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아버지의 왼손 / 한복용

아버지의 왼손 / 한복용

 

 

 

염을 하신 아버지는 낯선 옷을 입고 편안히 누워계셨다. 엄마는 큰오빠의 부축을 받으며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말을 걸어 올 것 같은 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살가죽만 잡히는 뺨이 안쓰러운지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잘린 손가락이 시리다며 삼십여 년 동안 겨우내 장갑을 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밖에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석양을 등에 지고 홍조 띤 얼굴로 비틀거리며 대문을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용아, 여물 썰자, 하고 나를 부르셨다. 아버지와 나는 여물 썰기의 훌륭한 짝이었다. 여물 썰기에 이력이 난 나는 아버지의 손놀림만으로도 한 템포 쉬어가야 할 곳과 힘을 주어 작두를 눌러야 할 때를 알아서 척척 박자를 맞추었다. 작두에 풀을 먹이면서 아버지는 연신 콧노래를 불렀다. 나도 따라서 흥얼거렸다. 작두질이 빨라지면 얘야, 천천히 해라, 하시며 썰어진 풀을 고르게 펼쳐 놓았다. 늦여름 시원한 바람이 열려진 대문을 통해 불어왔다. 마당 가득 풀냄새가 싱그러웠다.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다.

"아빠하고 나아하고 마안든 꼬옻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목청을 돋우며 노래에 빠져들 즈음, !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작두질을 멈추고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는 어깨를 웅크린 채로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아부지 왜 그려? 다친 겨?"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고 잘려진 손가락 한 마디가 풀 속에서 팔딱거렸다. 감싼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 때 텅 빈 집안에는 나보다 세 살 어린 여동생만이 내 머리맡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날 밤 달이 휘영청 중천에 올랐을 때 치료를 끝낸 아버지가 웃으면서 집으로 들어오셨다. 보름달만큼 얼굴이 부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아버지의 잘려나간 왼손 두 번째 손가락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잘려진 손가락 한 마디는 내가 도망가면 도망간 자리까지 따라와 팔딱거렸다.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아버지는 막걸리를 드시지 않았다. 소에게 먹일 꼴도 큰오빠가 대신 베러 다녔다. 나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작두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쩌다가 여물을 썰자며 오빠들이 불렀지만 나는 그 말만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이후에도 아버지의 짧아진 손가락을 볼 때마다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엉엉 울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괜찮다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해, 찬바람이 불면서부터 아버지의 왼손은 두툼해졌다. 시린 손가락 끝을 달래기에는 장갑 하나로는 부족했던지 그 손가락에만 서너 겹 천을 덧대 장갑을 끼셨다. 올케가 방안에 넣어 준 질화로 앞에서도 겨우내 장갑 낀 손을 주무르셨다. 평소 아버지는 글씨를 쓰거나 수저를 드는 것만 오른손으로 하고 나머지 일은 다 왼손을 사용하셨다. 전체 손놀림이 부자연스러워졌음은 물론, 취미로 치던 장구 소리마저도 한동안 고르지 않았다. 창을 하거나 시조 읊는 일도 뜸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부지, 많이 아퍼? 하고 자꾸만 물었다. 아버지는 웃기만 하실 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오늘 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염습실에 평온하게 누워 계신다. 미동도 없다. 염꾼은 아버지의 머리에 생전의 중절모가 아닌 삼베 모자를 씌워드렸다. 염꾼의 표정이 슬픔을 표현하는 연극배우처럼 진지하다. 아버지의 발에 하얀 고무신 대신 파랑색 꽃신이 신겨졌다. 발등에 핀 커다란 목단꽃 위에 하얀 나비가 사뿐히 앉아 있다. 아버지는 지팡이도 없이 꽃신만 신고 어디를 가시려는 걸까. 어느새 삼베 장갑을 낀 아버지의 양손은 도포에 가려졌다. 나는 아버지께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입속에서 아버지 많이 아퍼? 라는 말만 깊은 슬픔과 함께 맴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