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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바리데기의 길 / 김성복

바리데기의 길 / 김성복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했다. 저 세상의 천당과 극락도 이승만 못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가기를 주저하는 저승을 마음대로 오가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무조신(巫祖神) 바리데기다. 바리데기는 영혼을 인도하는 굿을 주재하신다.

원래 바리데기는 죽은 목숨이었다.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그의 아비인 오구대왕마마의 버림을 받은 말순이가 바리공덕 할멈의 도움으로 바리공주(鉢里公主 또는 捨姬公主)가 되어 바리데기로 다시 태어난다. 석가세존의 도움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바리데기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마음대로 오가는 것이다.

나의 아명(兒名)공동무지’(공동묘지)였다. 어린 것이 명()만 달려 있을 뿐 언제 뒷산에 애장으로 묻힐지 모를 병골이었다. 그 시절에는 뒷산에는 애 무덤이 많았으니 도처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나도 뒷골에 묻힐 목숨이기에 할머니는 듣기에도 끔직한 아명을 지었으니 그 이름이 공동무지.

개똥이란 천한 이름을 붙이면 귀하게 되고 바우라 부르면 튼실하게 자라고 공동무지라면 병골이라도 죽지 않고 명이 길어진다는 할머니의 철석같은 믿음 때문에 나는 속절없이 공동무지가 되었다. ‘공동무지라는 아명이면 공동묘지 옆에 널려 있는 애 무덤으로 갈 팔자를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나를 살린 것은 아명 공동무지, 어린 내가 저승으로 가지 않은 것은 공동무지의 출입을 관장하는 바리데기의 배려 때문이다. 내가 죽지 않을 만큼 컸을 때 공동무지를 면하고 할머니는 백이(이름 끝 자가 인 경우 백이라 부름)’라고 불렀다. 병약했던 어린 공동무지의 팔자도 몽달귀신을 면하고도 이만큼 살았으니 괜찮은 팔자다.

그런 공동무지가 일흔이 넘어서 염치없이 다시 바리데기를 찾는다. 이제 백 살까지 살 것은 없지만 죽어 지옥이나 연옥으로 데리고 가지 말라는 소원을 바리데기에게 빈다. 다만 바리데기에게 잘 말해서 좋은 곳으로만 간다면 여한이 없겠다.

그가 인도하는 곳이면 천당이면 좋고 설령 지옥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이승에서 이룬 업보에 따라 가는 곳이 정해지는 것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이승에서 그리 몹쓸 잘못 저지르지 않았으니 설마 염라지옥같은 곳에야 인도 하겠나.

하느님은 죽은 자에게도 은총을 베풀어 불쌍한 영혼을 구제하시니 나도 얼마만큼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니 나를 무간지옥에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 또 잘하면 바리데기의 영검이나 부처님의 자비로 죽어서도 다시 사람으로 환생할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어 자손에 대한 복은 없지 않건만 어쩌다 두 아들은 딸만 나으니 불라 국왕 오구마마마냥 손자 보기에 탐을 낸다. 그래서 벽장 안에 고이 모셔둔 조상님의 서보(書譜)와 해마다 모시는 봉제사(奉祭祀)를 누구에게 물려주며 봉산(蓬山)에 써둔 선대 묘소를 누가 벌초를 할까 근심한다. 그래서 나도 바리데기의 길이라는 노래를 한 번 불러봐야겠다.

 

스무내(卄川) 골짝/ 비탈에 운다/ 뒷골 너머/ 공동무지엔/ 갈대숲이 너울거리고/ 여우들의 울음소리/ 도깨비 휘파람소리/ 바리데기와 함께 노래한다/ 어두워지면/ 별을 찾아 강을 건너고/ 구만리 먼 길 갈 채비를 한다/ 밤하늘의 저 별은 어디 별인가/ 은하수 건너가는 다리 앞에서

나는 바리데기와 함께 춤을 추면서 간다

<바리데기의 길>

 

은하수 다리는 누구나 건너야할 다리다. 그 강을 건너는데 바리데기가 춤을 추면서 앞을 선다. 어느 별로 갈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바리데기는 내가 가야할 별을 잘 알고 있으니 그 별에 나를 인도할 것이다. 그 길은 내가 가야할 먼 길이다.

삶은 조금은 허무하다. 허무는 바로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길 위에 깔린 것이다. 허무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다리다. 허무의 길을 통하지 않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수 없다. 그 길을 걷는 것이 인생의 여행이다. 그 길 위에는 만리()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들리고 해가 기울면 만리 밖 별들은 서쪽으로 사라져 간다. 나도 그 별을 따라 가야 한다. 바리데기는 앞장서서 너울너울 춤을 출 것이다.

이승과 저승의 여행에서 겪는 어려움을 바리데기는 춤으로 나 같은 사람을 위로 한다. 바리데기는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일러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