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무릎 꿇다 / 심선경
어두워진 시간에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뎠다. 마지막 층계라고 믿었던 그 아래, 또 하나의 디딤돌이 있었던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게다. 꺾인 무릎과 접질린 발목은 용하다는 침술과 통증완화제로 달래어봤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그 전부터 내 몸은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바닥에 삼십분 이상 앉아 있으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었고 아침에 일어나 조금 걸으면 감전이라도 된 듯 발뒤꿈치가 쩌릿쩌릿 저려왔다. 아이 둘을 낳고 급격하게 쇠퇴한 뼈들은 연골이 닳아 이음새가 느슨해졌으리라. 진작 칼슘제도 챙겨 먹고 골다공증 검사도 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앞서지만, 관절 통증의 원인은 스트레칭에 게을렀던 나의 오랜 습관 때문이 아닐까. 나이에 비해 유연성을 잃은 몸은 오랜 습관 때문이 아니라면 내 뻣뻣한 정신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을 자주 듣는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다 된 일을 망쳤다고. 한번만 고개 숙이면 될 일에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느냐고. 그러나 내키지 않는 일에 무릎 꿇기란 참을 수 없는 굴욕이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 스스로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권력이나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어야 할 때는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오를 것만 같다. 무릎을 꿇는 일이 굴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지는 것의 고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비참하고, 자존심을 송두리째 내동댕이치는 일이다.
어릴 때, 생일을 맞은 친구 집에 초대받아 놀러 갔는데, 그날따라 내 옷차림이 남루했는지 나를 쳐다보는 친구 어머니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불편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한나절을 놀았다. 저녁 이슥해서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친구 어머니가 우리들이 놀던 방으로 들어오셨다.
"너희 중에 누구, 부엌에 들어왔던 사람 있냐?"
모두가 친구 방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함께 놀았고, 가끔 화장실만 드나들었기에 아무도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음식 만드느라 잠깐 반지를 빼서 식탁위에 올려뒀는데 그것이 없어졌다는 게다. 친구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에게는 각자 주머니를 뒤져보라고 한 뒤, 내가 미심쩍은 듯 다가와 직접 몸수색을 했다. 내 주머니에서 반지가 나오지 않자, 그 어머니는 사실대로 말하라며 몹시 다그쳤다. 너무 억울했지만 당황스러워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가난하여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는 마음까지도 때 묻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원망스러웠다.
이튿날, 잃어버렸던 반지는 식탁이 아니라 싱크대 위쪽 선반 위에서 찾았다고 그 어머니 대신 친구가 미안한 마음을 전해주었다. 생일잔치에 갔다가 도둑 누명까지 쓸 뻔 했던 그 날의 굴욕과 모멸감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다. 그때는 왜 당당하게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초등학교 때,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둔 육성회비 봉투가 없어진 적이 있었다. 회비를 가져온 아이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도시락도 못 싸오는 아이였다. 아침에 육성회비를 받은 선생님이 나중에 정리하려고 창문 옆 선생님 책상위에 놓아두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육성회비 봉투를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들라고 하셨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었나보다. 숨 막힐 듯한 적막감을 견디지 못해 살짝 눈을 떠 보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움찔 놀라 다시 눈을 감았지만 선생님이 나를 의심할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간혹 교실에서 물건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아이들이 고아원 출신이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나 같은 아이들이었다.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선생님은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다시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반 친구 전체가 무릎을 꿇는 벌을 받고 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마. 친구의 육성회비 봉투를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손을 들어라."
삼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선생님은 책상위에 올라 무릎 꿇는 벌을 풀어주시지 않았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나쁜 마음을 먹었더라도 잘못을 알고 반성한다면 용서해 주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끝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선생님은 한참 뒤에 모두 책상위에서 내려오라고 하셨다. 너무 오래 꿇어앉았던 탓에 다리에 쥐가 나서 바로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우리 반 교실 옆 화단 청소를 하던 중에 그렇게 찾던 육성회비 봉투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봉투 안에 회비는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것을 훔쳐간 아이가 선생님께 직접 갖다드리지는 못하고 슬그머니 화단 쪽으로 던져놓은 것일까. 아니면 청소하느라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와 얇은 봉투가 화단으로 날려 간 것이었을까.
살다보면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어떤 대상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일이 많다. 젊은 날의 의욕이 빚어낸 이기와 과욕 앞에 무릎 꿇고 돌아보면 흑백사진처럼 선명한 자화상이 드러나 견딜 수없이 부끄럽고 후회스런 순간이 있었다. 그런 날은 온 몸에 신열이 나고 며칠을 끙끙 앓아야 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꿇어앉아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많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내 앞에서 등을 보이고 있었고 내가 아무리 나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말했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난처하고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내 모습은 당당했고 어쩌면 무사처럼 결의에 차 있었다. 기꺼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무릎을 꿇으면서도 굴욕스럽지 않았다. 이런 행동은 어떤 때에만 가능한 것일까. 아마도 그건 내가 갖고 싶은 것,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가 아닐까.
매 끼니마다 밥을 지어 먹으면서도 쌀농사를 지은 농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글로 밥을 짓는 사람들은 왜 밥보다 신의와 도리, 의로움이 소중한지를 안다. 밥을 벌기 위해 비인간적인 일에 동참하지 않고, 밥벌이 때문에 비굴한 무릎을 꿇지는 않아야 하리. 밥상 위에 가장 정직한 나의 노동으로 얻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놓여 질 때, 하얀 쌀밥이 자식들의 입 안에 들어가서 그 얼굴들이 비로소 환히 밝아져올 때 세상 어떤 일이 이보다 더 황홀하랴.
사람 사는 게 별 것이던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고달픈 삶일지라도 가족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밥상을 차려내는 일은 어쩌면 성직자의 사명보다 더 숭고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기꺼이 밥상 앞에서는 저마다 다소곳이 무릎을 꿇는 것인가.
먼 옛날 고향집 마루에는 간간이 밥 동냥 나온 거지들이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어머니는 누군가가 집에 오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어찌 아셨을까. 오랜 세월 지난 지금, 어머니가 마루에 차려준 그 밥상 앞에 내가 무릎 꿇고 앉아 누군가가 차려준 밥을 얻어먹게 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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