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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산, 해동(解凍)하다 / 김경

, 해동(解凍)하다 / 김경

 

 

 

그날은 설 명절 앞두고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집 앞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이 추운 날 무슨 청승인가 싶어 내키지 않던 걸음이 산 입구에 있는 여러 대의 경찰차를 발견하곤 더욱 위축이 되었다. 필시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한참을 걸어 올라가도 산 속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고 간간이 비추이는 햇살과 쨍한 공기만이 우리를 맞았다. 의아하던 마음은 금방 사라지고 친구와 나는 수다삼매경에 빠져 꽁꽁 언 길을 오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 시간 쯤 올라가자 쉼터가 나타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청소년 여러 명과 경찰관, 구급대원 등이 섞여 있었다.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간식거리며 뜨거운 물을 꺼내 한 야윈 소년에게 먹이고 있는 중이었다. 손이며 얼굴이 발갛게 언 아이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경찰관의 말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가 이상한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병석에 있는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소년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외로웠던가 보았다. 추위와는 또 다른 차가움이 명치께로 스며들어왔다.

무엇이 소년을 좌절케 하였기에 얼음장 같은 날씨에 그 흔한 패딩 점퍼도 없이 헤매고 있었을까. 학교에 있어야 할 학생이 교복차림으로 이 추운 겨울날 산속을 배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을 살만했다. 때마침 등산을 온 청년들에게 발견되었기에 망정이지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청년들의 기지가 빛났던 것도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어쩌면 말없이 모두를 품는 산, 그 거대한 포용이 어리석은 결심을 모른 체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빽빽한 아파트 숲 어딘가에 소리 없이 살아가고 있는 외로운 삶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나 않은지 부끄러워진다. 지금은 동장군의 심술에 꽁 꽁 얼어붙었을지라도 머지않아 봄이 오고 서서히 해동을 시작하게 될 산처럼 각자의 마음에 들어앉은 얼음 같은 역경도 술술 녹아내렸으면 좋겠다.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었든 대중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아야했던 소년의 놀란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산 속에서 방황했던 아이가 훗날 아프지 않게 오늘을 기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