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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슬픈 귀향 / 임영도

슬픈 귀향 / 임영도


 

 

요양병원 중환자실은 인생열차의 종착역이다. 삶에 지친 몸과 영혼들이 병상에 누워 고통과 어둠의 길을 걷고 있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사의 길이 갈라진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조차 잃은 채 기약 없는 귀향을 기다리는 건 아닌지.

10년째 부산의 변두리 숲속 요양병원에서 살고 계시는 작은아버지를 2년 만에 찾아뵈었다. 3년 전에는 나를 또렷이 알아보시고 반갑게 얘기도 하셨는데 이젠 나를 기억해 내지 못하신다. 노인성 치매가 삶의 기억을 몽땅 지워버렸나 보다. 연세가 92세로 나에겐 또 다른 아버지이셨다. 딸만 여섯이고 아들이 없어 큰집에서 차남인 내가 양자로 입양 갔다가 장남의 유고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호적이란 기록으로 부자의 관계가 오고갔지만 여전히 내겐 아버지이시다.

육신을 감싸고 있는 살과 근육은 생을 유지하는데 불필요한 굴레가 되어 버렸나보다. 살기위해 필요했던 치아마저 다 버리고 신생아 때처럼 눈 감은 채 누워만 계신다. 몇 올 남지 않은 하얀 머리털은 생명의 끈을 이어주는 명주실인가 보다. 허옇게 변색되어 주름 잡힌 조그만 얼굴은 예전과 전혀 다른 모습이시다. 6.25동란 때의 젊은 시절, 북한군에 끌려가다 도망쳐 나오신 패기와 기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가늘게 떨리는 입술에서 영우야!”하며 부르는 듯 했다.

영우는 작은아버지의 귀한 외아들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마을 앞 강으로 멱 감으러 가는데 물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뭔가 큰 사고를 예감했지만 사촌동생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겨우 7살 동생이 익사했다. 위로 딸만 넷인 집안에서 외아들은 작은아버지 인생의 희망이었다. 강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쳐 울부짖었지만 강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했다. 원통과 울화를 가슴속에 삼키며 다시는 고향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부산으로 떠나셨다. 객지에서 딸만 둘을 더 얻어 딸 부잣집이 되었다.

인생길의 여정은 희로애락의 감정과 동행하며 추억을 만드는 여행이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오신 부모님들은 가슴에 한 두 개씩의 한을 품고 사셨다. 사람의 마음에는 한순간의 느낌을 영원히 담아둘 기억의 장치가 있다. 그 속에 지속적으로 담아둘 수도 없게 하는 삶의 강요 때문에 뇌 속 망각의 자리에 숨겨둔다. 망각은 잠시 묻어두는 것일 뿐, 마음이 불편할 때나 육신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에 다시 고개를 내민다. 작은아버지도 한 맺힌 이름 영우란 말만은 잊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50년 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었던 말이다. 목 놓아 불러보고 싶어도 살아있는 딸자식들 눈치 보여 삼키고 살아오셨다. 92년 동안의 모든 삶의 기억은 다 지우고 하얀 백지에 한 가지 글만 써놓았나 보다.

고향을 등지고 낯선 타향으로 떠나올 때의 심정은 깜깜한 동굴 속을 걸어가는 막막함이었다고 하셨다. 먼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객지생활 3년이 지난 후였다. 마음 속 맺힌 한과 향수는 고난과 절망의 일상 속에서 조금씩 묻혀갔다. 40대 불혹의 나이에 부모님을 고향에 묻고 자식마저 영혼만 품고 떠나왔다. 삶의 즐거움은 고된 노동후의 저녁술 한잔과 딸들의 살 같은 애교였다. 타고난 건강 체질 덕분에 폐품을 모아다 쌓아두는 힘든 일의 노동도 가난을 극복해 가는 디딤돌이었다.

내가 대학시절 주말에 작은아버지 댁에 가면 친자식이 되었다. 지극한 마음으로 어깨 두드리며 너는 장한 내 아들이다라고 하시던 말을 이젠 들을 수가 없다. 작은아버지는 노래를 두곡밖에 모르시는 것 같았다. ‘타향살이꿈에 본 내 고향이다. 술 한 잔 거나하게 드시면 나와 딸들을 앉혀놓고 노래를 하셨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중략)”를 먼저 부르시고 앵콜을 청하면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중략)”를 진심으로 부르셨다. 음정과 박자는 엉망이지만 눈물까지 흘리시며 열창하실 땐 모두가 박수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세월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꾸지 못한다. 하시던 일을 할 수 없게 된 후의 생활은 뒤돌아가는 삶이었다. 작은아버지는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옛일들이 하나씩 살아나는 걸 별로 아파하지 않으셨다. 다시 끄집어내서 정리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신 것이다. 가슴속에 맺힌 설움을 마음의 창에 태극기처럼 메달아 세상 밖으로 힘차게 휘날리게 해야 정리가 될 것이라 하셨다.

떠남은 언젠가는 돌아감을 예고한다. 육신이 못가면 영혼이라도 간다고 믿는다. 태어난 곳이 어딘지 기억조차 못하시는 작은아버지가 먼저 보낸 자식의 영혼은 기억 속에 남겨둔 것 같다. 살아서는 못가는 그리운 고향이지만 통한의 강과 땅은 그대로 남아있다. 자식의 영혼이 기다리고 있을 그 곳으로 작은아버지도 슬픈 귀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