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투구 / 조이섭
대가야 장군의 기상을 짐작하고도 남을 위용이다. K 대학의 박물관 2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붉은 투구를 쓴 장군이 얼굴 가리개를 한 호마(胡馬)의 안장 위에 앉아 둥근 고리 칼을 한껏 쳐들고 있다. 장군의 위엄을 더해주는 철로 만든 투구와 갑옷, 마구(馬具) 등은 70년대 말 고령군 지산리 대가야 대형 고분군을 발굴하고 복원한 유물이다.
고분에서 유물을 발굴하기도 어렵지만, 빨갛게 녹슨 고철 덩어리를 원형으로 복원하는 일은 정교하고도 지루한 작업이었다. 박물관의 연구원과 역사학도들이 수천 개의 쇳조각을 하나하나 세척하고 말렸다. 탈염과 녹 방지 과정을 마친 조각으로 퍼즐을 맞추듯 원형을 찾아 나갔다. 대강의 윤곽이 드러나면, 변형된 것을 조정하고, 삭아 없어진 부분은 메우고, 색깔을 맞춘 다음 구조를 보강하는 공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마지막으로 산화가 더 진행되지 않도록 화학처리로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방의 작은 대학 박물관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복원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똑같은 소망을 품고 있었다. 투구와 갑옷을 되살리고 거기에 붉은 기운을 불어넣어 대가야를 세상에 우뚝 세우려는 사명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학에서 철기 문명의 꽃을 피운 대가야 유물을 복원하는 일에 그렇게 힘을 기울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도기를 만들거나 쇠를 주조하는 일을 도야(陶冶)라고 한다. 이 말은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닦고 기르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철을 다듬는 것과 사람을 교육하는 속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학문과 교육에 대한 탁월성을 추구하려는 대학의 이념을 상징으로 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교육은 인간의 자질을 높이고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인격 도야를 통하여 스스로의 능력을 무한하게 발휘할 수 있다. 용광로의 쇠도 어떻게 제련하고 담금질하느냐에 따라 쓸모가 무궁무진하다. 훌륭한 인재는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화합하는 것처럼 철은 다른 소재들과 잘 융합한다. 철에다 다른 금속을 섞어 더 나은 성질을 가진 합금을 만들 수 있다.
단단함의 상징인 쇠도 시간이 지나 공기(산소)와 만나면 녹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담금질과 망치로 두드려 연단을 잘해도 부식이 된다. 녹스는 것은 쇠가 스스로 자멸하는 과정이다. 쇠가 빨갛게 녹스는 것은 우리네 인간사와 흡사하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인격이 잘 도야 된 사람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과 오만함에 빠져 파멸에 이르는 것과 쇠가 녹슬어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것이 다르지 않다. 쇠는 한번 녹슬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실수를 다시 가다듬을 수 있다. 잘못을 바로잡고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중학교 때 만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시골에서 혼자 올라와 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은행에 입사하여 탄탄대로를 걷다가 IMF를 만났다. 지점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던 그도 감원과 명예퇴직 바람을 비껴가지 못했다. 수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귀티나던 얼굴은 상하다 못해 일그러졌고 입성마저 남루했다. 기운이 쇠하여 소주 한 잔을 대여섯 번이나 베어 마시며 그간의 사정을 전했다. 재직 시에 무리하게 벌린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많은 채무를 지게 되었다. 퇴직금과 살고 있던 집마저 처분했으나 채무를 해결하기에는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가족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마음에 위장 이혼까지 했다. 자괴감을 못 이겨 아내와 상의도 없이 서울로 올라가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연락을 끊고 내왕도 하지 않다가 수소문 끝에 가족을 찾아갔다. 그동안 아내와 두 딸은 갖은 고생 끝에 작은 단독주택을 마련해서 살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가 나가라고 고함치는 바람에 용서해 달라는 말 한마디 벙긋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안 나가고 버텼더니 경찰이 와서 끌어내더라며 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친구는 혼자 시골에 내려가 조그만 공장에 취직했다. 시집간 누님이 보살피던 어머니를 모셔왔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외아들을 만난 노모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몇 년 후, 큰딸이 시집갈 때 전세 얻는데 보태라고 세상과 담을 쌓고 차곡차곡 모은 돈을 내놓았다. 다시 몇 년이 지났다. 이번에는 대학 다니는 아들 학자금으로 쓰라고 통장을 건네주고 선걸음에 돌아섰다. 며칠 후, 아들과 딸이 아버지를 찾아 왔다. 그의 바뀐 모습에 굳게 잠겼던 아내의 자물쇠가 풀린 것이었다.
헤어졌던 가족이 십여 년 만에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친구는 혼자 살 때 익힌 살림 솜씨를 발휘하며 행복한 전업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친구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먼 길을 돌아온 그 평화로운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나도 녹슬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살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재판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음주운전을 하고 접촉사고가 있었는데 뺑소니로 몰린 것이었다. 판결에 따라 직장까지 그만두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음주운전이 처음도 아니었다. 된통 험한 꼴을 한 번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벌이었다.
공판은 육 개월이나 끌어가며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죄짓고 못 산다는 말을 몸서리나도록 실감했다. 1999년 12월 31일 늦은 밤에 변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편안하게 맞이하십시오.” 뺑소니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서 가벼운 벌금형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때 이후로 술을 마시면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박물관의 붉은 투구는 비록 녹이 슬었지만, 세월의 더께를 말끔하게 털어내고 장군의 머리위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나도 내 안과 밖에 녹슨 수많은 흔적을 잘 닦아내어 보듬고 갔으면 좋겠다. 그 옛날, 박물관의 젊은이들이 붉은 투구의 산화가 더 진행하지 않도록 땀 흘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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