라 축산에 관련된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하였고, 당시에 막 새로 시작하던 배합사료 산업에 몸을 담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1차 산업이란 게 남들로부터 주목 받을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힘이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나를 밖으로 내세우기 보다 안으로 숨 죽이며 지내 온 세월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크고 목에 힘이 들어가 있다니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오늘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월급자 생활 10년 남짓을 제하고는 30년 이상을 줄곧 경영자 입장에서만 있어왔다. 나의 일상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의하고 지시하고 더러는 심하게 꾸짖고, 사원 교육을 위해 강의하며 보낸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여러 모임에 가서도 ‘한 말씀…’하고 권하면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횡설수설 하기를 얼마였던가. 결국 이런 생활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버릇으로 남아 늙어 막에 나를 괴롭히고 있단 말인가!
사실을 고백하자니 용기가 나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 평소에 지인들이나 동인(同人)들로부터 ‘목소리에 힘이 있어 건강미가 넘친 다든지, 항상 크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품이 매력적이다’ 라는 말을 들으면 은근히 싫지 않게 여긴 게 사실이다. 어쩌면 오히려 칭찬하는 말로 받아 들여 ‘내가 사리에 분명하며 박력 있게 처세하고 있다’고 믿은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내 목이 상할 정도의 심각한 생활을 하고 있는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의당 내가 내는 목소리가 정상이거나 조금 큰 것일 뿐, 목에 힘이 들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비록 지난 날의 내 생활에서 습관처럼 배어진 일이라 해도 이만 저만한 착각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겁다.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일으킨 착각이 어찌 이런 일 뿐이겠는가. 참 어렵다. 살아 갈수록 모를 것이 인생 살이다. 사람 누구나 고만고만한 착각의 연속선상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엮어 가겠지만, 착각의 두터운 장막이 걷힌 뒤에 오는 서글픔이나 허무감이 나이 따라 이렇게 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비록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회자되고는 있지만, 이런 자유는 누리지 않을 수록 좋을 것 같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버리고 떠나기 / 조광제 (0) | 2017.01.27 |
---|---|
[좋은수필]밥 / 강윤수 (0) | 2017.01.26 |
[좋은수필]선 채로 꾸는 꿈 / 노정숙 (0) | 2017.01.24 |
[좋은수필]나를 팔다 / 장수영 (0) | 2017.01.23 |
[좋은수필]마당눈 온 날 소묘 / 박월수 (0) | 2017.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