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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서푼짜리 이웃 / 윤경화

서푼짜리 이웃 / 윤경화


 

 

지난 초여름 퇴근길에 마을로 접어들면서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내가 친구로 생각하는 녀석들의 생활 터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침과는 다르게 마을길이 꽃길로 정비되어 있었다. 짧지 않은 거리에 제비꽃을 정성들여 심어놓았다. 초여름 비가 살짝 내리는 날에 주민들이 손을 모았던 모양이다. 산마을로 한두 집 모여들기 시작한지가 십여 년이나 되다 보니 세대 수가 꽤 늘어났다. 대게 도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라 하절기가 오면 도로변의 풀을 베는 일이 큰일이 되었다. 보기에도 좋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찾은 것이 생명력도 강하고 해충 피해도 적은 붓꽃 심기였던 것이다.

주민들은 모두 만족해하는 듯 만날 때마다 깨끗하고 예쁘지 않느냐고 묻는다. 동참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해서 내 생각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예쁘다고 맞장구만 쳤다. 속마음과 다른 대답을 하자니 용기도 없는 이중적인 사람 같아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것처럼 불편했다.

사실 한적한 그 마을길은 내가 저녁마다 즐기는 산책로다. 출퇴근 시간에 자동차로 날아가듯 휙 지나가는 길을 저녁이면 몇 차례씩 오르내리면서 길섶에 거처를 둔 뭇 생명과 기꺼운 시간을 보낸다. 천천히 걸으면 호두나무와 왕벚나무가 우거진 숲이 눈에 들어온다. 생강나무 꽃이 지고 연두 잎이 사이를 메우는 왕성한 생명의 기상을 보는가 하면 단풍으로 온몸을 달구는 뜨거운 삶도 본다.

나는 자연의 소리에 이끌려 어느새 오감을 열어놓고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감탄한다. 무질서 속에 풀과 곤충이 뒤엉켜 사는 길섶 같지만 그들만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식물뿐만 아니라. 썩은 나뭇잎과 배설물까지도 모두 생명의 원천이다.

곤충들은 대게 먹거리를 따라 사는 것이 정해지며 평생 동안 특정한 식물만 먹는 경우가 많아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하절기에 야생초 속에 껑충한 연두색 망사 그물 모양의 소리쟁이를 볼 수 있다 좀남색잎벌레는 숙식은 물론 출산과 육아까지 일생 대부분을 소리쟁이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모든 곤충이 소리쟁이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이 종은 사라지고 종래는 생태계가 어그러지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소리쟁이는 한철을 지나고 나면 멀쩡한 모습으로 꽃까지 피우고 있다. 이는 그들의 놀라운 공존의 방식 때문이다.

키가 작은 동이나물꽃과 제비꽃, 애기똥풀과 민들레 등은 이른 봄부터 햇빛을 더 받으려고 부지런을 떤다. 녀석들이 잎을 틔워 땅 위로 색색의 꽃을 밀어 올리면 앙증맞은 애벌레들도 따라붙어 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해가 더할수록 길섶은 그들의 풍성한 밥상이 되고 서식처가 되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순환의 질서를 이루어간다.

내가 그들 속에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때로는 밤이 이슥하도록 손전등불을 들이대며 녀석들과 시간을 보낸다. 알아갈수록 매력을 더하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자연계의 내밀한 신천지를 조금씩 발견하는 즐거움 또한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나는 마을길 옆에 거처를 두고 있는 생명체들을 소중한 친구로 여기고 있다.

낮 동안 아랫동네에서 눈치껏 밀당을 하느라 무시로 궤도 이탈을 하며 허둥댄다. 밤에 거처로 돌아오면 어긋난 하루를 정리하려는 듯 산책을 한다. 허리를 굽혀 녀석들이 모여 사는 양을 보면 내 삶의 얼룩이 보인다. 이때 나는 자연계의 생명체 앞에서 구겨진 일상의 일부분을 펴고, 빽빽한 감정의 흐름을 유연하게 하기를 따라하면서 충만감을 맛본다. 인생에서 드물게 귀한 시간이다.

인가가 드문 마을의 밤은 제각각의 소리들로 채워진다. 고라니 소리, 꽃이 놀라는 소리, 별이내리는 소리, 이슬이 맺히는 소리, 두더지가 마실 가는 소리, 개울물에 낙엽이 앉는 소리. 이들은 건강한 생명의 소리다. 땅을 살아 숨 쉬게 하고 열기와 냉기를 다스려 지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소리기도 하다.

이러한 곳에 내가 들어온 것처럼 이웃도 하나 둘 모여들면서 자연의 영토가 날아가고, 식물의 터전이 줄어들고, 고라니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름에 선풍기를 잊고 살다 이제 선풍기가 주요 생활필수품이 된 것은 산마을 풍경이 바뀌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사람들은 기온이 올라갈수록 걱정은 하면서도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 우월적 인식은 여전하다.

서서히 이루어지는 변화는 사람을 무디게 하나 보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야 내 친구들의 밥상은 물론 거처까지 치워버리고 입맛에 맞는 길을 가꾸었다. 물론 새로 들어온 식구들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쫓겨난 많은 생명체가 연결되어 있던 생태계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나는 서푼짜리 집에 천 냥짜리 이웃을 꿈꾸면서 이곳에 들어왔다. 개기제(開基祭)를 올릴 때도 자연 앞에서 다짐을 했다. 그들의 영토 한쪽 귀퉁이만 허락해 주면 좋은 이웃이 되겠노라고. 그러나 지금은 서푼짜리 이웃이라 하기에도 민망하리만큼 마을의 모습이 바뀌었다. 나보다 먼저 시대를 닮아가고 있는 주변 풍경 앞에 서니 유구무언이 바로 내 입장을 두고 쓰는 말 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