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베리아 / 임지영
창가에 놓인 녀석을 들여다본다. 분명 작은 화분에 처음 옮겨 심을 때만해도 잎은 하나였다. 비쩍 말라 생기라곤 찾아 볼 수 없던 잎이, 몇 년이 지나자 반짝이는 잎맥을 펼쳐 보이는 어미 잎이 되어 있었다. 행여나 제 몸보다 더 큰 새끼와 자리다툼을 하지는 않을까? 녀석들의 자리가 갑자기 비좁게 느껴졌다. 분갈이를 해야만 했다.
신문지 위에 화분을 기울여 흙을 쏟아냈다. 촉촉한 감촉이 손끝까지 전달되었다. 녀석이 다치지 않도록 살살 흩뿌리듯 흙을 만지며 뿌리를 찾았다. 잎들을 위에서 볼 땐 분명 분리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뿌리 끝에서부터 튼튼하게 연결된 한 몸이었다. 새끼에게도 잔뿌리가 있어, 각각 다른 화분에 심겨진다 하더라도 잘 자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 녀석을 처음 품에 안고 왔던 날을 잠시 떠올려 본다.
집으로 들어가는 밤의 길목이었다. 찬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점멸하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쓰레기 더미위에서 화분 째 버려진 산세베리아였다. 한동안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듯 잎이 바짝 말라 있었다. 달빛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그 녀석을 두고 그냥 지나치려니 마음이 아렸다. 이곳에 두었다간 다음날 아침이면 분명 매립장으로 한 번 더 버려질 몸이 아니던가.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손으로 잡았다. 비를 맞은 것인지 약간의 습기가 느껴졌다. 집으로 데려갈 요량으로 살짝 건드렸다. 흙이 그 녀석을 꼭 품지 않았는지 힘없이 뿌리까지 뽑혀져 나왔다. 가느다란 뿌리사이로 파삭한 흙먼지가 날렸다. 과연 살릴 수 있을까? 잎을 사선방향으로 중간부분만 십 센티 정도 잘라 밑 부분이 물속에 잠기게 며칠을 두었다.
기특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녀석의 줄기 밑에서 솜털 같은 잔뿌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짧고 가느다란 뿌리였지만 분명 그것은, 다 죽어가던 녀석을 살릴 수 있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작은 화분에 뿌리가 생긴 잎 하나를 옮겨 심으며 큰일을 한 것 마냥 대견해 했었다. 산세베리아는 있는 듯 없는 듯 다른 화분들 틈에서 함께 물먹고 햇빛 받으며 시간의 거름을 먹고 잘 자라 주었다. 끝이 뭉툭하게 잘린 상처가 있었지만 다른 잎들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이처럼 지나간 아픔은 흔적이 존재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을 사는데 있어서 아픔은 현실을 더욱 씩씩하게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는 것은 아닐까.
결혼 후 4년 만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이제껏 모아두었던 자금은 사업을 한다며 가진 것 전부를 투자 했었다. 하지만 믿었던 사업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세상을 향해 온 힘으로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쳐봤지만 들려오는 메아리도, 다시 한 번 돌아봐 주는 이도 없었다. 현실의 냉정함에 한 순간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끝인 듯 절망 속에만 빠져 허우적거렸다. 반나절이 지나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모습이 파삭했다. 방과 화장실 사이의 거리가 채 열 보도 되지 않았건만, 그를 보는 내 마음은 십리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웃음이 넘쳐야 할 집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난 그런 그를 보면서 매몰차게 세상 밖으로 밀어낼 수가 없었다. 애처롭기만 한 뒷모습이 내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아빠라는 부담감이 무겁게 그를 짓누르지 않았을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속은 점점 타들어갔다. 돈이 없다는 목마름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은,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두려울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희망이 있기는 한 것일까. 매일 밤 되짚었다.
시댁에 들어가 산다고 결혼을 반대했던 친정도, 가까운 친구도, 주변에 모든 관계들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그때는 내가 제일 힘든 것 같았고, 세상 어느 곳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내 나이 겨우 스물여덟,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산세베리아처럼 꿈 많던 시간들이 하루하루 시들어져만 갔다. 눈은 움푹 들어가고, 몰골은 초췌했다. 제대로 꿈꿀 겨를도 없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현실, 아무리 애써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버릴 수는 없었다.
포기 하고 싶던 그 시간들을 무작정 버텨 보았다. 견뎌낸 모든 시간은 고통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이도 그 시간을 버텨낸 지금의 난 털 것 하나 상한 데가 없다. 내 안에 생명력이 있었던 것일까. 파삭했던 내 삶에도 뽀얀 잔뿌리가 자라고 있었다. 다시 살아 내야만 했던 간절함이 남편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긴 시간 어둠을 헤치며 지나온 그가 다시 힘을 내었다. 좋은 조건을 찾기보다 오래도록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했다. 그도 짧게 피고 떨어질 꽃이 아닌 사계절 푸름을 선택한 것이다.
푸름이 아름다운 이유는, 변함없는 기다림 때문이다. 버려진 것 같은 기분에 서러움과 목이 메여 아팠던 순간들, 삶에서 포기하고 싶던 모든 순간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며 잘려진 밑 둥 사이로 잔뿌리를 내리고 번식을 하는 산세베리아의 모습에서 삶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힘을 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눈이 씻기어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분갈이가 끝난 화분을 앞에 놓고 고르게 물을 주었다. 그리고는 화분 속에 손을 넣었다. 손끝으로 흙을 다지며 다시 한 번 나를 다져 보았다. 꼭.꼭.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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