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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그 해 겨울 / 이필선

그 해 겨울 / 이필선

 

 

 

학창시절, 우리 집 작은방 벽에는 시 한 편이 걸려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리라.’시화는 나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해 겨울, 담임선생님은 다음날에 있을 학력고사장 안내와 함께 주의사항을 나열했다. 나는 태연한 척 등을 돌려 친구에게 딴죽을 걸었다. 뒤에 앉은 친구는 선생님의 안내사항은 아랑곳 않고 전수학교의 화려한 홍보 전단에 눈길을 모으고 있었다. 일반고교 진학을 거부하고 전수학교를 선택한 그 친구와 달리,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나는 처량했다. 다시 몸을 돌려 정면을 향해 앉았다. 옆을 봐도 앞을 봐도 친구들은 목을 빼서 선생님 말씀을 듣느라 몰두한 모습이 섭섭했다.

그 자리에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방을 들고 슬그머니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양초로 닦아 반질거리는 차가운 복도를 걸어 나오며 그렁대던 눈물을 교복의 소매로 훔쳐 닦았다. 복도 끝에서 실내화를 벗어 속이 헐렁한 가방에 넣고 허리를 세웠다. 맞은편 정구장에서 모래바람이 훅 불어왔다. 날이 추웠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시렸다. 가슴은 내장 빠진 오징어인 양 텅 비어 버린 듯했다. 정구장 옆, 나목 사이의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며 자학을 하고 싶었다, 어디로든 도망을 가 버리고 싶었다, 그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막상 교정을 벗어났지만, 딱히 갈 데가 없었다. 학교 아래 다릿걸 빵집에는 익숙한 데가 아니라 불쑥 들어갈 용기도 나지 않았다. 한참을 서성이다 미닫이문을 빼꼼히 열었다. 찐빵 솥에는 김이 풀풀 나고 있었다. 교실에서 빠져나와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열었던 문을 도로 닫았다. 그저 화가 나고 불안할 뿐이었다. 쿨렁쿨렁 목울대가 자꾸 떨리는듯했다.

혼자서 다니기에는 무서운 시오 리 산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돌아온 집에는 적막만 차 있었다. 작은방에 들어가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라디오 음량을 최고로 높였다. 온기가 사라진 방에 솜이불을 덮어쓰고는 펑펑 울었다. 종내에는 저녁도 먹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울기만 했다.

이튿날, 학력고사가 있는 날이라는 아침 뉴스를 듣기 바쁘게 라디오를 밀쳐 버렸다. 옷장과 서랍을 뒤졌다. 같은 신세가 된 친구들과 함께 비뚤어질 작정이라도 한 듯 나기기로 작당을 해 뒀던 터였다. 이른 봄에 아버지가 사 주신 철 지난 나팔바지를 찾아 입고 학교 밑, 읍 소재지로 나갔다.

삐걱대는 나무계단을 걸어 이 층의 사진관에 올라갔다. 카메라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나무문을 열고 사진관 아저씨를 본 순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아 진열장 유리 밑에 깔아 놓은 본보기 사진으로 얼른 눈길을 옮겼다. 사진관 아저씨의 동생인 친구 S도 학력고사장으로 가고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다. 유리 밑에 여덟 명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내가 웃을 듯 말듯 나를 보고 있었다. 하얀 옷깃을 단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찍은 잘 나온 사진이었다. 사진 속 친구들이 내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것 같았다. 사진 위에 기어이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몇몇 친구들과 나는 이미 삐뚤어진 아이로 알아 달란 듯, 건들대듯 태연하게 카메라 작동법을 배웠다. 사진관 창문을 열고 반대편의 전봇대 기둥에 초점을 맞춰서 셔터만 누르면 된다고 했다. 흐린 초점은 내 눈물인양 파문이 져서 렌즈에 가 어룽댔다. 초점을 맞춘 상태로 카메라를 내밀어 검사를 받았다. 금방 전봇대가 하나로 맞춰지는 나와는 달리, 다른 친구들은 여러 번 반복했지만 잘 안 된다고 푸념을 했다. 사진관 아저씨는 나더러 초점을 잘 맞춘다며 카메라 끈을 어깨에 걸쳐 줬다. 쑥스러워 카메라 끈을 둘둘 말아 쥐고는 계단을 내려왔다.

대송등대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고 소문난 지금의 간절곶으로 향했다. 버스는 덜컹대며 비포장 길을 달렸다, 동행한 친구들의 수다를 멀리하고 거리를 두고 앉아 고개를 외로 돌렸다. 바다를 향해 가는 한겨울의 들판은 짐승의 골격 같은 두렁만이 구불구불 누워 있었다. 자꾸 시야가 흐려졌다. 더는 울지 않으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 먼저 바다를 향해 탄성을 질렀다, 언제 우울했느냐는 듯 그 탄성에 내 소리를 포개며 달렸다. 등대 아래 언덕에서 해풍을 다 껴안듯 맞서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친구가 들고 간 커다란 카세트 음악에 맞춰 나팔바지를 흔들었다.

둘둘 말고 간 긴 털목도리를 팔목에 걸어 빙빙 휘둘렀다. one way ticket을 외치고 Y·M·C·A를 목청 높여 따라 불렀다. 끽끽대며 튀는 카세트테이프 소리마저 내 마음을 닮아 있었다. 해풍으로 추위에 언 곱은 손가락으로 원망하듯 하늘을 향해 찔러 댔다. 삼각스텝을 밟느라 고개를 푹 숙이고 마른 잔디를 비벼댔다. 온통 삐뚤어지기 위한 타락의 몸짓을 증명하듯 격하게 몸을 흔들었다.

누군가 가난은 불편할 뿐, 죄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적어도 다 자라지 못한 자식에게는 부모가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큰 죄이고 악이라고 외쳐대고 싶었다. 자식 눈에서 폭우 같은 수액을 빼내게 하는, 처절하게 망가져 버릴 만큼 몹쓸 에너지를 착취하는이라고, 우겨대고 싶었다.

겨울 해는 점점 제 갈 곳으로 기울고 있었다. 높아진 파도는 바닷바람이 더 세게 불고 있다는 증거였다. 키 큰 해송군락 뒤로 해가 숨어 버릴 즈음,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한댓바람 묻은 차체에 닿은 왼쪽 어깨가 시렸다, 털목도리의 끝을 접어 왼쪽 어깨 밑에 괴고 내다본 창밖의 풍경은 고즈넉했다. 버스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덜컹대는 비포장 길을 따라 노랫소리마저 방황하는 내 마음인 양 흐느적거렸다.

방랑자여 방랑자여 기타를 울려라 방랑자여 방랑자여 노래를 불러라.’낭랑한 가수의 목소리는 방랑자의 심장을 툭툭 건드리며 서러움을 더해 줬다. 서러움에 북받쳐 밀리듯 차를 탔던 읍내에 내렸다. 이미 어두워진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을 서성댔다.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 밭에 겨울 억새가 일렁이듯 그해 겨울의 하루는 길고도 을씨년스러웠다.

모든 것을 부모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여느 부모 못지않게 섬세하고도 자상한 부모였다. 그래도 그날 내가 어디로 휘돌고, 얼마나 더 방황했는지를 다 알지 못했다. 이후로도 그 자식이 어딜 헤매고 다니고, 얼마만큼 분노하며 살았는지는 모른다. 심지어 수많은 후회와 포기를 되풀이하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며 살았는지는 알 턱이 없다.

아는지 모르는지 차별 없는 세월은 흘렀고 나는 자식에게 내가 겪은 아픔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살았다. 하지만 내 자식인들 딱히 공부를 못 하게해서가 아니더라도 부모를 원망한 적이 없겠는가,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한 나를 탓하고 원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또한 세월이 지나면 슬픔만이 아닌 그리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바람이 차다, 그해 겨울을 닮은 바람을 껴안고 서서 저 세상 가신 부모 편에 서 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