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괘 / 이필선
얼굴만 보고 남의 인생을 다 알아맞힌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밥을 먹으며 떠들던 수다로는 도저히 양이 덜 차서 끝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왔다. 다섯 명을 실은 차는 그 유명하다는 관상쟁이 점집을 향해갔다. 빛깔 좋은 가을 들판으로부터 불어오는 간들바람은 들뜬 기분을 한층 더 높이 띄웠다. 상기되어 쏟아내던 수다는 달리던 차를 붕붕 띄워 단박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했다.
도시를 벗어난 시골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일반 아파트와의 차이는 덥지 않은 날씨에도 활짝 열어 놓은 현관에 즐비한 신발이 말해줬다. 들어서자마자 본 거실풍경이 산만했다. 커다란 나무 함지박을 사이에 두고 앉은 중년의 여자 셋이 수선스런 풍경의 주체였다. 세 여자 모두 물 날린 회색 절옷을 입고 있었다. 그중 한 여자의 길게 생긴 눈을 보았다. 얼굴만 보고 점을 쳐 준다는 관상쟁이는 아마도 저 여자가 틀림없을 것이라고 내가 먼저 점을 쳤다.
어질러진 거실에 우리도 엉덩이를 내빼고 앉았다, 이어서 점집을 안내한 친구가 두 개의 방에 순서대로 들어가 절을 하고 성의껏 시줏돈을 놓으면 된다 했다. 일행 중에 세 번째로 들어간 나도 절을 했다. 몇 번의 절을 해야 할지 몰라 삼보 귀의를 생각하며 삼배를 하고 나왔다.
늘 그렇듯 절을 할 때 첫 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러다 이왕이면 뭔가 간절한 마음이어야 할 것 같아 다시 자세를 갖춘다. 바람은 언제나 한 가지다. 지금처럼 마음이 변치 않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내가 안고 사는 크고 작은 아픔들은 누구나 갖고 사는 것일 터, 그마저 없애 달라면 과욕으로 알고 해결책을 주실 그분이 도리어 화를 줄 것만 같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되던 굳건하게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게 해 달라는 편이다.
큰 아이가 수능을 앞둔 고3 때였다. 수험생의 어미로서 바삐 절을 다니고 교회에 가서 두 손을 모으는 이웃 지기들을 보게 됐다.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 나도 날을 잡아 마음이 가자는 대로 자장암 법당을 찾았다. 칼 돌이 삐죽이 나온 법당에서 몇 번인지 모르게 절을 했다. 절을 하며 내가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내 아이의 수능성적을 위해 평소보다 더 잘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다시 참회의 절을 하듯 무릎을 꿇었다, 늘 하던 대로 할 수 있도록 평정심을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불안한 마음을 거둬 가기를 바라는 겸허한 심정으로 법당 마룻바닥에 엎드렸다. 소원이란 모름지기 타인을 빗대지 않는,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눈이 긴 여자는 거실 벽에 걸어 뒀던 바지와 같은 색깔의 회색 조끼를 껴입었다. 플라스틱 소재의 초록색과 노란색의 긴 염주 두 줄을 목에 걸고 양팔에도 꼈다. 방에 다 들어가 절을 하는가 싶더니 어느 방을 택해 앉았는지 나오지 않았다. 일행 중 한 명이 주춤거리며 여자가 있는 방을 찾아 들어갔다. 거실에는 고추 함지박을 끼고 앉은 두 여자의 떠드는 소리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표출되지 못한 짜증은 점쟁이한테로 쏟아졌다, 이 산만한 가운데 무슨 수로 고요한 마음을 찾아내서 남의 인생을 점쳐준다는 것일까 싶었다. 재미로 달려간 것이지만 뭔지 모를 기대감이 높았던 까닭일 것이다.
잠시 후, 함께 갔던 두 친구가 점쟁이와 만나고 나왔다. 뒤에 친구는 묘한 표정으로 손나발을 만들어 대기하고 있는 일행에게 귓속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뒤돌아보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도 들어갔다.
서쪽으로 난 창을 등지고 앉은 그녀의 모습은 가을의 서향 빛을 안고 앉은 내게 형체만 보일 뿐, 이목구비조차 보이지 않았다. 성화에서나 본 예수의 등 뒤로부터 비친 빛을 흉내 낼 자리로는 괜찮다 싶은 느닷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늬바람이 희끗희끗한 여자의 귀밑머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어린이 장난감 같은 염주를 두 팔에 걸쳐서 늘어뜨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여자는‘흠흠’대며 그녀가 모신다는 할아버지를 모셔오는지 중간 중간‘예 예’하며 대답을 하고는 했다. 자꾸만 그녀의 행동이 의심스러워 내심 갸우뚱하고 있을 때였다.
대뜸 눈을 뜨고는 내 얼굴을 보더니 남쪽에 누가 있느냐며 돌아가신지 오래된 친정엄마가 도와줘서 무난히 산다고 말했다. 점쟁이의 그 한 마디로 좀 전에 의심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마치 그녀를 위하기라도 하듯이 남쪽에 친정과 시댁이 있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보살집도 절도 다니지 말라 했다, 호사다마라고 공연히 편한 것에 마가 끼게 되고 누군가 상처를 주게 돼 있다고도 했다. 게다가 양손이 그득하고 온 가족이 무사 무탈하다 했다. 기분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그래도 나보다 먼저 들어갔다가 오랫동안 있다 나온 두 친구와 달리 그새 되돌아 그 방을 나온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다 싶은 본전 생각이 슬며시 났다. 좀 더 구체적인 말을 듣고 싶은 마음으로 얼른 나오지 않고 뭉그적댔다. 점쟁이는 나의 욕구불만을 알아차렸는지 흠흠 거리며 그 여자가 모신다는 할아버지와의 교접을 더 시도했다.
나는 며칠 전에 외손자를 낳은 딸의 사주도 봐 달라고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더라는 것까지를 가르쳐 주고 말았다. 힌트를 얻은 보살은 또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고 했다. 그것으로 인생의 정답인양 기분이 달떠서 나왔다.
굳이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살아야 할 삶 중에는 숱한 일들이 다양하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스스로 점칠 줄 안다. 그 점집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 중 찰나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총체적 인생을 다 본 것인 양 스스로 점을 치고 온 것이 되고 말았다.
잠깐 꿈속인 듯 어렴풋이 내 인생을 남에게 맡겨서 듣고 오기는 했지만 미래의 인생이 궁금하다면 현생을 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혜안을 지니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앞날 또한 여태 살았던 삶의 색깔과 무에 그리 다를 것이 있으랴. 설령 다르다 한들 지금보다 전혀 나을 것 없다면 어쩌겠는가. 여태 산 것보다 더 험난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허망하며 어떻게 감당할 일일까 싶다. 내 인생의 주체는 생을 다할 때까지‘내’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애면글면 허방을 딛듯 미지에 시간에 휘청거리며 마중 나가 미리 염려하며 살 까닭이 없다.
함께 갔던 우리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각자의 사연이 담긴 문제지를 앞에 놓고 정답을 매기듯 웃음소리로 채점했다. 결론은 비슷한 내용의 중복적인 사용을 남발한 점쟁이라는 것이었다. 어디 가서 수다 내기 한턱거리로는 충분할 이야깃거리를 들고 온 것 외에 특별할 것 없는 점괘였다며 채점을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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