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리처럼 / 강천
실개천이 환하게 웃고 있다. 저녁나절, 들판을 가로지르는 작은 개천이 온통 꽃 천지가 되어 웃음으로 넘쳐나고 있다,
고마리는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작은 도랑이나 냇가에서 주로 자라지만, 물이 있는 곳이라면 하수구라도 마다치 않는다. 제가 살 만하다 싶으면 어디든 터를 잡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간다. 길섶에서 태어난 녀석은 발길에 짓밟히고, 냇가에서 자리한 무리는 물길에 휩쓸리면서도 굳세게 일어선다. 어찌나 번식력이 왕성한지 여름이 되면 개울이 완전히 고마리 천지로 변해 버린다. 게다가 나를 건드리지도 말라는 듯, 온통 가시로 무장하고 있어 스치기만 해도 따끔거린다. 이래저래 쓸모도 마땅찮고 물길만 막으니, 제발 그만 번지라는 뜻으로 '고만이'로 부르기도 한다. 고향에서는 돼지우리에나 넣는 풀이라고 해서 '돼지풀'이라고도 불렀다. 말 그대로 천덕꾸러기인 셈이다.
무리로 뭉쳐서 살아가는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욱 가관이다. 위에서 떠밀려 내려온 먼지를 풀풀 날리기도 한다. 걸레 조각이며 빈 깡통, 비닐봉지까지 제 속에다 잔뜩 감춰놓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거머리, 지렁이, 심지어 죽은 동물의 사체까지 껴안고 썩은 냄새를 풍기면서도 천연덕스럽게 내색조차 않는다. 치부를 숨기려는 것인지 가슴속에 꼭꼭 숨겨 놓고, 가식적 웃음을 달고 사는 나 역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유래야 어찌 되었거나 한쪽이 있으면 그에 대비되는 다른 쪽도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예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험담을 늘어놓았지만, 그 뒷면은 전혀 다르다. 이 천덕구니가 알고 보면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무성한 잎 아래로 드리워진 그늘은 물고기들의 쉼터나 은신처가 되어준다. 하수구나 축산농장의 오염된 물은 고마리 무리를 지나면서 말끔히 정화되어 깨끗한 물이 된다. 납이나 구리 등 중금속의 제거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니 천연 정수기인 셈이다. 이런 능력을 알아보고 '물을 깨끗하게 해주는 고마운 풀'이라는 데서 '고마리'라는 이름이 유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린 시절, 장맛비가 그친 뒤 냇가는 우리들의 단골 놀이터였다. 대소쿠리를 가장자리에 받히고 돼지풀을 질근질근 발로 밟아 댄다. 풀숲에 숨어있는 고기들을 내모는 것이다. 서너 번 이 구석 저 구석을 짓밟은 다음 소쿠리를 건지기만 하면 손가락만 한 미꾸라지부터 송사리, 붕어, 개구리까지 펄떡거리며 올라왔다. 흙탕물이 가라앉은 뒤 매끈하게 드러누운 풀 무더기는 개구쟁이들의 푹신한 목욕탕이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그 속에 숨어 있던 유리 조각을 잘못 밟아 피를 철철 흘렸던 추억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아무리 하찮은 식물일지라도 일생에 한 번은 그 존재감이 뚜렷이 도드라지는 때가 있다. 어떤 식물은 단풍이 일 때 색색으로 고운 모습을 드러내고, 또 어떤 나무는 먹음직한 열매를 맺어 자기를 내세운다. 그래도 대부분 나무와 풀들은 꽃을 피울 때가 가장 확연히 빛난다. 산벚나무 꽃이 피면 우리 산에 벚나무가 저렇게 많았나 싶기도 하고, 얼레지가 꽃을 피우면 온 계곡이 얼레지 꽃밭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꽃 잔치도 생의 마지막 본분을 다하고자 불꽃처럼 제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세대를 이어갈 절체절명의 명제이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 아니겠는가.
고마리는 감당하기조차 버거운 짐 덩이들을 제 몸으로 삭이며 살아간다. 무슨 거창한 명분이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쓰레기더미에서 우러나는 구정물을 제 촉수로 핥고 핥아 배를 채운다. 너덜거리는 비닐조각을 운명처럼 보듬어 안고 인내하며 살아간다. 아무리 잘나고 완벽한 사람일지라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허물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 풀 무리처럼 그저 제 속에서 삭이고 제 혼자 걸러내면서 어루만지는 것이리라.
연꽃이 사랑받는 것은 진흙탕 속에서 자라지만, 티 없이 맑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보자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고마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눈총 받고 물길에 휩쓸리는 거친 삶을 꿋꿋이 살아내었기에 지금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품고 사는 온갖 고민과 회의도 안으로 거두어 삭이다 보면, 언젠가느 ㄴ털어버릴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이 여린 풀 한 포기가 구정물 속에서 성장의 자양분을 건져내듯, 역경과 질곡이 어쩌면 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영양소가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거친 삶을 살아온 고마리의 연분홍 꽃잎이 가을 햇살에 반짝인다. 비록 험난하고 지난한 길이었다 하더라도, 온 힘을 다한 뒤에 피워낸 꽃 한 송이가 이리도 아름다워 보이는 삶, 그렇게 살고 싶다. 고마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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