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석방 / 박경대
어물전을 지나치다 꼬물거리며 놀고 있는 새끼 거북이를 보았다. 물통에서 밖으로 나오려고 바동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가격도 비싼 것 같지 않아 두 마리를 샀다. 마침 옆에 그릇 가게가 있어 조그마한 어항도 하나 구입하였다.
집으로 오자마자 어항을 설치하고 물을 넣어 주었다. 물 위로 쉴 곳이 있어야 된다기에 큼직한 돌도 하나 넣어주고 만복이, 수복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그렇게 꾸며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만복이와 수복이는 키우기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어물전 주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홍역도 무사히 견디어내고 무럭무럭 자랐다. 어항에서 냄새가 날까 물도 자주 갈아주었고, 칫솔로 목욕도 시켜주면서 정성을 들였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어항부터 살펴볼 정도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틈이 날 때마다 사료 이외의 소시지도 잘라주고 아내 모르게 쇠고기를 다져주기도 하였다. 곁에 두고 지내다 보니 두 마리의 거북이는 그렇게 정이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거북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조금 키워서 혼자 살아갈 만하면 풀어주라고 하셨다. 일 년에 한두 번 사찰에서 하는 방생 법회에도 동참을 하시니 생명이 애처롭게 보이셨던 모양이다. ‘예! 그렇게 하지요’ 건성으로 대답을 하였으나 정이 들어가는 거북이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이 집에 온지 2년쯤 지나자 어항이 작게 보일 정도로 자라나서 조금만 움직여도 어항에 부딪히곤 하였다. 좁은 곳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동네 유리가게에 부탁하여 제법 큰 어항을 만들어 주었다.
집이 커진 것을 아는지 두 마리가 분주하게 어항 속을 돌아다니며 좋아 하는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동물사진 촬영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동물을 찍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주말만 되면 달성공원으로 달려갔었다. 어찌나 자주 드나들었던지 그 길은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 날도 평소와 같이 공원을 찾았다. 사슴우리를 출발하여 얼룩말, 공작 등을 차례대로 돌아보며 적당한 피사체를 찾아 다녔다. 코끼리우리를 지나면 항상 인기가 많은 원숭이우리가 있다. 역시 그곳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소풍을 나온 유치원아이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즐겁게 떠들며 놀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철조망 사이로 손을 내밀어 관람객에게 과자를 얻어먹고 있었고, 아이들은 과자를 줄 듯 말 듯하며 장난을 쳤다.
그 광경을 재미있게 보던 중 특이한 원숭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그 원숭이는 철망을 붙들고 있으면서 손을 내밀지 않고 내 눈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도 계속 나의 눈을 바라보자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아저씨가 잘 생겼어?”
“아이들이 시끄러워 싫어?”
그런 말을 해도 원숭이는 나의 눈만 쳐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보고 싶어?” 이렇게 중얼거리던 순간 갑자기 무엇으로 쿵하고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지은 죄도 없는 내가 왜 이곳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지?’ 원숭이의 대답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있을 때도 그 생각은 떠나지 않았다. ‘그 원숭이는 편안한 식사보다 광활한 자연을 뛰어다니는 것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그때 얼마 전 TV화면에서 보았던 숲 속을 거침없이 달리는 수많은 동물들이 떠올랐다.
다음날 아침, 만복이 와 수복이를 차에 싣고 금호강으로 갔다. 항상 자유스럽게 훨훨 날기를 원하는 내가 그들을 구속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였다. 또한 새로 만들었던 어항도 이제는 작은듯하니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어귀에 차를 세워두고 두 녀석과 아래로 내려섰다. 이별의 선물로 조금의 사료와 함께 그들을 강물에 넣어주었다. 녀석들은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이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다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정이 들어 코끝이 찡해왔으나 자유를 찾아가는 모습에 가슴 한 편이 뿌듯해져 옴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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