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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누수 / 박경대

누수 / 박경대


 

 

 

남자가 흘리지 않아야 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가끔 보는 글이다. 미소가 머금어지는 이 글의 출처는 분명치 않으나 분명 위트가 넘치는 문장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운을 떼지만 숨어있는 뜻은 화장실 바닥에 소변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리라. 허나 조심해서 된다면 염려할 것이 없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흐르는 누수가 문제 것이다.

요실금이 중년의 여성들에게 많다지만 비뇨기과 의사인 친구의 말로는 남자들도 있다고 한다. 더구나 나이가 많아지면 아랫동네뿐만 아니라 윗동네의 누수 또한 많아진다고 한다. 소변이야 실수를 하여도 내의를 매일 갈아입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남자로서 창피스러운 일이다.

눈물이 나오는 까닭도 다양하다. 찬바람에 눈이 시려도 나고, 양파를 손질할 때도 흘린다. 또한 눈을 다쳐도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그런 눈물은 눈을 보호하는 방편이다. 작전상 흘리는 눈물도 있는데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를 쓰면서 우는 것을 들 수있다. 이처럼 저절로 나오는 것과 일부러 흘리는 것을 운다고 할 수는 없다.

감정이 묻어있는 눈물에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가 흘리듯 기쁨의 눈물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파서 우는 것이다. 몸이 아파 울고, 마음이 아파 운다. 어릴 때는 대개 몸이 아파서 울지만 나이가 들면 마음이 아파서 우는 경우가 많아진다.

남자는 평생 세 번을 운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태어날 때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라고 한다. 그만큼 남자는 함부로 울면 안 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울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유년 시절 매를 맞거나 싸움을 하여도 그랬고, 성인이 되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역시 식솔 앞에서 강건한 모습을 보이려고 울지 않았다. 또한 방황했던 시절 큰 어려움을 겪을 때도 눈물을 삼키며 울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곤 하였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전의 아버지는 무척 강인했던 분이셨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불의와는 타협이 없는 성격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면 늘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손재주도 좋아 겨울이면 친구들보다 훨씬 멋진 썰매도 만들어 주셨고 고장 난 것은 뭐든 고칠 수 있었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영웅이셨다. 그런 아버지의 뜻밖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의 쌍둥이 동생이셨던 숙부님의 장례를 치른 날 밤이었다. 안방에서 들려온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깨여 문틈으로 보았더니 소주병을 앞에 두고 아버지가 울고 계셨다. 평소 아버지가 운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표정 없이 곡만 하시던 분이였기에 나의 충격은 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풍파를 굳건히 막아주던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당장 우리 집이 어떻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때 나는 어른이 되면 가족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우시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으나 내가 결혼을 한 뒤 많이 달라지셨다. 건강이 좋지 않게 되었고 왕성했던 자신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삿날이면 아버지의 얼굴은 괜히 슬프게 보였다. 가끔씩 들려오는 친척의 부음에도 방에 들어가시어 우시는 것 같았다. 자신을 위하여 어떤 취미나 즐거움도 가지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건강을 잃으시고 삶에 허무를 느끼신 것 같았다. 아버지는 환갑을 지난 몇 년 후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도 이제 눈물을 보이시던 예전 아버지의 나이와 비슷해졌나보다. 가끔은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서 바람을 맞으며 목 놓아 울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한다.

지난 해 부모님 산소에 벌초를 하던 중 괜스레 눈물이 나오더니 며칠 전에는 드라마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아이들을 분가시키고 난 뒤부터는 자꾸 허무한 생각이 든다. 말로만 듣던 우울증인지 아니면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부분 느낀다는 장래의 두려움 때문일까. 어떻든 예전보다 마음이 여려진 것은 확실하다.

보통의 성인 남성들은 일 년에 열 번 정도 운다는 흥미로운 통계가 발표되었다. 물론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횟수가 놀라웠다. 중년으로 넘어가면 호르몬 작용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니 요즘 들어 가끔 울적했던 이유가 마음이 여려진 탓만은 아닌 것 같아 위안이 된다.

퇴근을 하면서 보니 사무실 옆 골목이 파헤쳐져 있었다. 수도관을 교체하는 중이었다. 흙더미 위에 서서 구덩이 속을 이리저리 살피던 아주머니가 연신 투덜거렸다. 그동안 물이 새는 바람에 수압이 낮아 애를 먹었다고 하였다. 풀어둔 파이프는 벌겋게 녹이 쓸어있었고 이음새 부분은 허물어져 있었다.

그래 저렇게 단단한 쇠 파이프도 세월 앞엔 그럴 진데 사람인들 오죽할까. 사람의 몸도 오래 쓰다보면 누수가 되는 것이 당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